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 탈근대의 서사와 담론 청동거울 문화점검 43
박진 지음 / 청동거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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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계가 희미해져가고 있다. 물론 서사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대중적 서사들의 내용 분석을 통해 서사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크게 팩션과 역사 서사물, SF 서사물, 공포 서사물로 나눠 분석하고 있다.

역사와 허구의 강렬한 접속 : 팩션과 역사 서사물
최근 출판계나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바로 "팩션(Faction)"이라는 장르다. 팩션은 우리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서사 양식으로, 흔히 역사추리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팩션과 역사추리소설은 구별되어져야 한다. 실재와 허구를 과감하게 뒤섞어 결과적으로 리얼러티를 혼란에 빠뜨리는 다양한 종류의 서사물이 팩션이라면, 역사추리소설은 역사적ㆍ추리적 요소가 필수인 팩션의 특수하고도 대표적인 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역사추리소설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창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출간되고 있는 한국의 역사추리소설들은 한국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팩션-역사추리소설은 비판과 회의의 대상으로 진실(fact)을 등장시키는 반면에 우리의 역사추리소설은 여전히 근대의 이념 논쟁 틀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팩션-역사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유는 역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들(fact)을 역사가가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한 것이다. 근대 역사학에서는 허구적 상상력을 거부하며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도 했지만 오늘날 다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역사가만 그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법이 있겠는가.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문학가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낯선 논리적 질서 속으로 : SF 서사물
대체 역사(alternative)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실제와는 다른 결말을 낳았다고 가정하고, 그 이후에 펼쳐질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보는 일종의 역사 시뮬레이션이다. 장르적으로 볼 때 대체 역사는 역사물과 SF의 중간 지대에 놓여 있으며, SF 장르의 하위 갈래도 볼 수도 있다.
SF(Science Fiction)는 시간의 이동이나 공간의 확장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1990년대 이후 스팀펑크, 리보펑크, 슬립스트림 등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스팀펑크(Steampunk)는 근대적인 과학 기술의 시발점인 '증기기관의 시대'를 무대로 삼는 일종의 대체 역사 SF로, 과학 기술과 기계 문명으로 인해 가시화된 문제들의 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반성하고자 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바로 이것이다.
슬립스트림(Slipstream)은 주류소설(Mainstream Fiction, MF) 작가들이 SF 장르의 프로토콜을 차용해서 쓴 경계 지대의 작품들로 최근 우리 소설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장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 서준환의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 백민석의 『러셔』 등이 있다.
리보펑크(Ribopunk)는 첨단 유전공학과 생체공학의 문제에 집중하여 인간복제나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신계급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그 어떤 쟁점들보다도 '현실적'이다. 구체적인 현실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SF물보다도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와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이처럼 SF는 하위 장르로 분화되고 있지만, 『카우보이 비밥』처럼 온갖 장르의 코드들이 혼합된 혼종 서사물들도 등장하고 있다.

타자성의 서사화 : 공포 서사물
독특한 시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SF를 통해 미지의 타자를 만나곤 한다. 미지의 타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SF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공포 서사물에서 괴물 혹은 귀신이라는 타자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공포영화에서 누가 빈번히 괴물 또는 귀신이 되는가를 살펴보면서 "그 사회가 억압하고 있는 본원적인 무의식"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공포물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귀신으로 등장한다.

담론이라 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그것은 생경하고 낯선 텍스트가 아닌 우리가 그동안 익히 보아왔던 텍스트와 영상을 가져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다.



2008/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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