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작가의 첫 SF소설

 

 

 

여느 날처럼 철이는 아빠와 즐겁게 산책을 나선다. 고양이 간식을 사느라 펫숍에 간 아빠를 기다리는 사이, 검은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온다. “, 등록이 안 돼 있는데?(p.25)” 그들은 철이에겐 인간에게서 방출되는 방사성 원소가 나오지 않는다며, 막무가내로 철이를 수용소로 끌고 간다. 철이가 불법 미등록 휴머노이드라며. 이게 무슨 소리야, 철이는 하루아침에 삶이 바뀐다. 알고 있고 믿고 있던 모든 것이 흔들린다. 수용소를 탈출하고 아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철이, 그 과정에서 끔찍한 참상과 진실을 목도한다.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간단하지가 않다.

얼마나 위태로운 믿음 속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살아가는 걸까.

- 작가의 말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로 7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한 김영하 작가. <살인자의 기억법>180페이지가 채 안 되고 그마저도 텍스트가 빽빽하지 않아 중편소설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이번 신작 <작별인사>도 그렇다(우연인지 일부러인지 두 책의 페이지 수가 똑같다). 7년간의 간극이 있지만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기 전부터 <살인자의 기억법>이 떠올랐다. 두 소설 모두 기억하고, 알고, 믿고 있는 것이 어디까지 진짜인지 나(주인공)는 누구인지(정체성) 작가가 끊임없이 묻고 있는 소설.

   

 

데뷔 때부터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잘 읽히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김영하 작가. <작별인사>는 오랜만에 낸 장편소설이면서, 김영하 작가가 SF소설을 쓴다 하여 출간 전부터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다. 통일이 된 까마득한 미래, 인간을 위한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탄생한다. 인간은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보다 하등품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어떤 면에선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데 집착한다. 주인공 철이도 그런 인간의 집착과 욕망의 산물이다.

 

 

17세 소년 철이도, 아빠의 부단한 조작과 개발로 자신이 사람인 줄 알고 살아가던 휴머노이드였다. 철이를 만든 아빠 역시 철이를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자식처럼 돌보며 애착을 가졌다. 이 사회에서 아빠는 범법자이다. 잠깐 보호자와 떨어진 철이를 잡아갈 만큼 사회적 관리와 질서는 철저해 보이지만, 철이가 겪는 버려진 휴머노이드와 클론의 세상은 아비규환이다. 버려진 존재끼리 학살하고, 부품(장기)를 팔거나 재활용하고이걸 정부 차원에서 공간을 만들고 방관한다. 누가 더 악인걸까.

 

 

<작별인사>에서 인간은 인간과 똑같은 기계와 아예 복제인간을 만드는 한편, 뇌의 데이터화 및 백업을 통해 영생의 꿈을 이루고야 만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결국 무너져 버린다. 수많은 SF소설이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경계했듯 <작별인사>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을 소설의 주조연으로 내세우며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책 제목의 의미였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흔들리며 다른 세계를 살게 된 철이, 그런 존재들이 이전 세계에 던지는 인사라는 의미일까.

 

기존 한국출판계에 김영하가 던지는 작별인사같기도 한 책이다. <작별인사>는 현재 일반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전자책구독서비스업체 밀리의서재에서 유명작가들과 신작계약을 하고 밀리오리지널이란 이름으로 종이책 사업을 시작했다. 그 세 번째 책인 <작별인사>는 밀리의서재에서 전자책으로 선공개한 후 종이책 한정판매를 시작했는데, 재밌는 점이 책을 낱권으로 구매할 수가 없다. 현재로선 밀리의서재에서 월정액 종이책 구독을 해 다른 책들과 같이 받아보거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아보는 방법밖에 없다.

 

 

이 때문에 김영하가 신작을 밀리의 서재에서 공개한다는 광고가 처음 떴을 때부터 출판인들의 SNS에서 논란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기존 그의 책을 냈던 문학동네에서 김 작가의 아내를 대표로 하는 임프린트가 나온다는 소식에 더욱 시끌사끌하였다. <작별인사> 종이책은 3개월간만 밀리의 서재에서 독점 유통하다가 일반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해 서점에 유통한다고 한다. 이런 출판 실험이 한국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 끝까지 한달음에 읽게 되는 가볍고 재밌는 소설이다. 왜 밀리의서재에선 서점 판매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일반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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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합의해야 할까요? - 만만한 보험사 고객이 아닌 ‘뭘 좀 아는 고객’이 되는 비결
김동진 지음 / 라온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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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합의해야 할까요?] 교통사고, 호구되지 않으려면




