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니체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김부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 신문에 모대학이 철학과를 폐지한다고 하여 학생들과 논란을 빚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제는 교육이 목적이 아닌, 기업적 영리추구가 목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철학은 우리 삶의 珍景진경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물질의 가치가 정신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면서 이미 삶에서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되새기기에는 세상은 지나치게 핑핑 돌아가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 쇼크》에서 가족 구조의 빠른 해체와 매스미디어는 탈대량화,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다변화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였다. 변화의 과도기사이에 낀 우리 세대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인 허무와 우울, 공허와 회의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는 《우울할 땐 니체》에서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질병(우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니체의 위대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대한 점검이 먼저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몇 가지의 이론을 숙고해보는 식의 철학을 권고한다. 진단과 이해, 적용과  내다보기의  네 단계 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에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목적인 철학서이다. 

 

 

삶의 목적은 세계와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망 없이는 규정할 수 없다.

 

삶은 추와 같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직시해야 하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을 그럭저럭 견뎌야 하며 삶에서 ‘무의미함’을 감추기 위해 종교나 과학뒤로 숨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며  회의주의자처럼 생각하고, ‘노동을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길’이라며 두려움을 갖는 것에 대해 ‘잠시라도 삶에 해를 끼치는 것은 금지하거나 단념시키라’고 한다. 뿐만아니라, 삶에서 항상 맞딱뜨리는 도덕적 양심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지길 권고하고 있다. 니체는 진정한 도덕은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고유한 도덕적 의무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의 특권으로 여겼다. 반대로 타자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우리가 현재 소유하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재능으로 보고 있다. 또한 도덕(선)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적 미덕은 호사스러운 착각일 뿐이라고 한다. 가장 근거 없고 정예화된 정교한 이기주의의 발로로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 타인은 여기서 그리 쉽게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미래의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과 일치하기를 원하는 이런 나쁜 취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은 이웃의 입에 회자될 때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어떻게 ’공동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체 모순을 범하고 있다.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가치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아니오를 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창조하면서 긍정할 수 있기 전에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낡은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자유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 안에 살고 싶고 자신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해야 한다.’ 강한부정은 강한긍정이라는 말처럼 내면에 있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이해함으로써 긍정 안에서 진화하는 부정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긍정의 가능성과 의심스러운 삶의 관점이 확고해지는 부식토가 되어야한다고 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의 목적 중 하나는 허무주의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 우리가 이론상으로 삶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가 허무주의를 부정하는 효과적인 방식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체는 모든 일에 성마르게 반응하지 말며 사물을 세부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는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니체의 허무주의와 영원회귀 사상은 세상에서 우리가 떠안고 있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고 있음을 말한다. 니체는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초인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으로의 도피, 현실에 대한 부정의 의미가 아닌, 인간은 자신을 더욱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존재 즉, 자신의 책임의 짐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던  존재들 가령, 종교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집단주의, 도덕적 양심, 행복에 대한 환상,  우리를 얽매이고 있던 관념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짐을 내려놓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테리 이글턴이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는 말처럼 삶의 무의미함이 곧 삶의 珍景진경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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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이상적인 인간형인 초인은 자신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고양하고 긍정하는 어린 아이같은 인간이죠.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인 의지를 뛰어넘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극복의 초월적 의지를 힘에의 의지라고 하지요. 아뭏든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니체의 긍정의 긍정의 철학이 좋은 텍스트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