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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사 김정희와 세한도(歲寒圖)
세한도, 조선 후기 뛰어난 명필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생활을 할 때 그린 그림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명필가였다는 것과 그가 그린 그림 이름이 세한도라는 것.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이 그림을 접했을 때는, 한겨울의 세찬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있는 나무의 절개보다는 명필가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미 이름난 명필가였기 때문에 굳이 그림에는 집착할 필요가 없었을까. 아님 그로 인해 생긴 명필가의 여유였을까.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쓴 글과는 달리 오히려 그림에서는 성긂이 느껴진다. 그가 그린 초가삼간은 어릴적 크레파스로 그린 집보다도 더 단순해 보인다.
천재 VS 인간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였던 추사는 7살 때 대문 앞에 써놓은 입춘문을 보고 채제공이 '글씨로 장차 큰 이름을 드날릴 것'이라고 예언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요즘 입시생들처럼 당시에도 과거시험을 위해 과거에 필요한 부분만 공부를 하는 서생들과는 달리, 추사는 조급해 하지도 않고 서책들을 통째로 읽고 외우며 배웠다. 그는 급제에 필요한 유학 뿐만이 아니라 실학과 불교에도 밝았으며, 당시까지 '무학 대사의 비'로 알려진 것을 '진흥왕 순수비'라고 증명해 냈다.
평생 책만 읽고 글을 쓰면서 살 것만 같았던 그에게도 권력의 힘이 작용한다. 경주 김씨였던 그는 당시 왕까지도 쥐락펴락했던 안동 김씨의 세도에 밀려 쉰넷의 나이에 제주도 유배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도, 몸이 힘들 때도 글을 쓰며 다잡았다.
그가 제주도 유배지에 있을 때 추사의 집을 드나들었던 조희룡이 수십장의 난초를 쳐 그를 찾아온다. 그는 난초 친 것들을 그에게 보이며 추사의 조언을 구한다. 추사가 보기에 조희룡의 난은 실물과 똑같았지만, 그것은 선비의 그림이 아니었다. 추사는 실물을 보고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그려내야 한다고 했다. 똑같이 그려낸 것은 그저 환쟁이의 그림일 뿐, 정신이 깃든 선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책을 덮고 다시 본 세한도는 달리 보였다. 여유로움을 넘어 성긂마저 느껴졌던 세한도는 추사가 온 정신을 다해 그린 것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잃어버린 추사 김정희이다. 그대는 나를 그리되 나를 그리지 말고 그대의 태허 같은 텅 빈 마음을 그리시게." (본문 中)
『추사』, 이 책은 명필가였던 그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그려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절친한 지기였던 추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을 것만 같았던 그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그가 어떤 고뇌를 겪으며 천재 명필가로의 완성에 이르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작가에 대해 한가지 더 보태자면, 추사의 이야기가 궁금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지만 한승원이라는 작가가 주는 믿음 때문도 있었다. 역시 작가는 그 믿음을 뿌리치지 않았다. 여느 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곱고 예쁜 우리말들을 찾아내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추사처럼 차를 좋아하는 작가의 내공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2007/08/2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