올봄, 오랜 장롱면허를 탈출해 본격적으로 차를 몰기 위해 운전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대물사고를 냈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와 주행 연습을 하다가 주차차량을 긁고 지나간 것이다. 도망가도 모를 만큼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현금합의를 하려 차주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일단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며 피해차주와 연락이 되길 기다렸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차주와 연락이 되었고, 공업사에 견적을 받아올 때까지 기다리란다. 결국 다음날 보험사접수를 했고 담당손해사정사와 부모님은 사고나자마자 보험사현장출동을 불러야 했다고 말했다. 피해차는 중고차였고, 차주는 일주일이 훨씬 지나 연락이 와서는 차 옆면을 다 바꿔야겠으니 250에서 300은 달라고 하였다. 보험사 손해보험사가 중재 끝에 최종 233만원으로 대물처리를 하고 보험료를 할증하는 것으로 사건이 끝났다. 일반도로였다면 불법주차에 지나치게 차도쪽으로 툭 튀어나오게 주차한 거라 상대방의 과실이 나왔겠지만, 거주중인 아파트 단지에 해놓은 주차라 100% 가해자 과실로 평가받은 것도 크게 비용이 나온 데 한몫하였다. 그때 교통사고가 생명도 생명이지만 순간의 실수로 큰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기에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에 <교통사고 합의해야 할까요?>를 읽으며, 그때 생각이났다. 그때 좀 더 알고 좀 더 차분하게 대처했다면 더 싸게 끝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또래 친구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한문철 변호사의 <블랙박스 몇 대 몇>이 있다. 변호사가 나와 교통사고 블랙박스영상을 보며 과실비율을 진단해주는 프로그램인데 흥미진진하다. 흥미진진하게 느낀다는 게 또래 대부분 차를 몰고 다니고, 그래서 이런 사고들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교통사고 손해배상이나 보험금 관련해 합의를 못해 소송까지 가면 2-3년은 기본이다. 재판부에서 과실을 판단하는 게 TV프로그램처럼 빠르 고 간명하게 결론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변호사를 사서 지난하게 싸워야 한다. 교통사고에 대한 상담 수요는 많은데 그에 대한 답변(정보제공)은 로펌, 보험사, 손해사정사 등의 노하우로 취급되어 무료로 양질의 정보를 얻긴 어려웠던 바, <교통사고 합의해야 할까오?>같은 책의 출간은 무척 반갑고 혹하다. 저자는 법률사무소의 손해배상팀장으로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책에서 자신의 직장이나 카페를 노골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는 않다.


책의 내용은 의외로 교통사고시 합의와 소송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안전운전 등 운전생활의 태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초반부에 담겨 있어 인상적이었다. 상식적인 내용이긴 해도 그런 걸 짚고 가면서 글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이 책 한권 읽고 교통사고시 야무지게 처리를 할 수 있다면 보험사나 로펌이 왜 있겠는가. 그래도 적어도 이 책 정도의 내용을 숙지하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완전히 호구가 되어 상대방과 보험사에 필요이상으로 돈을 뜯기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쉽게 법과 보험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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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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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소설가의 미술 감상은

 

 

 

 

학창 시절 음악이나 미술 감상문을 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떤 선생님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이나 음악에 영감을 얻어 밑도 끝도 없는 소설을 짓거나 을 풀곤 하였다. 평가가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지금도 미술과 음악을 어떻게 감상하고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참 축복이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보며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리코부터 호지킨까지 열 일곱명의 화가와 그들의 그림을 말하는 책. 미술에 대해 깊고 풍부한 지식이 넘친다기보다 제목처럼 아주 사적인 감상과 경험, 기억 등을 자분자분 푼 에세이다.

 

번역본을 감안해도 술술 읽히고 집중하게 만드는 에세이다. 줄리언 반스도 모르고 이 책에 다루는 화가들과 그림을 모르더라도 읽는 데 지장이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줄리언 반스의 글솜씨에 탄복하였다. 역시 소설가는 다르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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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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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여자의 몸, 여자의 운동, 깔깔대다 페미니즘

 

 

 

넌 책도 너 같은 귀여운 것만 읽네.” J가 턱을 괴고 단눈으로 쳐다본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이 말에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 한국 직장인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별다른 일정 없이, 그저 회사를 벗어나 푹 쉬기 위해 월요일에 같이 휴가를 냈던 우리. 당연히 자전거든 볼링이든 운동도 꼭 하자며 계획은 창대했으나, 휴가를 써도 숨쉬기 외의 체육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하는 책을 읽느라 더 운동을 못 하게 되었다. 자기관리와 자기만족 때문도 있지만, 살기 위해서 운동해야 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운동 안 하면 죽겠다는 깨달음은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돼 얻는다. J와 나는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웃다가 울다가, 서로를 그리고 책을 귀엽고 가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운동의 경험은 나를 잠깐 쥐었다가 놓으며 지문처럼 흔적을 남긴다 그것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으며 인지할 수 없다. 불시에 불쑥 솟아오르고서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 p.48

