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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 김형태 변호사 비망록
김형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진실은 종종 우리의 믿음이나 희망에 어긋나는 세상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죽은 뒤에도 저세상이 있어 영원히 살고 싶다. 하지만 누구든, 어느 편이든, 어떠한 경우든 세상의 실상 앞에 마음 비우고 마주 설 일이다.
# 우리들의 비망록
이 책 《지상에서 가장 짧은 만남》은 김형철 변호사의 비망록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지만 인권변호사로 일하는 그가 말하는 비망록이란 저자에게도 그렇지만 나와 같은 시민에게도 매우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던 굵직굵직한 희대의 사건들이다. 또한 진실의 실상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이기도 하며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코 끝을 시큰거리며 읽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누구이던 간에 이 진실이라는 실상 앞에 그것이 어떤 무게로 다가온다 해도 외면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종종 우리의 믿음이나 희망에 어긋난 세상의 모습일지라도 그것을 마주하는 용기야 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테니까.

1부 그럼에도 사형은 안 된다
2부 누가 그를 망루에서 떨어뜨렸는가
3부 조각난 나라에 산다는 것
4부 광기의 시대, 그 한복판에서
#삶의 본질과 마주하다.
1부에서 ‘그럼에도 사형은 안 된다’ 의 편에 실려 있는 사건은 희대의 사건들이어서인지 내가 알고 있던 사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신문보도로 알고 있었던 사건들의 실상은 다소 의외의 모습들이다. 백조의 우아함이 수면 아래의 처절한 발짓에서 비롯된 것처럼 삶을 피상적으로 볼 때는 우아해보이기까지 하였던 것들이 본질로 들어갈수록 삶은 슬픔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기분이였다.
# 사형집행제도에 관해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읽으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다. 대다수의 국민여론이 ‘사협집행에 찬성’하는 이유가 날이 갈수록 흉악해져가는 범죄와 상식을 넘는 비인격 장애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범죄의 실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면? 잔혹한 살인마인줄 알았던 여인이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라면? 처와 딸을 죽여 냉혹한 살인자로 전국민에게 비난을 받았던 남편이 진범이 아니라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면 ? 어느 영화처럼 잔인한 유괴 살인범인 줄 알았는데 법 없이도 살 정도의 착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누구도 사형집행을 쉽게 찬성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일이 옳다 그르다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한 사람을 순식간에 악인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만, 선한 것을 증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힌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처와 딸을 죽여 살해범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30분이면 족했지만 그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8년을 세상과 싸워야 했다. 인혁당 사건의 사형집행은 19시간만에 이루어졌지만, 진실을 마주하기까지에는 40년이 흘러야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적어도 항변의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진실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아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분법은 파울리가 말한 대로 악마적 속성을 지닌 것이고 그것이 반복되면 오로지 혼란뿐이다. 이제 더는 예와 아니오라는 대답만으로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는 무수한 많은 대답이 있다. ”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의 저자 박노자 교수는 국가가 '합리적 조절자'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고, 지배계급의 '사무총국' 성격을 띤다고 하였다. 국가가 사회를 통제한다는 합리적인 조절자의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다. 지배권력의 성격을 띤 국가를 상대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일이다. 용산참사나 한진중공업 박창수의 죽음도 그러하고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 인혁당 사건, 보도연맹사건 역시도 마찬가지다. 노태우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선포의 첫 사건이라는 사실만으로 한 민초의 삶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흔들리다 꺼져가듯이 국가는 때론 민초들의 삶을 위협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이 스물에 한국에 와서 돈 벌어보겠다고 하였던 파키스탄인이 딱 열흘을 일하고 5년을 살인범으로 살아야했던 기구한 사연도 가슴을 칠 노릇이지만, 재개발을 둘러 싸고 이웃의 칼에 죽은 한 남자의 죽음도 기막힌 일이지 않을까. 오히려 막대한 이익을 얻은 조합과 건설사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에 왜 분노하게 되는 것인지. 이들의 삶을 통해 나는 왜 또 감사하게 되는 것인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도감이 나를 더 부끄럽게도 하고 오늘 내가 무시로 버린 하찮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무엇이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때리는 책이었다. 허나, 누구든, 어느 편이든, 어떠한 경우든 세상의 실상 앞에 마음 비우고 마주 설 일이다.
재개발을 맡은 삼성물산. 공권력을 동원한 이명박 정권, 저 지옥 같은 망루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을 토끼 몰듯 몰아댄 경찰. 재개발 이익에 목을 맨 조합. 일당 몇 푼에 아버지 같은 노인 불알을 잡아당기고 아줌마들을 두들겨 팬, 그 역시 하층민인 용역깡패들. 이들도 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