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구판절판


"얼룰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붓으로 색칠을 한 건가?"
"아뇨, 아니에요. 원래 저렇게 생겼어요."
"비가 오면 어떻게 되지?"
"아무렇지도 않죠."
"줄무늬가 번지지 않아?"
"아뇨."-113쪽

"가장 끔찍한 일은, 이제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그릴 수 있지만 모습은 점점 멀어져요. 잘 보려고 하면 곧 희미해져버려요. 목소리도 마찬가지고. 거리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모든 게 되살아나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지요. 자기 어머니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에요."-118쪽

인체는 물 없이 14일까지 버틸 수 있다. 갈증이 나면 단추를 빨 것.-211쪽

그런 의식이 위로를 주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힘들었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이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힐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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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5월
구판절판


"그런 식으로 서로가 묻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이해해 봤자 아무런 해결도 없어요."
-204쪽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미래에 대해서는 '아마도'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암흑을 되돌아볼 때, 거기에 있는 것은 역시 불확실한 '아마도'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확실하게 지각할 수 있는 건 현재라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우리의 몸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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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지식총서 168
김성곤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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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사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긴 하지만 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샐린저는 자신의 전기를 집필한 작가를 고소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병적인 거부감을 보였단다. 자기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속물스런 세상을 거부하고 은둔하여, 현재 이 유명한 소설가의 근황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하니, 1919년 생인 그가 혹시 벌써 사망한 것은 아닐까.
가끔 어떤 작가들의 프로필을 볼 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는 글귀를 접하면, 그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는 굉장한 아쉬움을 갖게 마련이다. 작품은 책으로 출판되는 순간 작가와 별개의 존재가 되지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어떤 때는 가장 편협한 시각을 조장하기는 하지만) 자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이 읽혀지지 않는 것보다 잘못 읽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서문이나 작가 노트의 지면을 빌려 작품의 의도를 설명해주는 '친절한'(?) 작가들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란 역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하는 화수분 같은 작품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샐린저의 은둔은 작품의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다만 그가 더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이 사회적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킨 만큼 전세계 수십개 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 각 나라에서 이 책에 붙인 제목들이 재미있다. 이탈리아어판은 '한 남자의 인생', 일본어판은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어판은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덴어판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어판은 '추방당한 젊은이', 프랑스어판은 '마음의 파수꾼', 독일어판은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어판은 '고독한 방랑자'(후에 '사춘기'로 바뀜)이다(본서 36-37쪽 참조). 각 나라의 특성을 잘 살려 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노르웨이어판 제목 같은 경우는 어쩌면 책의 내용과는 좀 동떨어지게 심각하다는 생각 또한 든다. 이렇게 제목이 다양하게 바뀐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에서 편집자가 어느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나는 소년답지 않은 신랄한 세상 비판과, 그런 가운데서도 여동생 피비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만으로도 홀든이 매력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홀든 자신은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미국 사회와 전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아마도 그는 그마저도 허위와 위선이라 생각하며 다시금 도피할 어딘가를 찾지 않았을까. 어제 마침 TV에서 '천국보다 낯선'을 보았는데, 홀든이 거부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은, 저것이 과연 어느 시대 미국의 모습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그 낯설음과 어쩐지 자연스럽게 겹치는 것 같다..

 덧붙여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 값과 꼭 같은 살림지식총서 목록을 보니, '무엇을 택할 것인가' 매우 갈등이 생긴다. 때론 커피 한 잔이 책 한 권만큼의 위안과 흥분을 안겨다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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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 - 북클릿 + 캐릭터 스티커 2종 포함 초회 한정판
방은진 감독, 엄정화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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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의 피해자, 곧 여성은 소위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피의자인 남성으로부터 가녀린 성을 앗기고, 두 번째는 피의자인 남성을 보호하는 법적 한계로부터 자신을 유린한 당사자를 처벌할 기회를 앗긴다. 운좋게 피의자를 처벌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빼앗긴 물건을 돌려받는다거나 피해를 금전으로 보상받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도저히 '보상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성범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논의에서 전자팔찌 등등이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인권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분명 그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대상이 먼저 '인간'임을 전제한다. 그런데 성범죄자는 자신이 그런 범죄를 품는 순간부터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해서는 인권을 보호해야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을 제어하고 지배하기 위해 목줄을 메고 감금하는 것처럼 대우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

이 영화는 성범죄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방조하고 원인을 제공한 사회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다. 5명의 희생자 중 누구 하나라도 자신의 단계에서 멈춰줄 수 있었다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의 무심함은 한 아이에게 있어 살 수 있는 다 섯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피의 복수극을 긍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듦으로써 나의, 내가 속한 사회의 무력함을 일깨우고 있다.

