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소녀 반다 - 거울아 거울아, 내 모습을 어디로 가져갔니? 글로연 그림책 6
시우바나 지 메네제스 글.그림, 김정아 옮김 / 글로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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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소녀 반다]

그림책이 문학상을 받은 까닭은 : 모두를 홀리는 괴상한 그림책

 

반다는 뱀파이어지만 피를 싫어합니다. 채식주의라 피부는 초록색입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지 않습니다. 반다는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없어 속상합니다. 그래서 반다는 슬픕니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뱀파이어가 가진 불멸의 생명 따윈 기꺼이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반다의 곁에 늑대소년 토니가 찾아옵니다. 토니의 눈엔 반다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토니는 반다와 정반대로 거울에 흉한 자기 모습이 비치는 게 고민이라, 반다의 슬픔을 잘은 알 수 없지만, 반다를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합니다. 토니의 고백에, 토니가 묘사하는 자신의 모습에, 반다는 더 듣고 싶어 귀를 쫑긋대며 앞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함께 하고 사랑하는 한, 반디와 토니는 행복할 것입니다.

동물이나 영아들에게 거울 실험을 많이 한다. 거울의 반사 속성을 이해해서, 자신을 비롯해 거울 속에 비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지능이나 발달 가늠척도이다. 뱀파이어기 때문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 것을 비관하는 소녀를 소재로 한 <뱀파이어 소녀 반다>도 그런 의미에서 일차적으로 영유아 대상 성장발달그림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반다가 최소 유치원생 이상 나이라는 점, 꽤나 로맨틱하다는 점 때문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이 공감하고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뱀파이어 소녀 반다>는 주독서층을 한정하기엔 아까운, 여러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그래서일까, 실제 이 책은 2008, 그림책 관련 상이 아닌 포르투갈어권 문학 최고상인 자부치상을 수상하였다.

 

뱀파이어 소녀에, 늑대인간 남자친구까지 등장해서인지 <뱀파이어 소녀 반다>의 삽화는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어둡다. 그런데 그 이야기만큼은 따스하고 달콤해서, 삽화도 수긍이 가고 귀엽게 느껴진다. 뱀파이어인데 채식주의라 얼굴까지 초록색이 된다니, 제법 유머도 있다. 처음 이 책을 보며 눈에 들어 온 것은 시작 부분 반다가 거미줄 한 가운데서 몽크의 <절규>를 보는 한 표정과 몸짓으로 허우적거리는 장면과, 반다가 관 속에 웅크려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외롭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전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자고 있는 반다는 몹시 평온해 보이는데 말이다. 반다에게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삶이 아무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만큼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드디어 방법이 생긴다.

 

토니처럼 흉한 자신의 모습이 싫어 거울보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뱀파이어 소녀 반다>는 거울 속에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뱀파이어 소녀 반다>는 한창 거울이 신기하고 자기 인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겐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어 괴로웠던 반다와 자신을 비교하며 생각할 시간을, 반다와 토니 또래의 아이들에겐 기발한 상상력의 짧은 이야기를 느낄 시간을, 삶에 지치고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어른들에겐 귀여운 사랑이야기에 웃음 지을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나에서 너를 거쳐 우리와 사랑으로 확대되는 그림책, <뱀파이어 소녀 반다>는 누구나 흠뻑 빠질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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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눈이 깊은 아이 문학을 보다 1
방정환 글, 이일선 그림 / 눈이깊은아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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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창남이가 만년샤쓰를 입은 사연은

어려운 시대, 유쾌하게 함께 이겨내는 창남이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 본받을 그의 매력과 미덕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날 한창남 군은 샤쓰 없이 맨몸, 으으음 즉 그 만년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본문

 

 

고등보통학교 1년급 을조 한창남(현재 중1;일제 강점기에는 오늘날 중고등학교를 통합한 개념인 5년제 고등보통학교 체계였다), 비행사 안창남과 이름이 비슷해 비행가란 별명을 가진 창남이는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격에 인기가 많다. 선생님께도 넉살 좋게 농담을 건네며 항상 학급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창남이는, 철봉을 좀 못하는 것 말고는 연설도 잘하고 토론도 잘하는 등 다재다능하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창남이는 사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이십 리도 넘는 길을 걸어 학교를 오고, 옷이고 모자도 다 헤어졌다. 하지만 한 번도 얼굴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법이 없다.

