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24. 한겨레 책과 지성
아깝다 이 책!

발자크의 해학 30(Les cent contes drolatiques, 1836)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 프랑스 투르)
김창석 역
범우사

 

 

 

 

글 : 장웅진/범우사 편집부

‘발자크’라는 이름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인간 희극>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 누구라도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정리하기 위해 써내려간 그 작품의 유명세를 실감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뜻밖에도 발자크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했던 귀부인 에블린 한스카에게 이런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만약 나의 작품 중에서 후세에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30편의 해학 단편들(Les Contes Drolatiques)>일 것이오.”
발자크가 하루 15시간씩 글을 쓴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사업실패에 따라 지게 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당시 프랑스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을 밝혀 고발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작품이 바로 <인간 희극>이었다. 하지만 발자크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진정한 작품은 바로 <발자크의 해학 30>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30편의 해학 단편들>이었던 것이다.
북유럽풍 르네상스를 개시한 대문호 라블레를 존경한 발자크는 그의 문체와 해학, 그리고 풍자를 사용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백 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아쉽게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30편의 이야기를 쓰는데 그쳤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그 30편의 이야기들 하나하나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니, ‘일단 이정도만으로라도 그는 분명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래서 발자크도 계획을 변경하여 나머지 이야기들을 포기하고, <인간 희극>의 집필에 힘을 기울였겠지만 말이다.
원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아마도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발자크 스스로도 각 편의 머리말 부분에서 ‘이 책을 읽고 웃으라. 어차피 그러라고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 ‘과연 이것이 단순히 웃고 즐기며 가볍게 넘어갈 수준의 이야기들인가!’ 싶을 정도로 사랑과 우정 등 인간관계에 대해 심도 깊고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뫼동의 쾌활한 사제의 설교>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된, 라블레가 왕에게 들려주는 ‘왕비로 맞이한 암컷 생쥐의 미모에 빠져 간신배들을 등용함으로서 식량창고의 관리라는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그르치고, 결국 식량창고의 원래 주인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뾰족뒤쥐대왕 이야기’의 경우, 놀랍게도 우리의 <화왕계花王戒>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
또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30개의 진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이 일개 ‘우스개 이야기처럼’ 술술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만든 대문호 발자크의 솜씨에 있다. 하나의 세련된 프랑스 요리처럼,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러한 내용이 19세기 초반의 어느 위대한 요리사의 펜에 의해 해학과 풍자로 맛을 낸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다만 자극적이고 빨리 읽어나갈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작품들을 찾는 현대 젊은 독자들의 취향이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문호도 사실 대중적 작품을 쓰던 사람이었기에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는 이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요리’를 만들어냈을 터. 부디 이 책이 ‘어려운 고전’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히 그리고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책임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런 책들은 1년이 지나면 매장에서 사라진다. 책을 만드는 일 역시 '장사'니, 돈 안되는 책을 안 찍는 건 당연한 경제논리일 듯. 헌책방에 열심히 드나들어야 쓰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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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Miss Lonelyhearts & The Day of the Locust,1933)
너새네이얼 웨스트 Nathanael West(1903-1940, 미국 뉴욕)
이종인 역
마음산책
구입 : 2003.11.23, 교보문고

  


 

 

 

나타나엘, 너새네이얼, 너대니얼.
아이구. 니 맘대로 읽으세요.
외국 이름 중에서 읽기 참 거시기한 이름 중에 하나다.

2003년 11월 23일.
저 날짜는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이젠 아무런 의미도 남아있지 않은데 말이다.
요즘 헛것을 자주 본다.
그야말로 내 눈을 내가 의심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벌써 두 번째다.
혹자는 내게 아직도 상처가 남아서라고 한다.
그치만 평소에 전혀 생각지 않는데 자꾸 뇌신호가 시각을 교란시키는지 난 참 알 수가 없다고 중얼댄다.
상처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걸까?
또한 요즘 외.로.움.이라는 세글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게 외로움인가? 아닌가? 맞나?
오... 그런데 싫지가 않다.
뭔가 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 것만 같아서.
2003년 11월 23일에 사놓고 그즈음 읽었을 때 돈아깝다고 생각했던 이 책이 이제는 왠지 좀 이해가 될 것만 같아서.

