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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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에세이를 읽는 이유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p.260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에세이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판사도 독자도 부담 없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고 한다. 과거 인기 작가를 포함해 유명 인사들의 외도, 펜굿즈 같은 느낌의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저자의 풀도 훨씬 넓고 새 저자 발굴도 활발하다. 다산북스 브랜드 놀에서 이달 출간한 <우리가 아는 농담>도 이런 시류에 발맞춘 에세이집이다. 가볍고 판형이 작아 휴대성 좋고, 가독성 좋게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을 쓴 김태연은 영화인이자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한예종에서 다시 영화를 공부하고 있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이 유명의 시작이고 이 책을 아는 우리는 옥석을 알아챈 선구자이길 바라며, 고단한 출퇴근길 짬짜미 책장을 넘겼다.

 

  

<우리만 아는 농담>의 소재는 여행을 좋아하거나, 일탈과 휴식이 간절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보라보라섬'에서 '외국인'남편과 한국아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보라보라섬은 설사 이름은 처음 들어봤어도, 사진을 보면 '', 유명휴양지다. 어느 날 불쑥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편도 비행기티켓을 끊고 프랑스령 보라보라섬으로 떠난 작가. 어느 날 불쑥 청혼 받아 어느 날 불쑥 결혼식 없는 결혼을 하고, 어느 날 불쑥 피자가게를 열고 어느 날 불쑥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9년을 살았고, 4년 동안 잡지에 연재한 일상에세이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섬 전체를 통틀어 '소비생활'이 가능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p.34)인 보라보라섬.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서 작가 역시 외딴 바다마을에서의 유유자적, 자급자족, 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p.252)을 꿈꿨지만 개뿔, 인생은 어느 장소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끼리 이렇게 시시한 얘기나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시시함이 아주 감사하다. - p.55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 p.57

 

외로운 사람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서로의 의로움에 더 쉽게 공감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에 더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 p.62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먼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기 때문이다. - p.207

  

 

'아재'들이 '자연인'에 열광하듯,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이국에서의 여유롭고 한가한 삶. 작가는 보라보라섬에서의 일상을 별거 아닌 듯 담담하게 쓰지만, 단한번도 가보지 않은 독자에겐 온갖 상상과 부러움을 자극하는 글이다. 어쨌든, 한국에선 느낄 수 없는 정서와 풍경이 있다. 책 중간중간 사진이 실려 있지만 에필로그 후에 일기 같은 짧은 포토에세이가 나열되는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됨을 보여주는 듯한. 특유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글을 빠르게 넘기다, 영화를 말하는 에세이에 손이 걸렸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그후 작가의 행보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가 얼마나 멋지고 씩씩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사소함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일, 그렇게 만드는 '우리만 아는 농담'. 그 시간의 길이는 상관없다. 남의 삶을 소비하는(에세이를 읽는) 이유를 이 책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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