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이 어깨동무문고 3
성영란 지음 / 넷마블문화재단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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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이] 장애가 아니고 다름이다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혜영이는 오늘도 속으로만 말한다. 멀찍이 숨어서 또래 아이들을 지켜본다. 끼고 싶지만 놀림을 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때 어떤 아이가 말을 건다. 수아다. 수아의 도움으로 혜영이는 나무에 올라가고, 수아와 함께 두툼한 나뭇가지에 앉아 풍경도 보고 수다도 떨 수 있었다. 그림책에서 혜영이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어린이로 설정되어 있다. 보통 누군가 이사를 오면 처음 봐서 궁금해 하기 마련인데, 이 동네 어린이는 혜영이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질문하기 전에 몸이 다르게 생긴 것을 보고 놀리기만 하였다. 그런데 수아는 다르다.


 

난 수아야. ? 넌 등이 동그랗네? 신기하다.”

 

 

그림책 상의 묘사를 볼 때 혜영이는 곱추로 추정된다. 하지만 수아에게 그건 그냥 신기하게 등이 동그란 거고, 혜영이의 수많은 특성일 뿐이다. 수아는 피아노 못 치는 아이, 혜영이는 등이 동그란 아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쿨하고 열려 있는 수아에 감탄 좀 해볼라 찰나, 생각지 못한 전개와 결말과 마주한다. 그 역시 수아가 너무쿨하기 때문이다. 혜영이는 엄마가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평소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줄 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엄마의 등에 업혀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며, 내일이 오기 꿈꾼다. 지금 아이들도 해질 때까지, 학원 가기 전까지 동네에서 친구들과 몰려 노는 경우가 있나. 일단 30대 이상의 어른이 보기엔 자기 어릴 때가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올봄 장애인부터 사회적 약자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어깨동무문고 출판을 시작한 게임회사 넷마블. KC인증마크를 달고 래핑 처리에 출판·유통하고 있는 어깨동무 문고는 판매수익금 전액을 다음 그림책 출판과 배포에 쓰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혜영이>는 어깨동무문고 세 번째 그림책이다. 이번 그림책부터는 교육 및 복지기관 기부에도 판매수익금이 쓰인다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성영란 작가는 광주의 어느 복지관에서 만났던 소녀에서 영감을 얻어 <혜영이>를 그리고 썼다고 한다. ‘장애가 아니고 다름이다. 그 다름이 장애라는 이름으로 차별받고 소외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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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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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평생을 살며 잊히지 않는 영화가 있다.

꼭 평론가들의 평점이 높고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걸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개인에게 큰 인상으로 박혀, 살면서 자주 보지 않아도 좋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별일 없으면 영원히.

내게 그런 영화 중 하나가 초등학생 때 본 <포레스트 검프>이다.

자폐아가 우연의 연속으로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게 되는 이야기

톰 행크스의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던 영화.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땐 원작 소설의 완역본이 절판이었다.

언젠가 다시 복간되길 바라며 또 그렇게 한참을 잊고 살았다.

얼마 전 신간을 보다가 미래인에서 정영목 번역의 <포레스트 검프>가 나온 걸 발견하였다.

당장 찾아 읽기 시작했다. 표지도 그래보이지만 미래인 하면 청소년 출판사 이미지가 강해 혹시 축역본은 아닐까 염려했는데 완역본이었다.

그리고 알고봤더니 예전 완역본도 정영목 번역이며, 이번에 거의 20년만에 개역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인의 어눌한 말투와 어휘력을 살려 번역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한 번역이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원서가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아찌, 깡패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깡패란 표현이 문맥상 의아하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어서 검프가 어떤 이들을 그렇게 칭하는 건지 알 듯 말듯하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시종 영화를 떠올리고 영화와 비교하며 읽게 되는데, 영화와 다른 부분이 많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너무나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왔다.그런데 이 소설을 보니, 이 소설은 영화와는 다른 결로 재미지고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른이 되어 검프를 보니 검프의 순수함,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엉뚱함 같은 게 많이 부러웠다.

​1986년 작, 윈스턴 그룸 장편소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히는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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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내 친구 어깨동무문고
진보경 지음 / 넷마블문화재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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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내 친구] 내게 너무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소리 "하야야! 야아?"

 

 

 

