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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 - 더 행복한 삶을 만드는 용기에 관한 진실 31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과거 위대한 문명은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이것은 <아포칼립토>라는 영화의 맨 처음에 쓰여 있는 듀랑의 문구이다. 고도로 발달된 마야문명의 몰락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류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오랜 숙제로 남겨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문명의 몰락이 내부의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마야인들의 습격으로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잃은 원주민 부족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숲을 버리고 떠나는 이웃 부족의 얼굴에서 극에 다른 공포와 두려움을 보게 된 이후 표범발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고 그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족장인 아버지역시 아들 표범발 앞에서 마야 부족에게 처형되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말은 ‘두려워하지 마라’가 전부였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인 아버지의 ‘두려워하지 마라’ 는 이후 표범발이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준다. 오래 전 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두려움이 인류의 멸망과 비견되어질 정도로 같은 무게일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은 대개가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일상적이고 장기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두려움이 삶 전반에 퍼져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는 실제로 상처를 입을 때보다 단지 겁을 먹을 때가 더 많다. 현실보다는 상상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세네카
나 역시도 매 삶을 두려움 가운데 보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두려움이 주는 상상이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 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 누군가에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의 파장들이 때론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현실보다는 상상에 기인한 두려움이 더 크다. 며칠 전 회사에 보고서를 실수로 제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안 순간부터 두려움에 잠을 못잘 지경이었다. 밤마다 상상을 하며 실수에 대한 책임에 괴로워하고 있다가 맞닥드린 현실은 내 두려움의 크기와는 달리 작은 책임부분만 남겨졌다. 그때의 경험은 현실보다 내가 혼자 상상한 두려움의 크기가 더 삶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절대 두려움은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려움이 주는 상상의 크기에 짓눌려 매 순간을 허망하게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늘 두려워하던 것들에서 , 한 걸음 내딛기가 힘겨울 때 겨우 디딘 그 한 걸음은 그동안의 두려움을 잊게 할 수 있는 용기와 맞먹는 희망의 크기와 비례한다.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게 하는 것처럼 용기는 희망을 먹고 자란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626/pimg_732707167867869.jpeg)
고든 리빙스턴은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치료해주는 심리상담가로 살아왔지만, 정작 본인은 두 아들을 잃은 아픔으로 살아야 했으며 서른 다섯이 되어서야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서른 다섯에야 처음 만난 생물학적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편지를 통해 고든 리빙스턴이 어깨에 메고 걸어왔을 삶의 무게가 느껴져 더 가슴이 찌르르했다. 알베르 카뮈가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라는 말을 남겼듯이 깊은 절망을 마주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고든 리빙스턴은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이정표를 보여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 즉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극복하는 일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삶에서 서른한 가지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 서른 한가지 진실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실은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죽음을 인지하고,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며, 나이 듦을 한탄하기보다는 자신의 생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유머를 즐길 줄 알며, 잘 모르는 것, 막연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삶의 비밀들. 어쩌면 이것은 비밀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두려움에 가려져 잘 인지하지 않으려고 했던 진실들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강상중의 굴곡진 인생과 고든 리빙스턴의 굴곡진 인생이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불행이 있기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였듯이 고든 리빙스턴 역시도 두려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삶에서 용기를 찾게 된다고 한다.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밤의 베일을 벗고 용기와 희망이라는 새벽의 여명을 만끽하는 삶을 위해 한 번쯤은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사실 두려움은 현실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가서) 그 무서운 마야족을 상대로 두려움을 이겨낸 표범발이 승리하듯이 결국 두려움이 위대한 문명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