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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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동료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나도 그 책을 한번 읽어보려고 인터넷에 주문을 했는데, 배송료 시스템이 바뀌는 바람에, 배송료를 물지 않기 위해 다른 책을 두권 더 주문했다.그래서 고른 책이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라는 책이다. <베로니카...>는 브라질 작가, <나는...>은 페루작가의 소설이다.

주인공 마리토와 훌리아 아줌마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중간 중간에 마리토가 일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연속극 스토리가 삽입된다.처음에는 갑자기 색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결말도 제대로 맺어지지 않은 채 끝이나서 어떻게 된건가 궁금했는데, 책 접지 부분에 개요문을 보니 의문이 풀렸다. 

액자 소설의 변형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권의 후반부터 계속적으로 발자크에 버금갈 만한 페드로 카마초의 필력이, 아니 그의 기억력이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꺼번에 4개의 라디오 연속극 극본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마치 발자크처럼 공장의 기계처럼 글을 토해낸다. 교정은 커녕 다시 읽어보는 일도 없이, 그리고 자신의 문체를 해칠까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는 일도 없이 그는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항의가 올 정도로 연속극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섞인다. 즉, X시 연속극의 등장 인물이 Y시 연속극에 등장하고, 또 Y시 연속극의 등장인물이 Z시 연속극에 등장하는 식으로 서로 섞여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능력이 소멸해가는게 아니라 페드로 카마초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이 정말로 생명을 얻어 스스로 다른 시간대의 연속극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내 머리는 물론 아이디어들로 화산처럼 들끓고 있어. ... 사기를 치는 건 내 기억이라고.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이름들을 애기하는 거야. 나 이거 자네한테만 하는 얘긴데, 자네는 내 친구니까. 등장인물들을 뒤섞는 건 내가 아니라 그것들이 저절로 섞이는 거라구. '

역시 발자크는 모든 소설가들의 아버지이다. 도처에서 그의 기법을 모방(좋은 의미에서)하는 작가들이 보인다. 발자크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의 작품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소설들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경계를 잊은채. 혹시 이것이 마리오 바르가스의 발자크적 인물기법에 대한 경쾌한 추리라면, 페드로 카마초가 실은 저절로 인물들이 섞여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이 발자크의 작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어제밤에 책을 다 읽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결말이다. 해피엔드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탓일까. 자신의 능력을 너무 일시적으로 소진해버린 한 천재 작가의 놀라운 능력과, 훌리아 아줌마와의 결혼을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의 땀에 비해 결말이 너무나 허무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식의 결말이 마구잡이식이라거나 구성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우여곡절의 두 축이 너무도 쉽게 스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어떻든 인생은 이렇게 흥망성쇄를 거듭하는 것이 그 법칙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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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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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고독]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자기 밖으로 나갈 것인가 모든 소통은 흔히 '인격'이라 부르는 것들을 전제한다. 그게 아니라면 거기에는 병렬이나 얽힘 혹은 상호 침투는 있을지언정 결코 주고받음은 없을 것이다. 이 주고받음은 결국 한 인격을 다른 인격 속으로 이동시켜서 그 인격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삶의 근간이 자기에게가 아니라 타자에게 있게 하는 이른바, 자기로부터의 탈출이다.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는데, 참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건조해진 나의 마음에 떨어진 한방울의 달콤한 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일상적인 삶- 정오 L’Heure de Midi]

친구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피타고라스는, 220과 284가 그런 것처럼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220의 약수들을 따져보면 이들의 총합이 284이며 284의 약수들의 총합은 220임을 알 수 있다. 완전수는 6이나 28처럼 자신들의 약수들의 총합과 같은 숫자이다.

-관심의 분야에 따라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한 정의도 나름대로 달라지는구나. 친구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주어도 아깝지 않고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해타산의 이 무덤속에서 과연 내 것과 네 것을 따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아마 나에겐 친구가 없을 것 같다.

[일상적인 삶-비밀Le secret]

한갓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은 결코 지켜지지 못한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 봐야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애시당초 사람의 비밀이란 밝혀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은근슬쩍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제삼자가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토로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더 소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게 비밀인지조차 모르는 바에야 그 비밀의 내용이 잘 지켜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자기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러듯이 그 내용을 드러내기로 마음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모든 비밀은 다 공공연한 비밀인것 같다. 너무 비밀이 많은 사람도, 또 비밀이 한개도 없는 사람도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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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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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베짱을 지녔더라면 난 분명히 주인공 꽁스땅스처럼 살았을거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소설속의 그녀가 정말 할일 없고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한심하고 게으르게, 때로는 자기 본위대로 제 멋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

