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80일간의 세계 일주, 이 여행 난 반댈세!

   여러분들은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순전히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게 목표라면 당연히 가능한 일이겠죠. 비행기 몇 번만 갈아타면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막 증기 기관차가 생겨 철도가 깔리기 시작하고, 파나마 운하의 개통이 세계인의 시선을 주목시키는 1872년이라면 어떨까요?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여섯 신사들의 내기로부터 시작합니다. 항상 일정한 시각에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필리어스 포그는 혁신 클럽 회원들과 영국은행에서 5만 5천 파운드를 도둑 맞았다는 신문 기사를 보다가 80일이면 세계 일주도 가능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의 의견을 수긍할 수 없었던 회원들은 급기야 내기를 제안하고, 필리어스 포그는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그의 전재산 2만 파운드를 겁니다.

 

   "그럼 자네는 녀석이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모르지요. 하지만 어쨌거나 세상은 넓으니까 말입니다."

   "옛날엔 그랬지요." 필리어스 포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플래너건에게 카드를 내밀면서 덧붙였다. "당신이 나누어줄 차례요."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토론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곧 앤드루 스튜어트가 말했다.

   "옛날엔 그랬다는 게 무슨 뜻이오? 지구가 갑자기 작아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물론이지." 랠프가 대답했따. "나도 포그 씨와 같은 생각일세. 지금은 백 년 전보다 열 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돌 수 있으니까, 지구가 그만큼 작아진 셈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사건에서도 그만큼 범인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걸세."

   "하지만 도둑도 달아나기가 그만큼 쉬워지겠죠!"

   "스튜어트 씨, 당신 차례요." 포그가 말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스튜어트는 납득하지 않았고, 일단 게임이 끝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지구가 작아졌다는 말은 아무래도 이상해요. 비록 지금은 석 달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해도……."

"80일이면 족해요." 포그가 끼여들었다.

"실제로 그럴 거야." 설리번이 포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로탈에서 알라하바드까지 '인도 반도 철도'가 개통된 뒤로는 80일이면 충분해. 여기에 <모닝 크로니클>지가 세운 계산이 나와 있는데 읽어볼까.

 

   런던에서 수에즈까지, 몽스니와 브린디시를 경유하여, 철도와 기선으로 ─ 7일

   수에즈에서 봄베이까지, 기선으로 ─ 13일

   봄베이에서 캘커타까지, 철도로 ─ 3일

   캘커타에서 홍콩까지, 기선으로 ─ 13일

   홍콩에서 요코하마까지, 기선으로 ─ 6일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기선으로 ─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철도로 ─ 7일

   뉴욕에서 런던까지, 기선과 철도로 ─ 9일

   모두 합하여 80일." (p.29~30)

 

   앞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일이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포그는 이 또한 제 시간에 정확하게 갈아 타기만 한다면 80일간의 세계 일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이 시간은 기상 악화로 인해 지연되거나 아예 출발하지 못할 경우까지 고려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포그의 세계 일주가 시작됩니다. 마침 그에게는 그리 정확하지 못한 하인을 해고하고 새롭게 일을 하기 시작한 프랑스인 하인 장 파스파르투가 있었는데, 그는 새 하인과 함께 여행을 나섭니다.

