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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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문학이 대중문학을 죽인게 아니다. 대중문학이 천천히 자살했다대중문학 작가와 편집자, 출판사 들이 한 치 앞을 고민하지 않으면서당장 쉬워 보이는 길로만 가면서, ‘초판 2만 부너머를 보지 않고제 살을 열심히 파먹었다. PC통신에서 일어난 거대한 에너지가 이렇게

한심하게 망했다. p.60

 

인간은 큰 사건 몇 개를 던져 주면 자동적으로 그 사건들을 잇는 이야기를 만드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별 몇 개를 이어 큰곰이니 물병이니 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을 밤하늘에 그리듯,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다. p.61

 

좋다. 허수 응시자가 반이라 치자. 그러면 젊은이 11250명이 고시촌에서 저런 공부에 매달리는 게 한국 사회가 지식사회로 탈바꿈하는 데 득이 될까, 해가 될까? p.108

 

나는 의견이 다르다. 자동차 회사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는 역사관이 뚜렷한 사람이 아니라자동차를 잘 만들거나 자동차를 잘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구직자의 논리력이나 표현력을 보고 싶었다면 고려·조선 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율 운행차나 카셰어링 문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물었어야 한다고 본다. p.109

 

가난하고 배경도 보잘것없는 젊은 감독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후다닥 영화를 찍고는 돈방석에 올라야 다른 가난한 천재들이 희망을 품고 영화에 도전한다. 이런 일이 꾸준히 발생하지 않는 분야는 18세기 조선처럼 시대에 뒤떨어진다. p.161

 

다만 어떤 무대에 입장하는 것이 부드럽게 거절당하거나, 또는 그 자리에 들어와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아 투명인간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 p.274

 

조지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르포하고는 그곳 광부들이 불평등과 부조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이렇게 서술했다. 그들은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라고. 무수히 많은 힘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줘서, 그들은 피동적인 역할만 하게 된다고. 그들은 자신들이 신비로운 권위의 노예임을 알고 있다고. pp.288-289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품을 경험재(經驗財)라고 부른다. 막 개봉한 영화,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음식 역시 경험재다. 경험재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얼리어답터족()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는 물건 앞에서는 지갑을 닫아 두는 게 인간 본성이다. p.309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서 , 이 책 읽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때보다는 , 저 사람이 자기 취향 고상하다고 자랑하고 싶었구나.’ 라고 느낀 적이 더 잦았다. p.345

 

공식적인 채널은 거의 다 어렵고 따분해 보이는 좋은 책들을 권한다. 그럴수록 소설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부, 정신노동이라고 여기게 된다. 독서 문화가 침체된 원인이 이것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이런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347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에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서관 이용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 실패란 상당한 시간을 들여 꾹 참고 읽었지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책임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다. 한 독자는 내게 그런 상황에 대해 기분이 더럽다.”라고 표현했다. p.351

 

 

그러면서 우수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요즘 젊은이들은 대기업만 바라본다고 그들을 꾸짖는다. 가증스러운 기만이다. 지뢰밭으로 들어가기 주저하는 군인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꼴이다. p.361

 

 

우리는 선량한 피해자이며, ‘저들은 자신들의 알량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공공선을 훼손하는 탐욕스러운 무리, 벌레들이었다. 양측 모두 이 선악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차없는 모욕의 언어를 동원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그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pp. 419-420

 

그들의 논리는 모두 조금씩 일리가 있었고, 동시에 조금씩 부조리했다. 양쪽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공공선에 부합하고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건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큰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었다. p. 420

 

그러나 가정이 잘못됐다. 애초에 선발 시험이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무능력한 사람도 더러 뽑히고, 당선되거나 합격할 때에는 유능했지만 이후에 노력을 하지 않아 평범해진 사람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현재기준으로는 유능하다고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부 경쟁이 없기에 이런 이들이 도태되지 않고 성안에 계속 머문다. 심지어 자신보다 유능한 후배들을 이끌고 지도하기도 한다. p. 425

 

한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쳤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많이 놓칠 것이다. 이 제도가 시험일 훨씬 이전부터 젊은이들의 가능성과 도전을 봉쇄한다. p.426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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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숨을 고른다. 노을에는 곧 넘어갈 듯한 해의 파스텔톤 숨결이 번져있다. 즐겨듣던 노래처럼 추억은 소중했고, 나는 후회없는 그림으로 남길 원했다. 가끔은 실패마저도 꽤나 근사한 이야기를 선물하곤 한다. 봄비와 겨울비와 가을 공기와 여름 노을을 좋아한다. 오늘 하루 잠시라도 하늘과 마주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해가 있어 다행이다. 


