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창덕궁과 창경궁에 박물관과 식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만드는 데 동조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순종은 어찌 되었든 왕궁 문을 직접 열어 근대 문물 수용어ㆍ 앞장서는 행동을 취했다. 유서 깊은 궁에 백성들의 흙발이 들어서는 일은 참을 수 없다며 대신들이 들고 일어서자 고례를 따르더라도 명군은 백성과 함께 즐긴다며 무릇 ‘해락(偕樂)‘이라는 글자를 잘 새기라고 물리쳤다.
<창작과 비평 202호> -2023년 겨울호, 김금희 장편연재 3 ‘대온실 수리 보고서‘ 중, 212쪽 -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