브리짓 존스처럼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걸 가지지 못했어도 당당한(조금 안쓰러운당당함이지만) 모습을, 조금은 애처로워 보여서 사람들이 혀를 끌끌차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도 좋다. 항상 채워져 있는 그릇은 뭔가를 더 넣기 위해 뭔가를 버려야 하지만, 항상 덜 채워져 있는 그릇은 언제나 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늘 줄거리를 잊어서 읽을때마다 새롭다는 느낌,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기억력을 부여하는 대신 항상 새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을 줬나보다.(얼토당토않은 자기 변명..) 세 번만에 이러한 구절이 머리에 들어왔다. '사랑에는 살을 섞는 일이 필요하다. 그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서로의 몸을 섞는 일은 사랑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직까지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서로의 알몸을 봐야 진정으로 마음을 열수 있게 되는 거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가 자는 문제. 나로서는 당분간일지라도 탁상공론일 수 밖에 없는 문제로다.

혼전 경험자를 외계인 취급하고, 그것은 저 멀리 파란 눈동자의 사람들 속에서나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너무 유아기적인 발상인가.. 파란 눈동자의 사람들 속에서는 아름다운 일인데, 왜 내 나라에서는 그게 어떤 가해와 손해라는 냉정한 경제원리에 따르게 되었을까. 그녀의 자연스런 경험에서 나온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이 한구절이 동거문화를 정착시킨 서양인들의 합리적 사고방식 운운하는 데까지 내 생각을 끌어내게 되었으니, 내 무지의 소산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그녀의 필력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사랑에는 살을 섞는 일이 필요하다'의 뉘앙스는 결과론적이다. 사랑은 비로소 살을 섞는 일로 완성된다라는 결론을 암시하는 듯한. 어떻든 삼척동자도 안다는데, 그녀가 그렇게 확신하는데 한번 믿어볼까. 위에 거론된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절대 아니다. 이 책은 풍부한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쓰여진 재기발랄한 책이며 한 여자가 사랑을 찾게 되는 여정을 그린 참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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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꼬네집에 놀러올래
이만교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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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주량보다 많으면 지랄을 떨게 되는 법이지, 뭐.' -책 속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먼저 읽지 않길 천만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가벼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류의 과장법을 쓰는 이만교의 소설 <머꼬네집에 놀러올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요즘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서 예전에 다니던 골목들에 있던 집들이 다 폐허가 되버렸다. 그 바람에 한 달포전부터 역의 다른 출구를 이용하고 있는데 오늘같이 늦은 밤 귀가하는 날이면 무섭다기보다도 쓸쓸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 길목엔 곧 망해버릴 것 같은 술집 두 개와 한 그릇에 천 오백원하는 자장면집, 결번인 전화번호를 아직도 달고 있는 피아노 학원과 야구 연습장이 있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엔 얼마전 거대한 우주 정거장이 세워졌다. 하늘을 가려버린 그곳엔 하얀 공들이 가끔씩 날라다니고, 그럴때마다 '나이스 샷'과 같은 탄성도 함께 들린다. 세상의 이쪽 편엔 화려함이 존재하고 또 다른 편엔 삶의 고달픔과 외로움이 존재한다. 화려한 인생을 위해 공부를 하고, 돈을 벌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고단한 삶과 가끔은 외로운 인생을 동경하면서 때로는 이율배반적인 내 자신을 꾸짖는다.

반반한 정류장도 하나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머꼬네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물질적으로는 튼튼하지 못하지만 사람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 강북이 좋고, 변두리가 좋고... 친구들과 만나 헤어질땐 늘 혼자가야 하지만 서울의 북쪽 끝에 있는 우리 동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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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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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폴 오스터가 더 좋아지게 됐다. 그 전에 폴 오스터는 그가 쓴 책들에 가려져 있는 작가일 뿐이었는데, 이제 나에게 그는 책의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새로운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고상하고, 고매한 것이지만은 않다는 것.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두루 경험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이야 물론 그도 성공한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지만 그 이전에 그가 겪었던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그에 대한 인간적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

작가와 그가 내어 놓는 (자전적) 작품간의 괴리로 인해 실망감을 느낀다면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 작품은 작가로부터 태어나지만 자신이 만든 작품보다는 불완전하고 초라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실망감이 다소 줄어들 것 같다. 작가는 인간으로 남아있지만 작품은 예술로 승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무엇보다도 폴 오스터는 작가라는 직업을 겸허하게 소개하고 있기에 때론 그게 투정으로 들리기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가일지라도 지난한 고통을 통해 글을 써낸다는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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