외로움보다는 고독함이 좀 더 좋을 것 같다.
외로움은 스스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독함은 그렇지는 않다.
외로움은 즐길 수 없지만, 고독함은 그럴 수 있다.
그치만 아직 '고독'을 말할 수 있는 때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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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2005)
진중권(1963-, 한국 서울)
휴머니스트
2005.7.3.
 
 
 

 
 
 
 
 
 
 
 
어떤 리뷰어는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할 정도로 과찬을 했다. 원래 진중권씨의 책을 좋아하고 (그 심오한 '죽음의 무도'를 내게 처음으로 알려준 인물이니...)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 독자의 한 사람이라 저러한 견해를 십분 이해한다.
이 책은 흥미로운 내용의 측면에 있어서는 물론 그러하거니와 책 그자체로도 매우 재밌는 장난감이 된다. 항상 바른 자세로 책상 위에서 혹은, 지하철 안 무릎 위에 놓고 읽어야 하는 진지한 매체가 아니다. 책에 실려있는 다채로운 도판들은 우리의 시각을 다각도로 움직이게 만든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과 그림의 의미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비스듬히 세우거나, 거꾸로 뒤집거나 때로는 도판을 째려보기까지 해야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천만의 말씀.
진중권씨는 절대로 책을 어렵게 쓰지 않는다. 자신은 진정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뽐내려하지 않고 우리를 쉽게 미학의 길로 안내한다. 따라서 저자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다보면 마치 물리학의 원리를 알아내듯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속에 소개된 또다른 책들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서울대 출판부)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북폴리오, 주석있음, 혹은 시공 주니어,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분판되어있음.)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범우사)
타키투스, 게르마니아(서울대 출판부)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서광사)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가톨릭 출판사에서 나온 요약본이 있음)
에라스무스, 광우예찬
셰익스피어, 리어왕
쥘 베른, 달나라 탐험(김석희 역, 열림원)
허먼 맬빌, 모비 딕
실비아 네이사, 뷰티플 마인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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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Seis problemos para don Isidro Parodie, 1942)
호르헤 L.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1899-1986, 아르헨티나)
아돌포 B. 카사레스 Adolfo Bioy Casares(1914-1999, 아르헨티나) 
권영주 역
북하우스
2006.3.9, 알라딘


 

 

 

 

어쩌면 제목이 이다지도 매혹적일 수 있나. 정말 제목만 보고 확 사버렸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은유'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이 책인지 <전날의 섬>인지 내용이 마구 섞여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떻든. 재미있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은유를 담고 있는 이 여섯가지 사건들은 도무지 한 번 읽어서는 이시드로 파로디처럼 사건의 경위를 추리해 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난감하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도전의 욕구를 자극한다.
저 파로디 Parodie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물론.
이시드로 파로디는 자신의 감방으로 와서 사건 해결을 부탁하는 사람들로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사건 현장으로 가서 정밀수사를 할 수 없음에도, 이시드로 파로디는 그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들은 이야기로부터 사건의 경위를 논리적으로 밝혀낸다.
그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하려 오는 다양한 인물들은 객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물들이지만, 파로디는 그러한 장막을 모조리 걷어내고 사건을 핵심을 파악한다.
라틴문학 작가들은 특히나 아우라가 무척 강한 것 같다.
개별적으로는 독특하면서도 그 지역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문학에 대하여 느끼는 정서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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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L'isola del giorno prima, 1994)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1932-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열린책들

 



 

 

 



몬페라또 사건의 전말 - 과거의 이야기

1627년 12월 만뚜아 공작 빈센쪼 2세가 죽으면서 승계자를 놓고 네 명의 후보가 등장. 그 중에서 생 샤르몽 남작은 만뚜아 공작의 유산이 프랑스계 네베르 공작인 샤를르 드 곤짜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 빈센쪼 2세는 네베르 공작을 자신의 질녀인 마리아 드 곤짜가와 결혼시키고 죽음.

만뚜아의 몬페라또는 수도가 까살레로, 북이탈리아의 요충지이며, 스페인령 밀라노와 사보이아에 위치함으로써 프랑스와 스페인의 완충지였다. 그런데 몬페라또가 네베르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은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실권이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스페인은 신성 로마제국의 군대와 힘을 합쳐 까살레를 공략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땅을 둘러싸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이권다툼이 벌어진다. 