-2018.06.18 @PrismMaker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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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걸 쓰고 있었습니다. 이제 초고를 완성했어요. 이건 초고의 잠정 목차구요.

어렵게 읽고 쉽게쓰자고, 한국어를 한국말로, 학술을 일상어로 번역해보겠다고 

씨름하던 나날들이 떠올랐어요. 10권의 고전(명저)을 골랐어요. 

쉽고 재밌게 요약을 했구요, 제 생각을 덧붙였어요.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연재했었는데(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했다고..)

매번 좋은 반응 보여주셔서 기 안죽고 결국 완성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출간기획서를 쓰고, 출판사에 원고파일 돌려보려구요.

수십차례 어쩌면 수백차례 거절당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어느 한 곳은 

이 원고의 진가를 알아봐주겠다 싶어서, 젊음의 특권인 무모한 도전을 한 번 해봅니다.


2018.6.11 새벽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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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06-11 0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목차만 봐도 이미 작가 같은데요. 도전 응원합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6-11 14: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큰 응원이 됩니다ㅠ

cyrus 2018-06-11 0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리즘메이커님의 책이 나오기 전에 목차에 언급한 책들 먼저 읽어야겠어요. ^^

프리즘메이커 2018-06-11 14:57   좋아요 0 | URL
이렇게 꺼내고 나니 또 부끄럽습니다ㅠ

비연 2018-06-11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홧팅이에요. 잘 되실 거 같아요. 목차만 봐도~

프리즘메이커 2018-06-11 14:5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책으로 내볼게요!!

포스트잇 2018-06-11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해요!

프리즘메이커 2018-06-11 14: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8-06-11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6-11 14:5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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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진왜란 이전의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부라는 거대한 무대의 주변부였으며, 21세기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정학적 요충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해양 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을 꾀했으며, 대륙의 한인 세력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이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 p.9

 

 

  

 2013년 말에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선임연구원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한은 종종 21세기의 중국과 북한보다 1930년대의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비꼰 것이 미국의 입장을 상징한다. p.13

 

  

현재 한반도의 독립과 번영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국가를 굳이 들자면,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p.13

 

  

  

이런 의미에서 2015년 현재 유라시아 동해안의 상황과 구한말과는 전혀 다르며,120년 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한국 일각의 해석은 역사의 전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결과다. () 그러나 각 시대와 지역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 시기의 역사가 후대에 반복된다는 발상은 학문이 아닌 종교에 속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에 군사-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을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p.13

 

  

 

또한 한반도 북부에 진입한 일본군은 개전 때 경험하지 못한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임진왜란 이전에 한반도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세력은 언제나 해양이 아닌 대륙 쪽에서 왔다. 따라서 조선을 비롯해 한반도에 자리했던 국가는 영토 북쪽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남쪽에는 소규모의 왜구 세력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병력만을 배치했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이 무력하게 무너진 이유가 이것이다. () 여기에다 날씨도 조선군을 도왔으니, 따뜻한 기후의 일본열도 서부 출신이 주축을 이룬 일본군 장병은 한반도 북부의 혹독한 겨울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p.59

 

 

   

그러나 건주여진의 누르하치는 빠른 속도로 여진 집단을 합병해나갔고, 임진왜란으로 조선과 명의 관심이 유라시아의 해양 세력인 일본으로 가 있는 사이에 그 과정을 거의 완성했다. 말하자면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끝낸 뒤 통일 일본 세력이 한반도를 공격하고, 그 파장으로 만주지역의 전국시대가 끝나는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p. 62

 

 

   

유럽의 해부도를 입수했으니 실물과 대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막부의 허가를 받아 사형수의 몸을 해부해보니, 과연 인간의 몸은 한의학서의 설명과는 다르고 유럽 해부학서의 도판과 같았다. 중국책과 유럽책에 그려진 인체 구조가 그토록 다르니, 저자가 "중국인과 중국인 아닌 사람 간에는 (몸에) 차이가 있는 것인가?"라고 고민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바다. p.155