 

그도 모자라, 굽이 완전히 분리되어 악어처럼 입 벌리는 신발을 신고 오질 않나, 맨몸에 교복 저고리만 입고 오질 않나(이 사건으로 창남이의 별명은 비행가에서 만년샤쓰로 바뀐다), 교복 바지 대신 구멍 뚫린 조선 겹바지에 맨발로 온다. 궁금하다 못한 선생님이 묻는다. “어째 그리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그 뒤로 뭉클한 창남이의 선행 사연이 이어진다. 온 마을에 불이 나서 모두 불탄 집도 있는데 우리 집은 반밖에 안 탔으니 어머니와 나 당장에 입을 옷 한 벌씩만 남기고 이웃에 나눠졌다는 이야기, 창남이는 그도 모자라 교복바지도 남 주고 벌벌 떠는 어머니에게 사실은 두벌이 있다 거짓말하고는 셔츠에 버선까지 벗어줬단다.

 

동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슴 한편을 툭치는 결말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만년샤쓰>는 방정환이 몽견초란 필명으로 1927<어린이> 3월호에 발표한 동화이다. 거의 90년 전 이야기니 할아버지도 넘어 최소 증조할아버지뻘은 되는 창남이인데 지금 우리 아이들도 배울 점이 많고 친구하고 싶은 아이다. 1927년이면 일제 강점기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지만 그래봤자 수탈받는 식민지 국민이었고 고달픈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창남이처럼 밝고 건강하게 이웃과 연대하며, 자신을 잃지 않으며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책마루가 임프린트 눈이깊은아이의 첫 그림책으로 <만년샤쓰>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성 때문이리라. 최대한 원문을 살리되 오늘에 맞게 다듬은 문장과 이일선의 익살스런 삽화가 어우러져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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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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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의 기적;잃어버린 아이]

한 모자의 평생으로 드러낸 가톨릭과 아일랜드의 추악한 과거

 

 

 

가톨릭에서 성가정은 평신도의 의무이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고 피임과 낙태는 죄악이다. 원리주의 입장에서는 사후피임약을 살인도구로 몰고, 성폭행에 대해서도 예외를 두지 않아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대에 맞춰, 교리도 융통성 있게 바꾸지만 한계가 있다. 때문에 교도들은 성생활에 대해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모성은 존경받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한 미혼모는 죄인이다. 섹스는 주님이 빚은 신체와 영혼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쾌락행위나, 그것을 기쁘게 즐겨도 될지 번식을 위해서만 거룩하게 임해야 하는지 죄의식과 물음이 늘 짓누른다. 결론은 육욕을 ‘적절히’ 통제하고 기본 교리에 최대한 충실하라는 것인데 그 ‘적절히’의 정도가 항상 고민이다. 성소공동체의 사목이 절대적으로 미혼자인 신부와 수녀에 달려 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필로미나의 기적;잃어버린 아이>는 이러한 가톨릭의 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교리에 대해 재조명하고, 그와 관련해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가톨릭의 과오를 짚었다.

 

 

열여덟, 자연의 섭리는 그녀와 그의 얼굴과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한창 예쁘고 발랄한 청춘남녀가 첫눈에 반해 헤어지기 싫어 함께 밤을 보냈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감정에 충실해 즐겼고 그 한밤으로 아기가 생겼다. 배가 불러오는 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아이 아빠와는 헤어진 지 오래고 찾을 수도 없었고, 확실한 죄의 증거를 품은 아이 엄마는 가족과 동네에서 내쳐져 자선 수녀원에 보내졌다. 타락한 여자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 수녀원에서 조용히 아이를 낳고, 참회와 노역으로 난잡한 성품과 음란한 육욕의 죗값을 치르며, 지인들의 기억에서 잊힐 만큼의 시간이 지날 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100파운드를 내면, 노역 없이 바로 수녀원을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50년대 이러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아일랜드 미혼모는 1만 명에 이르며, 평균 나이는 23세였다. 그녀들은 가톨릭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와 3년의 인생 포기하는 각서를 쓰고, 각종 노동에 시달렸다. 그녀들이 올린 수익과 정부 보조금, 그리고 아기들을 판 돈은 고스란히 가톨릭의 재산이 되었다.

