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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올봄, 회사에서 야유회를 갔을때 우연히 광대놀음을 보게 되었다. 항상 그렇지만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인지 나는 광대놀음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의 세계이자, 낯섦의 세계이다. 신명나는 기분도 잘 모르겠고, 그저 보여지는 그대로의 '광대'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느낌은 광대와 무당, 소리꾼,춤꾼들 모두에게 그렇다. 그런 그들을 통틀어 예인이라 한다면 이 책 '노름마치'는 그런 예인들의 무대나 진배없는 듯하다.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곧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데, 이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고 한다.(p15)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던 예인들이 초야에 묻히자, 예인들을 찾아 다시 삶의 중앙에 서게 했다. 이른바 그들의 모노로그(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가무악일체였다. 소리와 춤과 악기, 세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것인데, 한 분야에 매진하더라도 다른 두 분야가 거의 완벽하게 몸속에 차 있어야 예술이 나온다는 관념이다.
이들이 걸어간 길에서는 삶의 고단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거센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하게 이루어졌다. 거센 바람앞에서 민초들의 삶은 여지없이 초토화되었고 잇달은 해방과 전쟁에서 가장 커다란 상처는 여성들의 삶을 파란에 물들게 하였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택한 생의 처절함은 예기들의 몸에 가무악으로 새겨졌고 권번이라는 곳을 만들어내었다. 권번은 시대상 어쩔 수 없이 예술인들의 집적지가 되었고 그것으로 전통예술이 보존되었다. 1장 예기(藝妓),에서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 하는 기생의 삶이 격동하는 시대의 변화가 기생이자, 예인인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장금도와 유금선, 심화영의 삶을 통해 여실하게 전해진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은 우리나라의 전통춤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유금선의 <학춤>이 파란만장한 여성의 일생을 담아내고 있다. 이들의 춤은 곧 여성의 파란의 역사이다.
2장 남무(男舞)에서는 남자의 춤의 역사를 담고 있다. 고대 처용가에서 이어져 내려온 남무의 전통은 '마지막 동래 한량'이란 명무를 부여받은 문장원, 하용부의 북춤, 김덕명의 학춤으로 이루어져 있고 3장 득음(得音)에는 타계 후 닷새 후 세계무형유산에 지정된 정광수,'적벽화전'의 한승호, 소리를 가장 잘하는 한애순씨가 초야에 묻힌 이야기까지가 실려 있다.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각 장에는 사물놀이패의 광대, 무당, 춤의 삼각지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 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된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그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썼을 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분들이 이제 삶을 넘어선 먼 여행길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진짜배기 전통의 맥을 유일하게 이어오시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삶은 짧지만 예술에 담긴 정신은 길이길이 남겨진다는 것으로 위로삼는다. . 《노름마치》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미망에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혼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노름마치'들을 그저 광대나 기생, 춤꾼으로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예(藝)’로서 인식의 기둥을 세우는 초석을 다져주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자가 책 중간에 여담으로 실은 판소리로 유명한 곳 세곳 모두가 식당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의 보존가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삶과 예술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파란의 역사를 써온 예인들의 삶과 더불어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기둥을 세워주는 노름마치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