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의 삶
칼 번스타인 지음, 조일준 옮김 / 현문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2007년 1월, 힐러리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 어쩌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 퍼스트레이디로서 현명한 내조자 역할을 하고 바람끼 많은 남편의 거짓말도 덮어줄 수 있는 그녀, 처음으로 상원의원이라는 자신의 직책을 가지고 집중 조명을 받았던 그녀. 그녀가 이런 모습을 얻게 된 것은 삶을 향한 그녀의 강한 열정 덕분이었다.

어릴적 그녀는 총명한 학생이기는 했지만 남의 이목을 끌만큼 예쁜 소녀는 아니었다. 정리하지 않은 곱슬머리에 아랫니보다 돌출한 윗니, 예쁜 눈을 가려버린 안경과 히피를 연상시키는 옷차림. 말 그대로 그녀는 촌티가 줄줄 흐르는 소녀였고, 그녀의 집안 역시 그녀가 외모에 관심을 기울여 치장할 만큼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다. 특히 보수적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마저 싫어했고, 상당히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환경은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한 웰즐리 여대에서의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 특유의 강인함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여느 웰즐리 여대생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녀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그녀, 예일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빌을 만나게 된다.

힐러리는 아버지로부터 억압 받으며 살고 있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런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빌을 만난 이후 그녀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빌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빌과 함께 하기 위해 작은 시골이었던 아칸소에 머물렀고, 빌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유세를 따라 다녔다. 빌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도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빌이 르윈스키 사건으로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도 그녀는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힐러리가 가진 정치적 잠재력은 누구보다 월등했습니다." _ 빌 클린턴 (p. 160)

 

힐러리와 빌의 결합은 환상 궁합이라 할 수 있다. 힐러리는 빌과는 달리 강인했고 추진력이 있었다.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감히 잘라버리는 결단력도 있었다. 반면에 빌에게는 그러한 특성이 부족했다. 빌은 대인관계에서도 우유부단했으며,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차 강력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우유부단함이 빌 특유의 유대감과 친밀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힐러리와 빌은 서로에게 없는 특성을 보완해주고, 그것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창줄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결합이 다분히 정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힐러리는 빌을 정말 사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빌을 처음 만났을 당시 힐러리는 굳이 빌에게 기댈 이유가 없었다. 스스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선을 바꾸고 빌과의 결혼을 선택했던 것은 정말 그녀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빌을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빌은 그런 힐러리를 무서워했다. 르윈스키 사건 때 그가 탄핵을 받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거짓말을 주장했던 것은 힐러리가 진실을 알게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상원의원이 된 그녀, 어쩌면 예전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너무 자신감에 넘쳐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달라졌다. 빌이 재위했던 8년 동안 그녀는 빌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며 빌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친화력과 정치력 등을 그녀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펴기보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더이상 공격적이지 않으며,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아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힐러리의 대선 출마와 그녀의 당선 여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사다. 앞으로 그녀는 어떤 행보로 또 한번의 "클린턴 시대"를 열지 궁금하다.

 


위대한 정치가의 특성은 신념에 대한 일관성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지도력을 대담하게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의 인식이다. (p. 759)

 

힐러리는 《살아있는 역사》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 대부분의 내용이 유령작가에 의해 쓰여진 '자서전'에서 '환희'에 대해 기술된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p. 142)

 

책을 읽으면서 칼 번스타인은 이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앞서 나온 힐러리의 또다른 책인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앞서 나온 책을 너무 의식한 탓일까) 상당 부분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가 유령작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그 내용들을 토대로 책을 펴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단순히 연대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만을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독자는 헷갈리지 않아도 되지만, 작가의 "관점"이 없다. 그가 힐러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힐러리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처럼 갈팡질팡 하고 있다.

마지막 맺음조차 '껍질 속의 그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을지 모르므로.'라고 마무리 하며 결론을 내리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전직 기자라는 타이틀이 그를 중립, 아니 판단유보의 상태로 만들었던 것일까. 적어도 이런 책을 기술함에 있어서는 대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를 덧붙이자면, "A는 B(B는 C(C는 D하는 것이다)이다)이다" 처럼 괄호를 중첩 사용해서 무언가를 부연 설명하는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읽는데 짜증이 날 정도다. 차라리 하단에 따로 주를 달던가.

 

2007/12/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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