 

  

  원장수녀는 자신이 잔인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녀에게 자선의 임무를 맡겼고, 그녀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선악의 경계는 너무나도 명확했고,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육체적인 사랑이었다. -p.24

 

  죽은 산모와 아기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근처 들판에 있는 묘비 없는 무덤에 묻혔다. (...) 흉측한 모양에 평범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교회에서는 죄지은 여자들이 거주하는 곳에 안락함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 3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이 기숙사 (...) 태양이 세상을 환히 비출 시간에도 방 안은 항상 어두컴컴했다.

  소녀들은 숀 로스 수녀원에 도착한 그날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버려야 했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거친 청 제복을 입었다. 제복은 헐렁한 자루처럼 생겼는데 그들이 지은 죄의 수치스러운 징후인 부푼 배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발에 상처가 날 정도로 묵직하고 딱딱한 나막신을 신었다. 머리카락은 서캐가 생기지 않도록 짧게 잘랐고, 코바늘뜨기를 한 빵모자로 머리를 가렸다.

  소녀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본명이나 고향조차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이곳에서 소녀들의 삶은 비밀과 외로움, 수치심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소녀들은 말 그대로 가족과 사회를 위해 ‘격리’되었다.

  기숙사 소녀들의 하루는 매일 새벽 여섯 시, 수녀원의 직원이 불을 켜고 침대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담요를 홱 걷고 거칠게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소녀들은 보육원으로 가 아기들을 보살핀 다음, 여덟 시에는 미사에 참석했다. 임신하거나 갓 아이를 출산한 백여 명의 비쩍 마른 소녀들이 말없이 컴컴한 복도를 비척비척 걸어 내려가 수녀원 성당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마다 한명 혹은 그 이상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기절했는데, 수녀들은 이를 고의적인 반항으로 간주해 벌을 내렸다.

  미사가 끝난 후 소녀들은 일을 시작했다. 각자 세 가지 일 중 한 가지를 맡았다. 세 가지 일이란 수녀원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 보육원에서 아기와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 혹은 수녀원의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는 일이었다. 소녀들이 가장 바라는 일은 부엌일이었다. 고되고 근무 시간도 긴 일이지만, 음식 부스러기를 몰래 훔쳐 변변찮은 식사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육원에서 일하는 소녀들은 길고 하얀 로브를 입은 보육 담당 수녀들과 수녀들이 고용한 일반인 직원의 감독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밤낮으로 일하며 쉴 새 없이 아기들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고, 아이 어머니를 불러 모유 수유를 하도록 해야 했다. 수녀들은 아기가 먹을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적어도 1년간은 모유 수유를 하도록 지시했으며, 대개는 1년 이상 계속되었다.

  세탁실 일은 가장 인기 없는 일이었다. (...) 세탁실 안에는 물통들이 석탄불 위에서 펄펄 끓고 있었는데, 지치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여자들이 시트와 수녀복, 수감자들의 제복 더미를 가져와 부글부글 끓는 물속에 던져 넣었다.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나무 막대기로 김이 펄펄 나는 물통을 휘저어야 했으며, 맨손으로 젖은 리넨을 만지다 보니 손은 거칠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 수녀들은 소녀들에게 비벼 빨고 비틀어 짜고 다림질을 하는 것이 그들의 영혼에 묻은 도덕적 때를 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지만, 이 세탁일은 또한 수녀원에 수입을 안겨 주는 일이기도 했다. 성당이 정말로 영혼을 구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돈벌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세탁실의 오전 근무는 짧은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나고, 어머니들은 그때 짬을 내어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오후 근무를 마친 후에도 저녁에는 건물 안을 청소하고 그 밖의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뜨개질과 바느질 시간이었다. 소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덕분에 많은 소녀들이 대단한 재봉사 수준의 솜씨를 터득하게 되었다. 라디오나 책도 없었지만, 보육원에서 아기와 함께 앉아 있거나 주간 휴게실에서 젖을 뗀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간은―소녀들이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고, 평생 동안 남을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을 쌓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이러한 사랑을 허락해 주는 것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잔인한 것 같았다. -pp.32~35

 필로리나는 해산할 때 아기가 다리부터 나오는 바람에 더욱 상처와 통증이 컸지만 죗값을 씻기 위해 진통제 한 알 먹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필로리나는 아기가 죽을까봐 무서웠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산 아기 앤터니를 낳았다. 로스크리 수녀원에서 죽은 아기와 산모들은 근처 들판에 묘비 없이 아무렇게나 묻혔다. 필로미나는 매일 앤터니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3년을 버텼고, 아들 앤터니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컸다. 그런데 앤터니의 이 사랑스러움이 비극이었다. 앤터니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애교 있게 뽀뽀하며, 한 살 어린 여자아기 메리를 친동생처럼 끔찍하게 여겼는데, 그 모습을 보고 메리를 입양하러 온 마지가 앤터니도 함께 입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3년이 지나면 아기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은 필로미나는, 예외 없이 친권 및 양육권 포기 각서 서명을 강요받고 절망한다.