 

  

  

네르친스크조약은 역대 중국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외국과 평등하게 맺은 조약이었다. 이는 청나라의 지배층인 만주인이 준가르 세력을 절멸시키고자, 러시아에 중화질서에 입각한 상하 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실리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p.166

 

 

  

조선은 러시아군과 무력충돌하면서도 끝끝내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으며, 이들이 향후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예견하지 못했다. p.167

 

  

어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거나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167

  

 

"너는 양반집 자식이니 저 무식한 백성하고는 다르지 않느냐. 거기다가 너같이 잘생긴 사람이 어찌 그 고약한 교를 믿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있단 말이냐"라며 회유하는 심문자의 말에 "의리에 있어서는 상하의 구별도, 반상(班常,양반과 상민), 잘나고 못난 얼굴의 구별도 없고 다만 영혼만이 구별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18-19세기 조선의 가톨릭교도들은 지금도 '양반', '명문가'를 늘 입에 올리는 현대 한국의 시민보다도 더욱더 인간의 평등함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평등주의가 조선의 지배계급에는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적 사태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p.230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후 제시된 민족자결주의가 패전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계산의 결과로 나온 편파적인 사상이었음에도 조선 사람들은 이 사상의 보편성을 믿고 봉기했다. 마찬가지로 서구 국가들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18-19세기의 전환기에 크리스트교는 조선에서 계급 타파와 개인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서 기능했다. p.231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주민이 버린 차가 미국의 독립을 이끌었다면, 청나라 사람들이 버린 아편은 중국의 반() 식민지화를 이끈 셈이다. p.244

 

 

 

이러한 충돌을 통해 서구 세력의 압도적인 힘을 실감한 웅번들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에 급속히 접근했다. 이들 전쟁으로부터 3년 뒤인 1866년에 프랑스의 침략을 물리친 조선이 쇄국정책을 강화한 결과 국제 정세 변화에 더욱 둔감해진 것을 생각하면, '잘 진 것은 잘못 이긴 것보다 낫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p.256

 

 

 

 -당이 고구려 및 신라와 충돌했던 경험을 통해, 중원 세력은 한반도를 완전히 병합한다는 야망을 포기하고, 한반도 세력은 중원의 국가를 상국(上國)으로서 존중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도출하여 이를 천 년 이상 유지해왔다. () 그러나 임오군란을 계기로 중원 세력이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한반도 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일본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중원 세력을 축출하고자 했다. 이것이 1884124일에 김옥균 등이 쿠데타를 일으켜 3일간 정권을 차지한 갑신정변이다. p.279

 

 

  

하나는 "갑신정변 세력은 친일파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친일파라면 연구할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학계가 친일파 문제를 냉철한 학문적 관점에 입각하여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결과, 한쪽에서는 아무에게나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이들이, 또 한쪽에서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두 친일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탄생했다. pp. 280-281

 

 

 

이를 위해서는 유럽 문명의 결정체인 국제법, 현대적 군대, 입헌정체가 크리스트교 백인 이외에는 실현할 수 없다는 당시 유럽인의 편견을 깰 필요가 있었다. 무쓰 무네미쓰는 황해 해전의 "결과는 비로소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크리스트교 국가 이외의 국가에서는 유럽식 문명이 생식될 수 없다는 비몽사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나아가 우리 군대의 혁혁한 무공을 표명함과 동시에, 우리 국민 모두가 유럽 문명을 채용했고 이것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고 주장한다. p.293

 

 

 

여행자들은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으나 러시아와 만주에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활력과 인내를 보고, 그들이 집을 치장하거나 그들의 번영한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나는 조선 사람의 게으름을 기질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조선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며 가족과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p.327-328

 

 

 

 

