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문학이 대중문학을 죽인게 아니다. 대중문학이 천천히 자살했다. 대중문학 작가와 편집자, 출판사 들이 한 치 앞을 고민하지 않으면서, 당장 쉬워 보이는 길로만 가면서, ‘초판 2만 부’ 너머를 보지 않고, 제 살을 열심히 파먹었다. PC통신에서 일어난 거대한 에너지가 이렇게
한심하게 망했다. p.60
인간은 큰 사건 몇 개를 던져 주면 자동적으로 그 사건들을 잇는 이야기를 만드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별 몇 개를 이어 큰곰이니 물병이니 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을 밤하늘에 그리듯,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다. p.61
좋다. 허수 응시자가 반이라 치자. 그러면 젊은이 11만 250명이 고시촌에서 저런 공부에 매달리는 게 한국 사회가 지식사회로 탈바꿈하는 데 득이 될까, 해가 될까? p.108
나는 의견이 다르다. 자동차 회사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는 역사관이 뚜렷한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잘 만들거나 자동차를 잘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구직자의 논리력이나 표현력을 보고 싶었다면 고려·조선 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율 운행차나 카셰어링 문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물었어야 한다고 본다. p.109
가난하고 배경도 보잘것없는 젊은 감독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후다닥 영화를 찍고는 돈방석에 올라야 다른 가난한 천재들이 희망을 품고 영화에 도전한다. 이런 일이 꾸준히 발생하지 않는 분야는 18세기 조선처럼 시대에 뒤떨어진다. p.161
다만 어떤 무대에 입장하는 것이 부드럽게 거절당하거나, 또는 그 자리에 들어와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아 투명인간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 p.274
조지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르포하고는 그곳 광부들이 불평등과 부조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이렇게 서술했다. 그들은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라고. 무수히 많은 힘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줘서, 그들은 피동적인 역할만 하게 된다고. 그들은 자신들이 신비로운 권위의 노예임을 알고 있다고. pp.288-289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품을 경험재(經驗財)라고 부른다. 막 개봉한 영화,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음식 역시 경험재다. 경험재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얼리어답터족(族)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는 물건 앞에서는 지갑을 닫아 두는 게 인간 본성이다. p.309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서 ‘아, 이 책 읽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때보다는 ‘아, 저 사람이 자기 취향 고상하다고 자랑하고 싶었구나.’ 라고 느낀 적이 더 잦았다. p.345
공식적인 채널은 거의 다 어렵고 따분해 보이는 ‘좋은 책’들을 권한다. 그럴수록 소설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부, 정신노동이라고 여기게 된다. 독서 문화가 침체된 원인이 이것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이런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347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에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서관 이용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 실패란 ‘상당한 시간을 들여 꾹 참고 읽었지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책임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다. 한 독자는 내게 그런 상황에 대해 “기분이 더럽다.”라고 표현했다. p.351
그러면서 ‘우수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요즘 젊은이들은 대기업만 바라본다’고 그들을 꾸짖는다. 가증스러운 기만이다. 지뢰밭으로 들어가기 주저하는 군인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꼴이다. p.361
‘우리’는 선량한 피해자이며, ‘저들’은 자신들의 알량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공공선을 훼손하는 탐욕스러운 무리, 벌레들이었다. 양측 모두 이 선악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차없는 모욕의 언어를 동원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그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pp. 419-420
그들의 논리는 모두 조금씩 일리가 있었고, 동시에 조금씩 부조리했다. 양쪽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공공선에 부합하고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건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큰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었다. p. 420
그러나 가정이 잘못됐다. 애초에 선발 시험이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무능력한 사람도 더러 뽑히고, 당선되거나 합격할 때에는 유능했지만 이후에 노력을 하지 않아 평범해진 사람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현재기준으로는 유능하다고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부 경쟁이 없기에 이런 이들이 도태되지 않고 성안에 계속 머문다. 심지어 자신보다 유능한 후배들을 이끌고 지도하기도 한다. p. 425
한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쳤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많이 놓칠 것이다. 이 제도가 시험일 훨씬 이전부터 젊은이들의 가능성과 도전을 봉쇄한다. p.426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