아일랜드의 사생아들은 입양할 부부가 가톨릭 신자고, 아이 역시 신자로 키우겠다고 약속하면 최고 2000파운드까지 받고 팔았다. 표와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정부와 정치인들은 침묵했고, 무분별한 여권발급과 유리한 법 개정으로 적극 협력하기까지 하였다. 주 고객은 미국이었다. 유명 배우부터 자국에서 입양 결격 판정을 받은 문제 가정까지, 엄연한 인신매매를 죄의 씨앗을 성가정의 품으로 보내는 거룩한 사업이라 정당화하였다. 생모와 자식을 강제로 생이별시키는 것은 죄인과 죄의 씨앗이 받을 당연한 처벌이라고 여겼고, 종교의 반인륜적 행위에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앤터니와 메리는 중하위층과 노동자층이 많은 공화당 텃밭 지역인 미국 록퍼드에 입양되었다. 독일계 집안이었고, 이미 네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버지 닥 헤스는 의사였으며, 헤스 부부 역시 오랜 공화당 지지자였다. 이름을 그대로 쓴 메리와 달리 앤터니는 마이클로 이름을 바꿨다.

 

너 진짜 엄마 기억해? 진짜 엄마.

우리 진짜 엄마들은 우리가 나쁜 아이라 우리를 버린 거야.

진짜 엄마들은 우리를 미워한 거야. 그래서 우릴 멀리 보낸 거야. 나 오늘 나쁜 짓을 해서 엄마가 나한테 화냈어.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착하게 굴어야 돼. 만약 엄마가 우리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알게 되면, 엄마도 우리를 미워할 거야. 그리고 우리를 멀리 보낼지도 몰라.

그러니까 항상 착하게 굴어야 해. -p.132

 

마이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했다. 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괴로워했다. - p.141

 

모든 고아는 거부당해 본 경험이 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p.182

 

고아는 전체 인구의 고작 2~3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정신 병원과 소년원, 특수학교 수감자 중 30~40퍼센트를 차지하지. 또한 고아들은 비행, 성적인 방종,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아. 고아는 중독에 빠지기 쉬워.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것, 혹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을 벌충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지. 고아는 항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길 바라지만, 항상 언젠가는 자신이 거부당할 거라 생각하지.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고 자신이 아무 데서도 적응할 수 없다고 생각해. 생모에게 거부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지 자네 아들은 새 부모가 자신을 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내내 순종하고 따르면서 살아온 거야. 그러다 이제는 항상 말썽을 부린다고 했지. 그건 ‘당신이 날 버릴 거란 사실을 알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당신을 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이러한 행동을 ‘시험’이라고 하는데 꽤 극단적인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지. 이런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진 부류는 항상 인생을 망치지. 신뢰와 친밀감, 섹스와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어. 인생의 반은 기존의 사회에 적응하며 평범한 인생을 살려 안달하고, 또 반은 충동과 중독에 빠져들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pp.196~198

 

마이크와 직접 일하는 동료들도 교육받은 점잖은 사람들로, 공화당이 전국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편집증적인 동성애 혐오에 조금도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여성과 동성애자를 위한 평등권이나 낙태에 반대하는 운동조차 지도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저 유용한 아이템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이러한 캠페인에 보수적인 성격의 종파 신자들은 열광했고, 단순 무지한 사람들은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이크는 그러한 위선을 이해했다. 당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언제 어디서나 공화당 당원을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소수자 집단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라도 다수의 득표만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채택되었다. 따라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나 광신자 등의 소수를 제외하면 공화당을 운영하는 운영진들은 대개 재선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 p.390

 

마이크는 생모를 찾지 못한 것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았어. 그래서 아일랜드라는 실낙원에서 자신이 추방당했다고도 생각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때문에 안심도 되는 모양이야. 마이크는 한 번도 자신이 헤스 가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에게 아일랜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환상 같은 곳이야. 스스로 포근하게 감싸 주는 담요 같은 곳. -p.395

