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 W. F. Hegel, 1770 ~ 1831

독일 철학자. 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출생. 신플라톤학파의 철학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사상을 독자적 관점에서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의 3부로 체계화하였다.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大成者)로 알려졌으나 독일 관념론을 창시한 J.G. 피히테에 관한 계통적인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헤겔을 피히테의 계승자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졌다.

경건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나 1788년 튀빙겐대학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하고 J.C.F. 횔덜린 및 F.W. 셸링 등과 사귀었다. 처음에는 베른·프랑크푸르트 등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독자적인 인생철학에 바탕을 두고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1801년 예나대학의 사강사(私講師), 1805년 원외(員外)교수가 되었고 이때 셸링의 사상에 동조하여 그와 공동으로 <철학비판잡지>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점차 셸링의 입장을 벗어났으며 예나대학이 나폴레옹군에 점령된 상황 아래에서 1807년 최초의 저서 《정신현상학》을 내놓아 독자적인 입장을 굳혔다. 예나를 떠나 밤베르크에서 신문편집자로 있다가 1808∼16년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이 되었다. 1812년 두번째 주저 《논리학》을 출판하였고 16년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이듬해 《철학체계》를 간행함으로써 그의 사상체계의 개략을 완성하였다. 18년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마지막 주저 《법철학강요》를 간행하였다.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역사철학》 《종교철학》 《미학》 등은 죽은 뒤 제자들이 편찬한 강의록이다.

헤겔사상을 요약하면 변증법과 이성주의이다. 세계를 현실과 이성의 일치라고 본 그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인 변증법에 의하여 전개되는 세계를 이성적으로 추구하였다. 독일관념론 테두리 안에서 변증법을 완결시킨 그의 영향은 세계로 번져 헤겔학파를 이룩하였으나 P.J.A. 포이어바흐로부터 시작되는 헤겔좌파에 의하여 논리가 정반대인 유물변증법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또 그의 존재론은 원자론(atomism)과 개체적인 요소로의 환원주의를 비판, 생명적 존재의 일원론을 주장함으로써 현대 전체론(全體論 ; holism)의 효시를 이룬다. 헤겔철학은 형이상학적 관념론으로 많은 비판·반발을 받았지만, 역사적 의의는 18세기 I.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사상의 한계를 통찰하고 <역사>가 지니는 의미에 중점을 두어 19세기 후반 이후 국가주의·역사주의의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그는 현실이란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 과정은 오히려 그 자신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무리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써도 역사의 법칙적 흐름에 부합되지 않는 한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에 대해 관념론적·형이상학적 견해를 가졌으며 역사는 절대자나 신(神)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 판단하였다. 그에 의하면 절대자는 이성(理性)이고 그 본질은 자유이다. 따라서 역사는 자유가 그 속에서 전개하여 나가는 과정이며 전제군주만이 자유를 누렸던 고대로부터 소수의 사람이 자유를 누리던 시대를 거쳐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시대로 옮아간다. 그리하여 현대를 바로 이 마지막 단계가 실현되어야 할 시대로 보았다. 헤겔은 이러한 근본사상을 바탕으로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3부로 된 철학체계를 수립하였고 이 전체계를 일관하는 방법이 모든 사물의 전개를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로 나누는 변증법이다.

*출처 : 엥빠쓰 앙씨끌로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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