 

 

핫보디가 아닌 핫바 바디인 작가 아가씨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피트니스 업계의 기부천사. 아쿠아로빅, 필라테스, 요가, 헬스, 승마, 복싱 등 살면서 굉장히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는데 어느 한 운동도 한번에 3개월 이상 하지 못하고 강습료를 기부한다. 흔하디 흔한 게 작심삼일 돈만 내고 운동가지 않는 기부천사지만, 작가처럼 끊임없이 운동 무언가를 시도해 체육인생이 상당한 경우는 참 드물다. 흔히 젊은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지역 수영장 어르신 고인 물사이에서도 쭈삣쭈삣대면서도 제법 잘 다닌다. 다만 3개월은 채우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책날개의 체크리스트를 보고 야 너두? 야 나두!’하며 동지의식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책장이 넘어갈수록 의외로 존경심이 제법 쌓인다.

 

 

그때까지 나는 공복을 잘 견디는 것에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거식증을 겪는 여성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하던데, 결심한 대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스스로를 잘 통제한다는 기분에 빠지기 쉽다. - p.104

 

깔깔대며 공감하며 읽다 덜컥 손이 걸린다.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가 탁월한 점은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솜씨 속에 페미니즘 메시지를 잘 녹여낸다는 것이다. 정말 괜찮은 페미니즘 책으로 추천하고 싶지만,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단어만 들어도 무조건 날서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에 조심스럽다. 여자의 운동이 남자의 운동과 어떻게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지, 여자의 몸에 대해 여자가 강요받고 세뇌당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일상 경험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낸다. 그래서 여자의 운동만 알았던 여성독자들에게 사람의 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은 서평을 쓰느라 또 운동을 못했다. 내일 나의 몸과 운동은 안녕하기를, 미래는 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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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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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에세이를 읽는 이유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p.260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에세이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판사도 독자도 부담 없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고 한다. 과거 인기 작가를 포함해 유명 인사들의 외도, 펜굿즈 같은 느낌의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저자의 풀도 훨씬 넓고 새 저자 발굴도 활발하다. 다산북스 브랜드 놀에서 이달 출간한 <우리가 아는 농담>도 이런 시류에 발맞춘 에세이집이다. 가볍고 판형이 작아 휴대성 좋고, 가독성 좋게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을 쓴 김태연은 영화인이자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한예종에서 다시 영화를 공부하고 있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이 유명의 시작이고 이 책을 아는 우리는 옥석을 알아챈 선구자이길 바라며, 고단한 출퇴근길 짬짜미 책장을 넘겼다.

 

  

<우리만 아는 농담>의 소재는 여행을 좋아하거나, 일탈과 휴식이 간절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보라보라섬'에서 '외국인'남편과 한국아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보라보라섬은 설사 이름은 처음 들어봤어도, 사진을 보면 '', 유명휴양지다. 어느 날 불쑥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편도 비행기티켓을 끊고 프랑스령 보라보라섬으로 떠난 작가. 어느 날 불쑥 청혼 받아 어느 날 불쑥 결혼식 없는 결혼을 하고, 어느 날 불쑥 피자가게를 열고 어느 날 불쑥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9년을 살았고, 4년 동안 잡지에 연재한 일상에세이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섬 전체를 통틀어 '소비생활'이 가능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p.34)인 보라보라섬.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서 작가 역시 외딴 바다마을에서의 유유자적, 자급자족, 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p.252)을 꿈꿨지만 개뿔, 인생은 어느 장소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끼리 이렇게 시시한 얘기나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시시함이 아주 감사하다. - p.55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 p.57

 

외로운 사람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서로의 의로움에 더 쉽게 공감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에 더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 p.62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먼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기 때문이다. - p.207

  

 

'아재'들이 '자연인'에 열광하듯,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이국에서의 여유롭고 한가한 삶. 작가는 보라보라섬에서의 일상을 별거 아닌 듯 담담하게 쓰지만, 단한번도 가보지 않은 독자에겐 온갖 상상과 부러움을 자극하는 글이다. 어쨌든, 한국에선 느낄 수 없는 정서와 풍경이 있다. 책 중간중간 사진이 실려 있지만 에필로그 후에 일기 같은 짧은 포토에세이가 나열되는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됨을 보여주는 듯한. 특유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글을 빠르게 넘기다, 영화를 말하는 에세이에 손이 걸렸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그후 작가의 행보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가 얼마나 멋지고 씩씩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사소함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일, 그렇게 만드는 '우리만 아는 농담'. 그 시간의 길이는 상관없다. 남의 삶을 소비하는(에세이를 읽는) 이유를 이 책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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