 

그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정당에 소속된 게이이자, 뿌리 깊은 확고함의 세계를 살아가는 뿌리 없는 고아였기 때문이다. -p.420

무려 520여 페이지에 걸쳐 1952년부터 현재까지 필로미나의 사연을 추적하는 <필로미나의 기적>은 무척 독특한 형식과 발상의 소설이다. 휴먼드라마의 형태로 전형적인 사회고발소설을 썼고, 굳이 장르를 구분하면 ‘논픽션소설’이라 칭해야 할 것처럼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화를 소재로 하였다. 일단 책 속의 모든 인물이 실명이며, 한 장이 끝날 때마다 현재 시점에서의 작가 마틴 식스미스가 등장해 저널리스트적이고 직접적인 코멘트를 덧붙인다. 그리고 제목과 달리 <필로미나의 기적>은 필로미나보다 마이클(앤터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필로미나와 함께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며 수집했던 자료들을 토대로, 입양 이후의 마이클의 삶을 재구성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마이클은 입양 트라우마로 발현 가능한 특이한 기질―불안정한 애착 형성과 관계 능력,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낳은 자기학대와 완벽주의, 중독 충동과 변태적 탐닉 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게이인 공화당원이었다는 것은 화룡점정이다.

  앤터니가 1955년 12월에 로스크리를 떠난 후, 필로미나는 이 주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수녀들은 그녀를 더블린에서 출발하는 페리에 태워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1956년 1월 14일부터 그녀는 리버풀 외곽의 비행소년을 위한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예수 마리아 성심수녀회는 수십 년간 옴스커크 소년원을 운영해 왔다. 몇 세대 동안 죄를 지은 소녀들이 그곳에서 소년들을 돌보며 하느님께 진 빚을 갚아 나갔다. 필로미나는 자신의 일을 싫어했다. 그녀는 소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운명 또한 동정했지만, 기회가 생기자마자 소년원을 떠났다.

  1958년 1월에 필로미나는 간호사 훈련을 받은 뒤 런던 북쪽에 위치한 세인트올번스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녀는 힐 엔드 병원의 정신병자들을 위해 일하면서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기는 끔찍한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녀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그녀는 매일같이 잃어버린 아이를 떠올렸고 꿈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리버풀과 세인트올번스에서 보낸 지난 12년간 그녀는 고통과 상실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서랍 한 개에 그곳에서의 기억을 가득 채워 넣었다. 아눈치아타 수녀가 브라우니 상자에 넣어서 준 조그마한 흑백 사진과, 아이가 처음으로 신었던 신발과 오랫동안 쓰면서 다 해진 크롬 버클이 달린 가죽 벨트, 한 웅큼의 까만 머리카락을 필로미나는 성물처럼 아꼈다. -p.514

<필로미나의 기적>에서 ‘기적’은 우리가 번역하며 우리 정서대로 덧붙인 것이다. 원제(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소설은 ‘기적’보다 ‘존재’에 중점을 둔다.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필로미나의 삶을 빠르게 보여주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하염없이 마이클의 삶을 보여준다. 마치 아일랜드의 정책과 가톨릭이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똑똑히 보라고 시위하는 듯한 모양새다. 휴먼드라마로선 전혀 반전 없이 예측한대로 전개되고, 작가가 저널리스트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려 좀 더 극적인 문체로 썼음에도 전반적으로 담담하고 이성적이다. 그럼에도 필로미나의 사연이 겨냥하는 실체는 세간을 술렁이게 하였고, 1950년대 벌어졌던 이 추악한 과거에 대해 작년 2월 아일랜드 총리 엔다 케니가 공식적으로 사과 표명을 하였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마이클이 게이에 모순적인 삶을 살게 되고, 양가족과 절연하고 생모를 찾는다는 점에서, 입양아에 대해 갖는 주요 편견을 강화하는 또 다른 사례가 될까 약간 걱정은 된다. 책과 영화 모두 국제적으로 히트했기에 더욱 걸린다.

