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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하나 뿐인 어머니. 세상에 하나 뿐인 어머니를 이해한다는 말은 곧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타인에 대한 이해도 무딜 수 밖에 없으리라....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했다. 자식이 많은 집이 의례 그렇듯 먹고 사는 것에 빠듯했던 대가족에서 어머니의 눈총 한 번 받아보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적이 있다. 사춘기시절, 내가 보내는 사랑의 화살은 언제나 빗나가기만 하고 그 화살은 어느 순간 부메랑으로 변하여 내게 돌아와 상처를 주곤 하였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순간, 집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작 내가 숨었던 곳은 집안 구석진 곳의 보일러실이 전부였으며 어른에게는 너무도 빤한 장소였다는 것을 몰랐다. 컴컴한 보일러실에서 자동차가 들려주는 불빛들의 소나타를 바라보며 엄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에 대해 몹시도 울었더랬다. 김연수 작가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 이유는 세상에서 하나 뿐이자 혈연의 존재인 엄마조차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더 나아가 그 관계가 타인이라면 더욱 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일까?
1.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의 양모 ‘앤’이 죽자 젊은 여자와 살기 시작한 ‘에릭’을 위해서라도 자유인으로, 아니 자유인인척 살아야했던 카밀라. 다행이도 그녀에게는 연인 유이치가 있었다. 유이치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단 하나 ‘카밀라’, 동백꽃의 카밀라만 비쳐진다는 사실은 카밀라가 살아오는 동안 근 21년의 삶의 모든 고통과 절망과 분노를 치유할 정도의 기쁨이다. 그런 유이치의 권유로 카밀라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책 『너무나 사소한 기억들』에 실린 어렸을 적 사진은 그녀의 과거를 찾아주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사진이 말해주는 과거의 편린들을 찾아 떠난 카밀라는 마치 운명의 이끌림처럼, 연어가 바다로 흘러간 뒤에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자연회귀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한국의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진남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카밀라의 기억에 존재했던 어머니에 대한 정의 “제일 먼저 카밀라를 사랑한 여자이자, 무의미한 단어에 불과했던 존재”의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동안 카밀라는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닌 정희재가 되어 있었다. 동시에 희재는 죽은 어머니 지은과 함께 한다. 카밀라는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닌, 정희재라는 이름의 카밀라가 된 것이다.
2.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김연수 작가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들을 보아왔던 나로서는 약간의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결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관계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타인과의 소통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카밀라와 죽은 엄마와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오버랩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고요하기만 한 수면위에 하나 둘 씩 떠오르는 엄마의 진실 가운데 카밀라가 희재가 된 순간 (정체성을 찾은 순간) 소설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소설속에서 엄마 지은과 희재와의 거리는 타인과 나의 거리를 말해주는 듯 하다. 딱 , 타인과 나사이 깊은 심연이 존재하는 거리와 같다. 이렇게 둘의 거리는 마치 열녀각에서 보여지는 열녀의 진실따위와는 상관없이, 매생이국에 담겨진 인간의 본성과는 상관없이, 동백꽃이 말하고 있는 진실 따위와는 상관 없이 우리가 보여지는 것만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처럼, 타인과 타인사이의 거리였다. 그러나, 엄마가 남겨둔 유작과도 같은 글을 통해 조금씩 엄마를 이해해가는 희재는 서서히 엄마의 고통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장이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했던 진실과 엄마 지은을 아는 사람들의 침묵의 의미, 그리고 바로 ‘나’라는 존재가 엄마에게 준 의미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나보다 어린 엄마를 만난 적이 있어요.”
김연수 작가는 엄마 지은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는 독백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을 건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인간에게 날개가 없다는 사실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하는 것처럼, 엄마 지은앞에 닥쳐진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고 버틸수 있게 해준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희재라는 날개였다는 것은 그동안의 모든 고통들을 지우기에 충분한 진실이다. 소설은 마지막순간까지 양관의 딸 '희재'의 등장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다시 재현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 그러나 그런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첫 걸음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날개"라는 희망이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날지 못할 지라도 꾸어야 하는 날개의 꿈, 그것이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희망의 또다른 이름이다. 인간은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려하고 날지 못하기에 나는 것을 꿈꾼다. 커다란 돌멩이를 산꼭대기에 가져다 놓으면 어김없이 다시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스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에게 희망이란 절망속에 뿌려진 단 하나의 꿈이 바로 김연수 작가가 말하는 '날개'가 아닐까...... 가을에 돌아온 김연수 작가의 신작<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깊은 심연속으로 침잠해 관계의 진실과 맞닿게 한다. 그리고 다시끔 잃었던 꿈을 꾸게 한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은 둥지를 틀고
말이 없는 노래를 부른다네,
끝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