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 - 광고의 눈으로 세상 읽기
한화철 지음 / 문이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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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 어쩌다 광고쟁이가 된 남자의 열정회고록

 

 

 

졸업생 열에 아홉이 마케터로 취업하는 전공이었기에, 광고는 형제분야 같이 친근했고 실제로 광고홍보학과와 연계공유하는 전공수업도 몇 있었다. 그런 까닭에 새내기 때 4대동에 들어가려 기를 쓰다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저지 당한 적이 있는데, 쉽게 미련을 못 버려서 여름방학 때 방송국 마케팅기획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광고 수주와 자체 광고를 제작하는 부서였다. 일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중대냐는 질문이었다. 4대동에서 주워들은 얘기까지 더해져, 새내기에게 광고업계는 중대-4대동-공모전 필수여야 하는 세계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학부시절 광고쪽에서 유명했던 선배도 전공은 심리학-국문이지만 역시 4대동 출신이었고 제일기획에 다니던 사촌도 경영학 전공에 영어 네이티브였지만 인턴으로 번역 등 영어 관련 일만 줄창하는 데 그쳤다. 나 역시 우연한 기회에 B2B광고회사에 입사할 뻔 했지만, 제의받은 보직은 광고직이 아닌 전산직이었다. 그 외 주위에 영 광고직이 없다보니 어떤 사람들이 다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한 환상이 있었다.

 

 

 

 

좋은 사회학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쩌다 ‘광고쟁이’가 되었다. 광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PT, 프레젠테이션을 프롤레타리아로 독해할 정도였다. 사회학자와 광고쟁이라는 이 모순된 상황은 지금도 가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광고의 어느 언저리에 분명히 있으면서도 광고에서 한 발짝 물러서려는 심리적 저항 같은 것을 느낀다. - p.13

 

나는 어쩌다 광고쟁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유는 광고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광고가 재미있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광고를 하면서 광고의 재미를 시나브로 알게 되었다. 가끔 자문해 본다. 처음부터 광고에 나를 맞추려 했다면, 지금까지 내가 광고인으로 살 수 있었을까? - p.23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광고업계는 ‘미친 쟁이’들만의 세계며 광고직 종사자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마케팅 쪽도 그랬다. 성적, 전공 다 초월하였는데 제일 많이 취업되는 부류를 둘 꼽으면 ‘미친 놈’과 ‘각종 언어 능통자’였다. 휴대폰에 미쳐서 뽐뿌도 없던 시절부터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바꾸는 애, 전세계를 돌며 립스틱을 사는 애 등등 과 특성상 각종 ‘미친 놈’이 흔해 빠졌는데 학점이 1점대든 2점대든 스펙이 있던 없든 이런 애들은 그 쪽 업계 마케터로 백이면 백 취업했다. 그저 성실히 공부하고 과제량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던 평범한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이런 아이들이 무척 부러웠다. 마케터를 전공무관으로 뽑는 회사가 많기 때문에 러시하는 다른 인문계열 학생들과 달리, 4년 내내 타고난 남다른 애들을 보다보니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유일하게 꿈꾸던 대학원 진학이 좌절된 후 더 이상 전공을 살리지 않은 것도, 무의식 중에 절망이 쌓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광고장이라는 말보다 광고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전적으로 보면 ‘쟁이’가 아닌 ‘장이’가 맞다. ‘장이’는 대장장이, 석수장이 같은 기술자에게 붙이는 말이다. 15년 넘게 광고를 했으니 광고 기술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반면 ‘쟁이’는 수다쟁이, 거짓말쟁이처럼 성격이나 버릇 따위에 붙인다. 나는 ‘장이’보다 ‘쟁이’가 좋다. 광고를 잘할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좋다. 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항상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 p.38

 

사회학의 가장 큰 무기는 ‘상상력’이다. 특히 ‘문학적 상상력’이다. 사회학은 방대한 인문학의 여러 분야와 걸쳐 있다. 역사와 가깝고, 철학과 가깝고, 심리학과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은 통섭의 관점에서 이 모두를 꿰는 황금 실이다. 문학적 상상력의 직관적 통찰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회학과 한국 사회의 선택적 친화력을 높이는 길이다. 생활 속으로, 대중 속으로 사회학이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유용한 문이 문학적 상상력이다. - p.75

엘베스트의 광고기획자, 대홍과 금강 등 굵직한 회사의 마케터와 광고기획자를 거치고 얘기하면 다 아는 유명 광고들을 숱하게 만들어 온 작가, 그런 그가 PT가 뭔지도 모르고 사회학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으며 그런 그가 광고쟁이로 거듭나는 15년과 나름의 광고론을 단행본으로 정리해냈다기에 냉큼 집어들었다.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일지, 광고와 사회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치지 않는 궁금함에 마음만 급해져, 장을 넘나들며 책을 읽었다.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는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장이 작가 나름의 광고철학이라면 3장은 광고쟁이로서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담았다. 그 중간에 있는 2장과 3장을 아우르는 총론적 성격이고 2, 3장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결론은 얼떨결에 이상한 광고의 나라에 들어선 앨리스 작가가 부단한 노력으로 광고쟁이DNA을 만드는 것 같지만,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타고난 기질과 적성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 재밌고 신기하며 이상한 광고업계를 느꼈던 시간이었다.

 

 

 

광고는 거짓말이다. 광고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광고하는 대상의 일부를 전체인 듯 만드는 것이다. 광고는 광고하는 대상의 부분적 타당성만을 유일한 인식 체계로 만들어 버린다. 알튀세르는 전체를 부분인 것처럼,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인식시키려는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그래서 광고는 이데올로기다.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보면 광고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작동하며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적인 실천이다. - p.109

 

광고인이기 때문에 공유하고 있고 그것을 어겼을 때 도덕적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직업윤리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종종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광고인의 자부심은 줄어들고 점점 회사원이 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로하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론은 외적 조건의 변화를 어쩌겠냐는 자조로 끝이 난다. 광고 심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 광고인이 공유해야 하는 직업윤리의 전부라면, 광고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광고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광고인 스스로 광고업 전반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다. - p.136

 

광고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게 되지 않는다면 이 책이 그저 재미졌던 구경으로 그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어떤 꿈을 꾸든 한창 인생을 설계하고 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우아한 거짓말의 세계>는 유용한 자극제이다. 지금 나보다 10년, 15년 더 앞선 프로페셔널 선배의 고군분투 성장담, 열정 회고록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자신을 깰 수 있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고, 또 개인마다 인상점이 다르겠지만,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거나 무조건 30대에 반드시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행한 일이나 후배를 열심히 키우고 그 후배에게 밟히는 것을 기꺼이 반기되 그 내일이 되도록 멀도록 노력하자는 얘기 등이 있다. 각종 좋은 얘기들을 무수히 짜깁기한 전형적인 자기계발서 수권보다 좋은 본보기가 되는 프로들의 노하우 아닌 노하우가 담긴 이런 책들이 훨씬 인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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