 

   

필로미나는 자신의 비밀을 50년 동안 가슴에 묻고 애써 잊으려 하지만 실패하였고, 마이클은 입양된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사려 애썼지만 평생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였다. 천륜과 본능은 두 사람을 기적적으로 스쳐 지나게 하고, 기이한 인연으로 서로의 흔적을 찾게 하였다. 한 개인의 용단이 사회를 흔들고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그의 삶 자체가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우리 정서 식으로 해석하면, 기적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재와 삶 자체가 기적이다. 여전히 수천 명의 아일랜드 여자와 그녀들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서로를 찾고 있다. 작가는 그렇게 긴 서술로 채워 온 이 소설을, 미완성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후속을 염두에 둔 듯 한 애매한 서술로 결말짓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소설과 영화가 서로의 틈을 메우고 있지만, 여전히 작가가 언급한 소재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할 말처럼, 필로미나 사건이 안은 이슈와 교훈은 우리 시대가 매듭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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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남자를 말하다 - 손목 위에서 만나는 특별한 가치
이은경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시계 속성 과외, but not for a Mania

국내 유일 시계 컨설턴트 이은경의 ‘All that Watch’ 

   

"안목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안목이란 건 태어날 때부터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이미 정해진 거예요."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의 한 대사이다. 비단 안목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 대개 ‘내게 너무 먼 세계’의 물건, 사람과는 안 만나게 된다. 그러나 와인, 보석, 시계, 자동차, 스포츠 등 글로라도 어느 정도는 알 필요가 있는 분야들이 몇 있다. 직무 뿐 아니라, 연애 등 친교생활에도 요긴한 교양들이니 말이다. 남과 대화할 때 ‘말이 통하고’, ‘화제가 풍부한’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여자에겐 가방이라면, 남자에겐 시계이다. 자동차와 함께 대부분 남자들의 로망이자 잇 아이템이다. 중저가 쿼츠를 끼더라도 최소한 무슨 브랜드, 무슨 모델 이상은 되어야 한다. 여자들이 화장품이나 성형 귀신처럼 알아보듯, 시계 좀 좋아하는 남자치고 사람 만날 때마다 손목 쳐다보고 SNS 프로필 사진 한번쯤 시계(혹은 시계를 강조한 본인)로 해두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심지어 이 책 <시계, 남자를 말하다>를 읽고 있는 사람만 보고도 좋아 죽는 이도 있다.).

 

그런데 생각만큼 우리나라에 시계 전문가는 많지 않나보다. 저자의 직업인 시계컨설턴트만 해도 국내 최초이자 유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8년 동안 시계 보는 일을 하다 낸 그녀의 첫 책 <시계, 남자를 말하다>에선 사명감 같은 게 느껴진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시계 컨설팅이나 제목에 충실한 ‘남자와 시계’ 주제 외에 시계의 역사와 소개, 관련 에피소드 등 ‘All that Watch’라는 부제를 단 ‘시계종합서’를 출간했다. 이런 기획이 국내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지 똑같은 생각으로 3년 전 한 시계 전문기자가(심지어 시계 관련 일한 경력도 비슷)가 낸 <시계 이야기>란 책이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그 책을 제외하곤 국내 저자가 쓴 ‘시계책’은 없고 번역서도 거의 없다(있어도 너무 오래됨). ‘시계책’에 있어선 ‘국내 최초 유일’의 타이틀을 뺐긴 점은 저자에게 씁쓸하겠지만, 최신 정보가 담겼고, 거의 다루지 않는 주제의 책이 나왔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그저 반갑다.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책이 시계 마니아들의 니즈를 절대 충족시키지 못하며, 애초에 그들을 타깃 독자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소 각종 미디어 콘텐츠에서 시계를 다룬 것은 귀신 같이 찾아보고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 하나쯤은 가입한 그들에게, 특히 “암, 남자는 시계지!”하며 남성의 로망을 알아 준 이 책 제목에 감동하며 달려 올 남성 마니아들에게, 안타깝게도 <시계, 남자를 말하다>는 위키피디아 항목처럼 느껴질 뿐인 책이다. <시계, 남자를 말하다>는 시계 마니아를 제외한 모든 시계 관심자를 위한 시계 속성 과외 책이다. 명품 시계를 살 여력은 없지만 생활 소양을 쌓기 위해 시계를 알고 싶거나 앞으로 시계에 빠져보고 싶은 이들에겐 글로 빠르게 시계를 배울 수 있는 안성맞춤 책이다. 책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 저자는 기계식 시계(아날로그 시계)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시계가 없어도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특히 남자)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에 빠지고 열광하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클래식함(손목을 보면 그의 품격을 알 수 있다)’ 때문이라고 저자는 꼽는다. 액세서리 기능도 그렇지만 정밀 기술이 압축되어 있는 ‘기계’다 보니 기계나 장난감에 환장하는 니즈가 투영된 것으로도 보인다(일상생활에서 통감하는 것 외에 본문 속에 나오는 수많은 명사들의 시계 애호 에피소드를 봐도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이 제대로 된 시계를 마련하는 것은 보통 결혼 예물 구입 때고 저자도 추천한다. 그러나 롤렉스가 오토매틱(몸을 움직여야 작동)인 걸 모르고 고장 난 시계로 취급했던 저자의 남편처럼 그 시계의 가치와 속성을 정확히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오토매틱, 쿼츠, 오트 오롤로지 등의 시계 관련 용어나 스와치, 하이에크, 바젤월드 등의 시계 관련 브랜드인사행사를 알고 싶으면 1장을 충실히 읽길 바란다. 이 책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핵심인 장이기도 하다.