몬페라또 후작의 가신인 포쪼 디 산 파뜨리찌오는 프랑스계인 네베르 공작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몬페라또를 제국의 손에 넘길 수 없었기 때문에 까살레를 지키기 위해 현재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을 돕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베르또 델라 그리봐는 포쪼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까살레 농성전(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에 참여한다. 그는 이 와중에 생 사벵이라는, 이단 사상을 스스럼없이 설파하는 자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죽은 후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파드레 에마누엘레를 만나는데, 그는 '사람들이 <언어>로써 먼 곳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기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망원경을 발명한다.

 - 현재의 이야기

로베르또는 '아마릴리스호'에서 난파하여 떠돌다가 '다프네'라는 배를 발견하고 오르지만 이 배 역시 또다른 난파한 배에 지나지 않는다. 배 안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로베르또는 다른 누군가가 숨어있다는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다프네'의 유일한 생존자인 카스파르 신부를 만나 경선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에코의 『전날의 섬』을 읽다가 불현듯 이 책이 생각나서 같이 읽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두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세계의...'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겉보기에 독립적인 두 가지 이야기를 병행하여 전개시키고 있다면, '전날의 섬' 역시 주인공 로베르또가 '아마릴리스 호'를 타기까지의 과거 이야기와, '다프네 호'에 갇혀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를 병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의 '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두개골의 소리를 읽는 방법을 연구하는 노박사를 만나고, 세계의 끝에서 두개골로부터 오래된 꿈을 읽게 된다.
한편 '전날의 섬'의 로베르또는 본초자오선과 정대척점에 있는 경도 180도 지점을 찾기 위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이 두 소설의 두 주인공은 모두 낮의 빛에 약하다.
오래된 꿈을 읽는 '나'는 해가 지면 도서관으로 가서 두개골의 오래된 꿈을 읽고, 햇빛을 보게 되면 점점 시력을 잃는다. 로베르또 역시 작열하는 낮의 태양을 피해 밤을 도와 다프네 호의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자오선[, meridian]

이것은 지평선과 마찬가지로 관측지점에 고정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기준선이며, 천체()의 방위각()·시각()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자오는 12지()의 자()의 방향 즉 북과, 오()의 방향 즉 남을 연결하는 선이라는 뜻이다.
천체가 일주운동()을 하며 자오선을 통과할 때 '자오선 통과'라 하고, 이때 천체의 방위각은 진남() 또는 진북이며, 고도는 극대값에 이른다. 자오선 통과를 '남중()'이라고도 한다. 보통의 출몰성()의 경우에는 하루에 1회, 주극성()은 하늘의 양극의 위와 아래에서 합계 2회의 자오선 통과가 관측된다.
이때는 상방 자오선 통과, 하방 자오선 통과라고 하여 구별한다. 지구상의 자오선은 하늘의 자오선의 평면이 지구 표면을 자르는 선에 해당한다. 자오선상의 세 점, 즉 어떤 지점과 남북의 두 극점()을 포함하는 평면을 자오면이라 한다.


본초자오선 [, prime meridian]

경도의 기준이 되는, 즉 경도 0˚의 자오선.
런던의 구() 그리니치천문대(현재 케임브리지로
이전)의 자오선을 말한다. 구 그리니치천문대의 자오선은 1884년 국제협정에 의해 지구의 경도의 원점으로 채용되었으며, 또 1935년부터 이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그리니치시()가 세계시로서 국제적 시간계산에 쓰이게 되었다.


경도 [, longitude]

지구상의 한 지점을 지나는 자오선과 런던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의 각도를 그 지점의 경도라 한다.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각각 동경 180°, 서경 180°로 한다.
지구는 24시간에 대체로 360° 회전하므로, 그 회전각도와 경과시간은 비례한다. 그래서 경도는 각도 대신 시간으로 표시하는 일이 있다. 경도 15°는 1시간, 15'은 1분, 15"는 1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떤 지점의 지방시()와 그리니치시()의 시차로 그 지점의 경도를 알 수 있다. 배 위에서는 크로노미터를 그리니치시에 맞추고, 천문관측으로 측정한 지방시와 비교해서 임의 지점의 경도를 구할 수 있다.
이 밖에 지표에서는 삼각측량으로 거리와 방향을 측정해서 경도를 구하는 측지학적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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