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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모파상, 안톤 체호프의 뒤를 잇는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 그러나 저에겐 너무나 낯선 이름이며 88세에 영면한 작가의 탄생 90주년 기념 출간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에 실려 있는 열 편의 단편소설들은 모조리 한번 읽어서는 절대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습니다.
책을 펼쳐서 작가가 1928년 아일랜드 출신의 역사 교사이자 조각가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설명을 읽고 사진까지 봤음에도 [마지막 이야기들]에 실린 첫번째 소설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를 읽다가 화자인 50대 초반의 미스 엘리자베스 나이팅게일 선생님과 레슨을 받으러 오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이 떠날 때마다 사라지는 작은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보면 모호함과 섬세함, 다시 세월이 지나 등장하는 어른이 된 소년과의 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어떤 힌트도 없이 끝나버린 소설에 당황합니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성별을 까맣게 잊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번째 단편 ‘다리아 카페에서‘는 그야말로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다리아 카페‘를 전쟁 후 황폐해진 런던에 만든 사람은 안드레아 카발리 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검색을 했지만 유명한 실존인물은 아닌 것으로. 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출신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시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에 대한 원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이 고향이자 가문의 유산인 포도밭까지 팔고 런던을 배회합니다. 그리고는 사랑한 아내의 이름을 기리 남기겠다고 ‘다리아 카페‘를 차립니다. 소설은 이 카페에서 애니타와 클레어가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둘은 1970년대 파이어플라이스라는 댄스팀의 멤버로 꽤 유명했던 사이였고 열아홉 살에 애니타가 저베이스라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면서,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길을 가면서 팀은 해체 되었습니다. 50대가 된 애니타는 런던의 그곳, ‘다리아 카페‘에 앉아 원고들을 검토하고 있고, 클레어가 등장해 남편인 저베이스의 죽음을 알리면서 1차 혼란이 찾아옵니다. 애니타의 남편 이름과 동일한 클레어의 남편 이름에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찾기 위해 소설을 거슬러 읽어가다가 삐끗, 다시 방향을 바꿔 전진. 결국 애니타와의 결혼생활에 실증을 내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그 상대가 클레어였다는 것에 2차 당혹스러움을 맛보고, 여전히 애니타는 전남편의 성를 쓰고 있지만 클레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애니타가 신혼집으로 꾸미고 살았던 그 집에서 지금은 클레어가 죽은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려 한다는 것에 3차, 4차 펀치를 맞습니다.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모르는 여자‘, ‘여자들‘ 등등 열 편의 단편소설들을 모두 읽고 나서 ‘윌리엄 트레버 연보‘를 살펴보다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아내‘ 제인이라는 글에.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소설들 속의 심리묘사가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발견하는 순간,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평범한 인물들에 대한 관찰자 시점의 소설, 어떤 판단도 편견도 없이 서술해 나가는 이야기 방식에 매료 되어 작가가 남성이라는 것을, 여성인 저를 포함한 독자가 느낄 감정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쓰여진 글이 마치 작가의 손바닥 위에 놀아난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이 섬세함이, 왜 작가 윌리엄 트레버를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부르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편소설들로 이만큼의 혼란을 주는 작가라면 그의 장편소설은 어떤 충격을 줄지 기대하며 서가에 꽂혀 있던 [펠리시아의 여정]를 꺼냈습니다. 무척 기대됩니다. 장편과 단편소설 모두 칭송받는 몇 안되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 정말 초면에 이렇게 당황하기는 처음 같습니다. 또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소설들(달과 6펜스, 영원의 처녀, 친구들 등등)을 찾아 읽어보는 재미도 미리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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