시계의 역사를 논하는 2장, 1장에서 시계의 등급과 구조를 언급했다면 슈트에 어울리는 드레스워치부터 각종 특수시계를 소개하며 시계의 종류를 다루는 3장, 범인과 마니아를 가를 기준이 될 부품과 디테일 보는 법을 알려주는 4장은 1장의 이해를 높이고 내용을 보강한다. 5장과 6장은 앙투아네트부터 김정은까지 각종 명사들의 시계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1장부터 4장까지가 시계에 대해 최소한 알아야 할 기본 교양 지식이라면, 5장부터 6장까지는 당신의 대화를 풍부하게 해줄 화젯거리로써 유용하다. 시계 컨설턴트 이은경의 이름을 걸고 저자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는 대목은 마지막 7장이다. 시계 쇼핑 팁을 다루는 이 장을 어느 독자는 가장 궁금했을 것이다. 본문 전체에 실린 수많은 총천연색 시계 사진들과 각 장을 시작하는 시계 관련 명언, 각 장 중반부마다 실은 ‘이은경 기자의 시계파일’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책을 읽다가 눈을 뗄 수 없었던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오늘날의 스위스 시계를 만든 니콜라스 G. 하이에크의 손목이었다. 그는 항상 8개의 시계를 차고 다녔고, 언제나 시계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자신할 만큼 열정가였다. 가족기업의 전문경영에 있어 상징적인 인물인 하이에크와 그의 경영 사례는 깊은 인상을 준다. 또 하나 책에서 엿본 열정은 저자였다. 의류직물학을 전공하고 패션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시계와 주얼리 기사를 담당하면서 인생의 아이템 시계를 만나 투신하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두의 중요성 등 많은 영감을 받았다. 마지막 열정은 시계를 만드는 이와 사랑하는 이의 것이다. 이렇듯 시계는 열정 그 자체이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시간time을 담는 시계의 세계는 영원timeless하다. 그를 알아보는 뜨거운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시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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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 오천 자로 세상 모든 비밀을 풀다
노자 지음, 정창영 옮김 / 물병자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도덕경(정창영 역)]

함께 공부하는 도덕경 - 학도와 선생의 사이에서

 

 

<도덕경>의 저자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 영화도 누릴 만큼 누려본 사람, 그 시대의 혼란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냐를 깊이 탐구한 사람, 그러다가 도와 덕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환골탈퇴한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천지의 도와 하나 되어 자유인이 된 사람이었으리라. 그가 현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 <도덕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누구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시대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며, 그의 가르침이 오늘 나에게 무슨 뜻이 있느냐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 p.307

노자는 정말 은둔하는 현자였을까, 노자와 도가와 도교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노자의 사상은 주자성리학에 그렇게 위협적인 것이었을까. <도덕경>을 다 읽고 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 속을 가득 채운다. 한번 그 고전의 전체를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앞으로 이 고전을 어떻게, 얼마나 건드려야 할까 과제가 생겼다. 노자의 인생은 불분명하다. 사상가인 동시에 교조로 떠받들어져서일까, 200여년을 살았다고 하질 않나 필요 이상 신화화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표현했다.”고 하였다. 노자는 평생 5천자 정도 되는 책 한권만을 남겼다. 도편과 덕편으로 나뉘어져 있어 혹자는 <노자>라고 부르고 누구는 <도덕경>이라 부르는데 같은 책이다. 그러나 그 5천자가 범인들에겐 결코 녹록지 않다. 수많은 역자와 연구자가 원문을 해석하고 다 다른 방대한 주석과 해설을 제시한다. 어떤 것이 '바르고 정확한' 해석인지에 대해선 늘 논란이고 정해진 바가 없다.  