-지우 대안학교 들어가니까 좋아?- “애들 다 이상해요” -애들 다 이상한데도 좋아?- “, 정상인 척 안 해도 돼서 좋아요.” 이달 초 봤던 영화 <증인>에서 크게 와 닿았던 대사다. 정상과 장애의 구별이 꼭 필요할까. 지금 우리가 장래로 규정하는 것들도 그냥 개인적인 특질로 보면 안 되는 걸까.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란 책을 읽다가 크게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청각장애인들이 정상인을 차별하고 자녀도 청각장애인이길 소망하며 그들만의 공고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고, 그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 자신도 충격이었다(알게 모르게 차별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흔히 아름다움을 선호하고 이상한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일수록 노골적으로 예쁜 선생님을 밝히고, 신체적 결함이 있는 또래를 따돌린다고들 한다. <조금 특별한 내 친구>가 다루는 것도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다. 유치원 졸업반에 올라간 하나, 어느 날 가장 동생반 아이들보다 더 동생 같은 친구 라희가 같은 반에 입학한다. “하야야! 야아?” 언제나 큰 소리로 말하는 라희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 말. 그리고 반에서 하나를 가장 좋아하며 따라다닌다. 하나는 조금 무섭기도 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아무리 애써도 라희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던 하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그걸 보고 당황한 라희도 따라 엉엉 운다. 남은 이야기는 하나가 라희의 말 하야야! 야아?”의 뜻을 알아채고 둘도 없는 친구로 친하게 지낸다는 훈훈한 결말을 향해 전개된다. <조금 특별한 내 친구>를 보며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장애인 친구들, 특히 어릴 적에 함께 놀던 장애인 친구들이 생각났다. 유치원에 입학해 친구를 사귀지 않고 책만 본다는 이유로 8개월 동안 선생님께 발달장애를 의심받았던 일도 생각났다. 통지표를 읽고 놀란 나에게 웃으며 엄마가 했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그냥 각자 다를 뿐인데 선생님이 아직 OO를 잘 모르나 보다.”

 

 

작년 게임을 통해 문화를 만들고, 인재를 키우고, 마음을 나눕니다라는 모토 아래 넷마블문화재단을 세운 게임회사 넷마블. 올봄 장애인부터 사회적 약자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어깨동무문고 출판을 시작하였다. <조금 특별한 내 친구><빨간사자 아저씨>에 이어 나온, 어깨동무문고 두 번 째 그림책이다. 래핑 처리, KC인증 안전 그림책. 어깨동무문고는 판매수익금 전액을 다음 그림책 출판과 배포에 쓰는 제작 시스템이라 한다. 이 책을 그리고 쓴 진보경 작가의 소개 글이 공감되고 감동적이라 인용하며 서평을 갈음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과 다른 속도로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평균이라는 잣대로 나누는 건 어른들의 부끄러운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 모두 편견 없이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행복한 그림책을 더 많이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 진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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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자 아저씨 어깨동무문고
이소라 지음 / 넷마블문화재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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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자 아저씨] 같은 얼굴 다른 마음, 콤플렉스가 아니라 나만의 매력!


  

 

동네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빨간사자 아저씨는 항상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장사를 한다. 단골손님 아기 토끼는 그런 빨간사자 아저씨가 무척 궁금하다. 편찮으신 걸까, 비를 미리 피하시는 걸까, 혹시 머릿속에 뭔가 숨긴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상상을 해본다.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온 어느 날 용기를 내 빨간사자 아저씨께 묻는다. “아저씨는 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어요?” 알 듯 말 듯한 뜬구름 잡는 소리만 가득 말하던 아저씨가 무지개 건너 코뿔소 할아버지의 잡화점까지 들리도록 엉엉 운다. “울퉁불퉁 못생긴 머리 모양이 창피해!” 빨간사자 아저씨는 머리 한쪽이 움푹 패여 있던 것이다.

 

 

며칠 전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자의 인터뷰 하나를 봤다. 그 인터뷰에서 가장 충격받은 것은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자의 상당수가 자살을 택한다는 점이었다. 인터뷰이는 담담하게, 자신이 성형부작용카페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중 자기만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외모 콤플렉스로 수술을 택한 이들이기에, 의료피해사실 자체보다 자신의 그 선택이 외모의 결함을 더욱 증가시켰다는 것을 못 참는다. 이소라가 그리고 쓴 그림책 <빨간사자 아저씨>는 흔치 않은 신체 특징으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로 소재로 한다. 너무나 꽁꽁 숨겨 남들은 전혀 몰랐던 비밀.

 

 

주인공 빨간사자 아저씨는 다른 사자와 달리 머리 한쪽이 찌그러지고 갈기털도 적은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낀다. 그래서 장사하는 내내 손을 바꿔가며 찌그러진 머리 부분을 가린다. 그림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부끄러워서 얼굴이 원래보다 더 빨갈 수도 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빨간사자 아저씨는 자신감도 자존감도 낮다. 그림책 <빨간사자 아저씨>는 그런 빨간사자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찾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날이 바뀌어도 모습은 그대로다. 하지만 달라진 마음으로 보는 자신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스토리텔링과 발상도 적당히 기발하고, 주인공이 한참 있다 등장하는 점도 신선하다.