도통 친근해지지 않는 무력함의 표상 문성근과 오싹하게 히스테리컬하다가도 문득 '싱글즈'의 동미를 연상케하는 엄정화의 연기가 묘한 언발란스를 이룬다.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졌다기 보다도 한 번의 강렬한 메시지가 크게 다가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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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엉이 2006-04-0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범죄라는 것이 그다지 색다른 주제도 아니고, 근데 이 영화는 묘한 울림이 있네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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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아는 이가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던 그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먼저 그녀의 종교와 가까워졌고, 세례받기 직전 자신의 신앙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무사히 신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자신은 "여자친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태신앙을 가진 나는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 신앙이라는 것이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의미를 온전히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게 하느님은 '사랑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힘이 들 때 매달리고, 고통이 지나간 뒤에는 감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저 하늘 위에 있는 존재였다.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 저 사람은 여자친구와의 사랑이 끝나버리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끝나버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신에 대한 믿음을 '사랑'으로 시작한 그 앞에서 나는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파이의 삶(이 책의 원제에 'story'가 아니라 'life'가 쓰였다는 점을 기억해두고 싶다) 속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신을 대하는 어린 파이의 순진무구함이었다.
파이는 자신이 힌두교도이며, 힌두 사원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영을 의식하며, 힌두의 눈을 통해 우주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파이는 힌두교가 "사랑 넘치는 자비심의 어마어마한 우주적인 힘"(p.70)이라고 매혹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충분히 (자신의 종교에) 만족하는 힌두교도"인 파이는 열네 살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십자가 위에서 '멍들고 피흘리는' 희생자가 바로 기독교의 '신'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왜 예수는 인간처럼 죽어야만 했는가, 신이란 온 우주를 품고 있는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여야하지 않는가라고 파이는 사제에게 묻는다. 사제는 그 모든 질문에 '사랑'이라는 말로 답하고, 파이는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하느님의 아들 때문에 며칠을 괴로워한 끝에 기독교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로부터 일 년 뒤 파이는 이제 이슬람교도가 된다. "형제애와 헌신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종교"의 방식으로 기도할 때, 그는 "언젠가 죽어야 할 인간으로 무릎을 꿇었고, 영원불멸한 존재로 일어났다."(p.85)
이렇게 이 열 다섯의 소년이 자신 안에서 힌두의 신들과 예수와 알라를 만나는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세 종교의 사제들은 저마다 파이가 자기 종교의 신자라며 부모를 설득한다. 당황한 파이의 아버지는 그에게 왜 기도를 하고 싶어하느냐고 묻는다.

 "신을 사랑하니까요."(p.98)

나는 이 대목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랑이란 부족함을 채워주는 행위이고, 부족함이 없는 신에 대해 감히 나는 사랑한다는 단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도 어떻게 해야 신을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다. 단순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서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 파이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몰고 간다. 파이는 그 속에서 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신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존재의 기본원칙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명확하지 않고, 분명치도 않고 즉각적이지도 않다."(p.86)

그는 구명보트 안에서 리처드 파커와 단둘이 남았을 때 단순히 리처드 파커를 지배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주는' 행위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한없는 '이해'가 아닌가. 그렇지만 리처드 파커는 작별인사도 없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훌쩍 그를 떠나버린다. 파이는 그때를 생각하며 악몽을 꾸지만, 그것은 여전히 "사랑으로 얼룩진 악몽"이다.
이 모든 시련이 끝난 뒤 파이는 성모님을 본다. 아니 그는 "그분을 봤다고 느꼈다." 그 자신도 왜 성모님이었을까 자문한다. 그분은 파이에게 사랑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는 "신의 존재가 최고의 보상"이라고 느낀다.

무엇보다 파이는 신의 존재란 인간적 상실에 대한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리처드 파커에 대한 사랑은 서투른 이별로 끝났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바로 신의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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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엉이 2006-04-0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시작이 참 어려웠어요. 몇 번을 덮었던 책인데, 속도가 붙기 시작하니 이번엔 놓기가 힘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