단순히 원문의 직역 정도만 제시하는 입문자용 <도덕경>도 시중에 수없이 많다. 도저히 선택의 기준이 안 서 최대한 최신의 번역본을 보자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올 3월 중순에 출간된 물병자리 출판사의 정창영 역 <도덕경>이다. 독특한 이력의 역자이다. 전공은 신학이나 30년 넘게 동서양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했고 현재는 천문학에 빠져있다고 한다. <도덕경>의 경우 14년 전(2000) 같은 기획 의도로 시공사에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오늘에 맞는 가장 친근한 번역'을 표방하며 이번에 새 번역을 선보였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각 장마다 원문을 짝수 페이지에, 번역문을 홀수 페이지에 실었다는 점이다. 원문을 실으면서 해석 주석을 달아놓아 원문 직역과 저자의 의역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스포츠’, ‘에고’, ‘도를 체득해 환해진 사람등 당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나 역자만의 개성적인 해석을 보면 이 책이 추구하는 번역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정창영 역의 <도덕경>함께 공부하는도덕경이다. 81장 본문이 끝날 때까지 역자가 제시한 해석을 길잡이 삼아 독자 스스로 원문을 짚고 생각해 보면서 읽게 한다. <도덕경> 본문 자체보다 주석과 해설이 더 많거나, 해제자의 주관성이 너무 강한 <도덕경> 번역서나 관련서에 염증을 느꼈던 독자에겐 반가울 점이다. <도덕경>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이런 책으로 <도덕경>을 시작해 아무런 편견 없이 스스로 원문의 민낯부터 접하고 이해를 높이는 방법이 좋을 수 있다. 그렇게만 끝났으면 학도의 책이었겠지만, 맨뒤에 70여 페이지 분량의 해제를 실어놓음으로써 선생 역할도 약간 한다. <도덕경>의 문장은 촌철살인이나 쉽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는 있지만 느끼고 아는 만큼은 제각각이다. 먼저 <도덕경>에 빠져 탐구했던 사람으로서 역자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주고자 한다.

 

<도덕경>은 노자와 집필 당시 시대 상황을 알고 읽을 때 내용이 더 명확하게 들어온다. 주나라 왕실도서관 관장이었던 노자는 왕실용 정치처세서로 <도덕경>을 썼다. <도덕경>을 읽다보면 상편()과 하편()이 서로 뒤 바뀐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실제 군자의 됨됨이를 논하는 덕편이 먼저이고 이후 도의 의미를 깨치도록 도편을 뒤에 둔 책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덕경은 구전과 필사를 통해 후대에 전해내려오며 순서를 바꾸고 개인의 품성 수행서쪽으로 읽혔다. 춘추전국시대를 살며 노자는 기존 유가사상에 반론을 제기했고, 전쟁에 반대했다. 속세에 환멸을 느낀 은둔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현실 참여하는 지식인이었다. 노자는 공자를 사사했고, 그의 사상도 유가와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라 그 허점을 메우고자 하는 대안이었다. 박세당이나 윤휴처럼 노자의 관점에서 유학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수많은 유생들이 <도덕경>을 즐겨 읽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정창역 역자 덕에 처음 <도덕경>을 완독하면서 어떤 구절에도 표시를 할 수 없었다. 일독자에게 <도덕경> 5천자는 모든 장과 문장이 촘촘이 엮여 한 몸체 그 자체로 보였다. 고전은 오랜() 세월 널리 읽히고 살아남은 명저에 붙는 타이틀이지만 그만큼 그 수준이 높고() 읽기 고된() 책이다. 인문사회학 공부법 중 강독이란 게 있다. 텍스트를 거듭 읽다 보면 그 의미가 들어오고 새로운 것이 보이고 학문 수준이 깊어지는 것으로 대단히 오래되고 기본적인 공부법이다. <도덕경> 역시 이번 일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하였다. <도덕경>으로 괜찮은 책이었다. ‘읽어냄이 언젠가 읽음으로 바뀌는 때를 기다리며, 아장아장 첫 걸음을 떼는 어느 우매한 학생에게 길잡이자 벗으로 함께 해준 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노자를 닮은 책. 표지, 내지 모두 친환경용지로 제작한 센스!

표지가 무코팅이라 약해서 겉표지를 또 둔 상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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