   다른 회원들이 지적했듯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단순히 이론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1872년이라면 지금처럼 기상 관측을 하던 때도 아니라서 분명 악천후나 고장으로 인해 지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놀랍도록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지연과 결항은 빈번하게 있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철도가 완공됐는 줄 알았는데 도중에 끊겨서 코끼리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때도 생기고,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거나 반대로 그들 자신이 위험에 처해 여행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합니다. 그럴 때마다 포그는 여행경비로 준비한 2만 파운드를 아낌없이 씁니다. 산업화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던 당시, 돈의 가치 또한 상승하던 때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배가 도착 시간보다 늦을 것 같으면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을 경우 포상금을 주면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돈을 주고 누군가의 도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타려고 했던 배를 놓쳤을 경우, 다른 배를 통째로 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포그 일행은 세계 일주를 완수하지만, 포그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내기한 시간보다 5분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비록 5분 밖에 늦지 않았지만, 항상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포그에게는 얼마나 큰 실패였을까요. 그래서 포그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혁신 클럽에 나타나지도 않은채 집에만 머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좀 심심하지 않을까요? 늘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반전이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포그는 런던을 출발해 인도, 홍콩, 요코하마, 뉴욕을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즉, 오른쪽 방향으로 여행을 한 것인데 여기서 포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홍콩에서 요코하마까지만 가도 시차 때문에 1시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 포그는 런던에서 지구 한바퀴를 돌아 다시 런던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번도 시차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시차 때문에 그는 80일이 아닌 79일만에 세계 일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발표했을 당시, 실제로 80일간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내기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쥘 베른의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에는 당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교통 수단들이 총망라해서 등장하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먼나라의 생활과 문화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또, 포그 일행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시차처럼 당시 사람들에게는 낯설었던 과학 상식들이 담겨 있고 실제 유명인들의 실명과 업적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상식을 채우는데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쥘 베른은 1869년 11월 17일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이 운하를 이용하면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기사와 함께 실린 일정표를 보며 이 소설의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쥘 베른이 추구하는 사상 자체는 평화주의와 인도주의였을지 모르나 소설 속에는 식민지 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묘사하고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이 저급한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모든 것을 이익 아니면 손해로 나누는 방식 또한 좋은 것만은 아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티란 하나의 인신공양인데, 자발적인 희생이지요. 당신이 방금 본 여자는 내일 새벽에 불태워질 겁니다."

   "나쁜 놈들!" 파스파르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럼 송장은?" 포그 씨가 물었다.

   "그 여자의 남편인 토후의 시체입니다." 안내인이 대답했다. "분델칸드의 토후국을 다스리던 족장 가운데 하나지요."

   "아니, 그런 야만적인 풍습이 아직도 인도에 남아 있다니! 그런데도 영국인은 아직 그걸 없애지 못했습니까?" 필리어스 포그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도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서티 풍습이 사라졌지만……"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이 대답했다. "이 근방의 미개한 지역, 특히 분델칸드에 대해서는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디아 산맥의 북쪽 기슭은 온통 살인과 약탈의 무대가 되어 있지요."

   "산채로 불태워지다니, 여자가 너무 가엾습니다." 파스파르투가 중얼거렸다. (p.110)

 

   평민들은 모두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에 얼굴이 크고 몸통이 길쭉하고 다리는 가늘고 키는 작달막했다. 피부색은 짙은 구릿빛에서 윤기 없는 흰색까지 다양했지만, 중국인처럼 노란 피부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점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끝으로, 마차와 말과 짐꾼들, 포장을 친 손수레, 옻칠을 한 인력거, 대나무로 만들어진 가마들이 오가는 사이를 헝겊신이나 짚신이나 나막신을 신은 사람들이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여자도 몇 명 보였지만 별로 예쁘지 않았다. 눈이 가늘고, 가슴은 납작하고, 이는 유행에 따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p.218)

 

   혹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영화나 만화, 요약본이 아닌 완역본으로 보신 분이 얼마나 될까요? 만화의 원작으로 더 유명한 『해저 2만리』나 『15소년 표류기』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은 종종 쥘 베른을 아동문학 작가로 오해하곤 합니다. 쥘 베른의 입장에서는 참 억울한 일인데, 완역본을 읽어보면 그 오해가 쉽게 풀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 질문에 답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는 저라도 포그처럼 80일 동안 이곳 저곳을 콕콕 찍기만 하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포그의 하인 파스파르투처럼 주변 풍경도 살펴보고, 시내 이곳 저곳도 둘러보려면 세계 곳곳으로 비행기가 운항하는 지금도 80일로는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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