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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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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나는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 세개의 밀물이 합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것은 오직 팔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현상이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17쪽)

이곳은 거대한 홀과 문들, 조각상들이 있는 공간이며 집 입니다. 집에는 세층이 있습니다. 아래쪽 홀들은 조수의 영역, 위쪽 홀들은 구름의 영역, 중간 홀들은 새와 인간의 영역 입니다. 사람은 오직 열다섯 명이며 그중 살아 있는 사람은 나와 나머지 사람, 두 명뿐입니다. 열세 명은 모두 백골 상태로 그 중엔 일곱 살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홀들이 잠기기도 하고-아래쪽 홀들, 물고기들과 해조류, 조개들을 잡아 배고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도 하고, 수 많은 홀들을 탐험하며 일지를 쓰다 어느새 열 권째에 이르러 색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짜로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머지 사람 이외엔 새들과 새들 뿐입니다. 홀들은 모두 칠천육백칠십팔 개였고, 나머지 사람은 피부가 올리브색에 쉰에서 예순 살 사이의 남성인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만나 홀들을 탐험한 이야기와 지식탐험에 관한 이야기을 나눕니다. 그는 나를 피라네시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이름이 원래 내 이름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쓴 1번 일지는 2011년 십이월에서 2012년 유월까지라고 표지에 써놓았는데 3번 일지부터는 그해의 특별한 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름을 명명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열번째 일지는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나타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과의 유일한 만남은 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그가 가져다주는 물건들, 음식들로 홀을 탐험할 수 있는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던 중 파라네시는 집에 누군가 침입했던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파라네시는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또다른 살아있는 존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미지의 그 사람에게 ‘16‘이라는 이름을 주는데...

표지와 같은 이공간이 끝없이 펼쳐진 피라네시의 집,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곳에 찾아와 홀의 다른 곳들에 대한 탐험이야기를 듣고 직접 다른 이들을 이곳에 소환하려 한다는 나머지 사람, 유골로 남아 있는 이들의 정체와 자신이 피라네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남자가 거대한 석상들, 조각들이 즐비한 홀들을 탐험하며 발견하는 편지의 흔적들, 외부인이 숨기듯 써 놓은 비밀글들은 현실 세계와 분리 되어 있지만 또한 연결 되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과연 작가 슈재나 클라크가 지은 거대한 공간에 자유롭게 탐험을 하며 살아가는 피라네시에겐 어떤 사정이 있는지,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SF 천재작가의 16년만의 귀환을 알린 작품 [피라네시]의 결말은 어떨지 상상에 맡기며, 어쩌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외딴섬에 대한 기대가 창조해낸 실존하는 별세계는 아닐까 상상을 해 봅니다.

읽다보면 작가의 치밀함,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한 세심함, 피라네시의 긍정 에너지, 세계를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지혜의 존재 등 결국은 빠져들게 만드는 책 [피라네시]는 미스터리 판타지 SF소설의 또다른 장을 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거대한 집, 거대한 홀, 거대한 조각상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다만 당신이 그 공간에 가게 되면 당신의 가족들, 당신을 아는 이들은 당신을 실종신고 하고 자신들의 세상에서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매우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오실 땐 편지를 쓰고 오시길. 현재 그곳은 2018년 11월 26일을 기준으로 비어있습니다. 가끔 방문자가 있긴 하지만.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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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스타그램 #SF소설 #2021년휴고상최종후보작
#거대미궁으로의_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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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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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난 너처럼 인지 공간을 돌아다닐 수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알아. 아무런 지식도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니야.˝ (254쪽 ‘인지 공간‘ 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이보그가 되다], [지구 끝의 온실]을 모두 소장만 하고 있을 뿐 읽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방금 떠나온 세계]를 먼저 만났습니다. ‘최후의 라이오니‘부터 ‘캐빈 방정식‘까지 모두 일곱 편의 소설을 엮은 책 [방금 떠나온 세계]는 지구가 배경인 소설도 있고, 우주 저너머 미지의 세계가 배경인 소설도 존재합니다.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들이 설치해둔 기계들만이 빈 공간에 남아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존재하는 지구의 어느 곳, 로몬인들은 ‘3420ED 거주구‘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시각을 잃은 로봇 셀은 ˝라이오니, 넌 라이오니다˝라며 불멸인의 복제였던 ‘라이오니‘가 드디어 돌아왔다고, 불멸인의 결함까지 복제 함으로써 결국 불멸인들이 멸망을 초래한 존재이자 다시 돌아올 것을 예언한 ‘나‘를 기다린 기계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과연 불멸인을 멸망시킨 결함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건 아마도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자만, 자신들과 같은 존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착각이 그 시초가 아니었을까 자문자답을 해 봅니다.

소설 ‘마리의 춤‘에 등장하는 모그들은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이들로 광범위한 해양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테트라마이드라는 약품이 바다를 거쳐 한 세대 전반에 시지각 이상증 아이들을 만들어 그들은 시각능력을 잃고 ‘모그‘라는 별도의 종족처럼 호칭 되고 모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플라이드 공간에 접속하여 온전히 동화되면 이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마치 영화 ‘메트릭스‘를 떠올리게 만들어 가상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합니다.

소설 ‘로라‘에 등장하는 존재하지 않는 수족(팔,다리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지 되어 그 불일치로 인한 고통에 가지고 있는 모든 수족을 잘라내어 그 불일치를 일치시키려는 이들, ‘숨그림자‘에 등장하는 호흡과 유기 분자들의 합성으로 상호 작용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발상, 울산의 명물 공중관람차를 통해 시공간 차원의 거품을 감지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소설 ‘캐빈 방정식‘까지 만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지하고 생각하는 세계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의 정말 모래알 한 알일 뿐이구나 싶어집니다. 언어도, 의사소통도, 사는 모습도, 존재의 이유도, 너무 다른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그 무한한 가능성이 사실은 [방금 떠나온 세계]에 있고 독자는 그 세계를 그리워 하고 있는 또다른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로 풀이 해 봅니다.

SF소설인 듯, 판타지 소설인 듯 보이면서도 사회소설이며 시대를 앞선 비평적 소설입니다. 또한 편견과 장애, 차별과 구별, 그리고 오염된 세상에 대한 작가 김초엽의 조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그린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뿐 입니다.

#방금떠나온세계 #김초엽 #소설집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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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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