한국인이라면 근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19세기 말에서 1910년에 걸친 병합 과정에 큰 분노를 느낄 터다. 그러나 극동재판의 대상이 된 시기는 1928-1945년이다. 이 시기에 이미 일본의 일부였던 조선인은, 타의적이라고는 하지만 만주국의 건국에 '애매모호한' 일본인으로서 참가했고 동남아시아의 전선에는 일본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이는 비단 조선인뿐 아니라 조선보다 이른 시기에 일본의 일부가 된 타이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극동재판에서는 조선인과 타이완인 일본군도 전범으로 처벌받았고, 한반도 남부에 들어온 미군은 식민지 조선의 해방자라기보다는 적국 영토에 대한 점령자로서 행동했다. pp. 355-356

 

 

 

그래서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이래 900여 차례의 침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고는 한다. 그러나 한반도 국가가 바깥을 침략한 사례 역시 적잖이 확인된다. 고구려인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라져간 주변 민족, 여진인을 철저히 탄압했던 조선 전기, 만주인-몽골인과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으로 진입한 소현세자의 조선군, '일본인'의 일원으로 참전한 태평양전쟁, 미군과 연합군으로 참전한 베트남전쟁 등등. 이러한 후자의 경험을 제쳐둔 채 '피해자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수립하려 한 결과,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수많은 희생자가 의도적으로 잊혀졌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베트남전쟁을 예로 들면, 한국인 '고엽제의 피해와 전쟁의 트라우마에 고통 받는 참전군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미 연합군에 살해된 베트남 주민을 잊고 있다. pp.364-365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미국 경제는 기존의 모든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고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신경제(New Economy)'의 환상을 떠올린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신경제라는 환상이 붕괴했듯이,중국이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달성한 성과가 민주주읮거 질서의 뒷받침없이도 확고한 것이 되리라는 주장 역시 결국은 기각 될 것이다. 더 강하게 말하자면 중국의 부상을 기뻐하는 한국 사회 일부의 모습을 보며, 중국과 한국을 동일시하려는 전통적인 오류에, 일본이나 미국에 대한 증오가 결합된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한국 사회는 언제쯤이나 중국이라는 프리즘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까? pp.368-369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서로를 '북한인(빨갱이)''일본인(친일파,매국노)'라고 비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뿐, 그 배후의 국제적인 상황을 간파하거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p.370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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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제외하고 5월 한 달 동안 처음 쉬는 날을 가졌노라 첫 문장을 완성했는데, 벌써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학기 후반부에 갑자기 여러 일거리가 몰려왔다. 지도교수님의 학부 수업에 주2회씩 들어가게 되었고, 다른 수업에서 원치 않은 발제를 대신 떠안게 되었고, 그와중에 페이퍼 발표 순번이 돌아왔다. 거기엔 두 달이나 준비기간을 줬으니 퀄리티를 높여오라는 엄포가 복리로 동봉되어 있었다. 공모전을 두어개쯤 나갔고, 기사 마감 하나와 등반대회 및 킥스 같은 자잘한 학과행사가 있었는데, 거기 있었던 나는 아마 내 본체가 아니라 그림자 분신 중에 하나였으며, 실체는 사회대 530호에 유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달 동안 한 권의 이론 원서를 읽었고, 영어 논문 한 편, 선행 연구 10개 가량, 17개의 참고문헌을 살펴서 철야밤샘을 한 끝에 소논문을 하나 완성하였고 발표를 했다. 꽤 완성도있게 잘 썼으나 곳곳에 여기저기 빨간줄이 그였고, 수정해서 퀄리티를 높여오라는데, 내가 부족해서인 것인지 나에게 기대를 크게 걸고 있으신 건지, 여튼 지도교수님의 의중을 모르는 상태로 일단 오후 여섯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오후 네시에 일어나서 보니까 6월 6일이었던 것이다. 가르마 펌을 새로 했고 피로가 가득한 초췌한 얼굴로 셀카를 찍었고, 용건은 없는데 마음이 시켜서 시 하나를 옮겨 적었고, 카페에서 마음 편히 독서를 했다. 두 문단으로 정리되는 한 달을 살았는데 왜 이리 나는 바빴던 것일까. 앞으로도 페이퍼 두 개와 학회 아르바이트, 면접 아르바이트, 원고 마감과 두 개의 기사마감, 서평 대회와 공모전 참가를 각각 하나씩 앞두고 있다. 스스로 자처한 일인데 누구를 탓하리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일단 이번주는 쉰다.

- 2018.06.06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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