 

 

게임회사 넷마블은 올봄 훈훈한 도전을 하였다. 자사가 세운 넷마블문화재단에서, 장애인부터 사회적 약자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출판사업을 시작하였다. <빨간사자 아저씨>는 넷마블문화재단의 그림책 시리즈 어깨동무문고의 첫 책이다.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손홍일 교수가 감수를 맡아, 내용이 흔한 듯 꽤나 섬세하다. 이소라 작가의 전공인 판화는 어떨까 궁금할만큼 개성 있는 책그림이었다. 어깨동무문고는 독특하게 판매수익금 전액을 다음 그림책 제작에 쓰는 시스템이라 한다. 부디 널리 알려져 계속 다음 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래핑 처리, KC인증 안전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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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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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위대하고 무서운 예수의 일곱 문장

 

 

그리스도인들은 미사(예배) 때마다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을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청원 기도문이다. 사도신경은 교회 안에서 형성하고 확립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압축되어 있는 신앙고백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이며, 신구교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그중 더 중요한, 최고의 기도문을 꼽자면 단연 주님의 기도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이 기도를, 우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찬 마음으로 읊는다. 다양한 곡조와 장르로 노래 부르기도 하고, 주모경과 묵주기도로 삶에 항상 가까이 둔다. 한국 천주교회에선, 한동안 미사나 행사에서 전 신자가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유행이 불었고, 위생과 심리적 거부감상 자제를 부탁한다는 주교회의의 권고가 있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서 오늘날로의 전환이 너무 성급하거나 사려 깊지 못하다면,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주님의 기도 해석도 결국 자기 생각으로 끝나고 만다. - P.13

 

가톨릭보편적인이란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에 입각해 세상 만민을 포용하는 종교이다(물론 역사적으로 과오도 많이 저질러 아직도 사죄하고 있지만). 그래서 대단히 세속화가 잘 되어 있는 종교며, 중앙집권적이고 보수적이지만 끊임없는 쇄신과 회개를 촉구하는 종교다. 교리도, 성경해석도 시대에 맞춰 바뀌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원형은 루카 11(6가지 청원)과 마태오 6(7가지 청원)으로 대단히 짧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현재의 기도문으로 확정되었다. 독일의 성경 주석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저서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에서 오늘날 주님의 기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소개하며,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다. ‘Neu Ausgelegt(Redesign)’란 표현을 제목에 붙이며 주님의 기도를 돌아보는 책, 11월 광주가톨릭대총장 김혁태 신부의 번역으로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편의 현재적 해석과 변형들 뒤에는 사실 의도적인 전략이 숨어 있다. 곧 모호하고 포괄적으로 들리는 주님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이 기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상황에서는 실제로 전혀 모호하거나 포괄적인 기도가 아니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걱정과 제자들의 필요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기도였다. 또한 주님의 기도는 각 청원마다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주님의 기도를 해석하면서 이 기도에 담긴 당시 상황과 구약 성경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 시대 우리 현실에 적용한 해석은 무엇이나 빈말로 끝나고 말 것이다. - pp.19~20

 

여하튼 주님의 기도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의 기도이다.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원의와 계획은 잊고, 오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만을 바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모든 청원의 마디마디 핵심을 이룬다. 그러니 이런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이 기도는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위험한 기도가 된다. - p.38

 

주님의 기도는 청원기도다. 전반부의 세 청원은 하느님에 대한 것을(1)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2)하느님의 나라가 오소서 3)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후반부의 네 청원은 인간에 대한 것을(4)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5)죄를 용서하소서 6)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7)악에서 구하소서) 담고 있다. 마태오 복음엔 루카 복음엔 없는 세번째 청원과 일곱째 청원이 덧붙여져 있다. 로핑크 신부는 마태오 복음에 덧붙여진 이 두 청원이, 완전수 7에 맞춰 늘린, 두번째 청원과 여섯 번째 청원의 보완적 성격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은 주님의 기도의 일곱 청원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집중하며, 이런 청원이 중요했던 예수 생전부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를 살펴본다. 주님의 기도만 잘 헤아려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기도의 의미와 힘을 알면, 이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선물이었는지 전율하게 된다. 더욱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된다.

 

주님의 기도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한 사람은, 이 기도가 결과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안다. 주님의 기도는 위험한 기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히 이 기도를 바쳐도 된다. 주님의 기도에는 엄청난 신뢰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 p.180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주님의 기도는 짧고 명료하다. 하느님 앞에서는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교회가 전해 준 대로 주님의 기도를 날마다 바쳐야 한다. 천천히, 깊이 새기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값진 보물마냥 주님의 기도를 잘 간직해야 한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교적 삶의 핵심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지도 보여 준다. 이 기도야말로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 p.187

 

가톨릭은 공동체와 일치를 강조한다. 교회나 사회가 위기를 겪을 때 집단적으로 주요 기도문을 반복하며 이겨내고 믿음을 지켜왔다. 묵주기도가 대표적이다. 앞서도 말했듯, 우리 교인들은 늘 갖가지 방식으로 주님의 기도를 읊는다.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임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린 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을 강조하셨고,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해 하느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어린 양들이다. 오히려 신학적 지식도 전혀 없고,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를 읽어본 적도 없지만, 주님의 기도만을 반복하고 집중하는 이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로핑크 신부의 요지도 결국 그것이다. 남의 해석도 자신의 욕망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주님의 기도를 바라보는 것. 그래서 책이 길지도 않다. 눈 있고 귀 있는 자는 바르게 보고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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