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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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문학 실험실, 『파리 리뷰』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 문학 계간지다.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해 그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가자 1973년 미국 뉴욕으로 본사를 옮겼다.

문학잡지 「파리 리뷰 The Paris Review」는 1953년 창간 이후 소설의 실험실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우리 편집자들은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운동이나 학파만을 신봉하지도 않습니다. 언어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탁월한 작가는 모두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믿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성공한 작품만을 모은 선집이 아닙니다. 장르의 대가 열다섯 명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어떤 작가는 고전을, 어떤 이는 우리에게조차 새로운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편집자의 말」, 5쪽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지난 반세기 동안 「파리 리뷰」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15명의 작가들이 한 편씩 골라 엮은 단편소설 선집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레이먼드 카버처럼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기도 하지만, 낯선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파리 리뷰」의 원칙 덕분에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적인 작품들도 많은데, 각 소설 말미에 그 소설을 선정한 작가의 선정 이유와 해제가 붙어 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일은 존재조차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헤매다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꽃이 만발한 벌판을 만나기도 합니다. 「옮긴이의 말」, 9쪽

이 책에 붙여진 감각적인 제목이 책을 선택하는데 한몫했는데, 놀랍게도 이 책의 원제는 『실물 교육 Object Lessons 』이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데니스 존슨이 1989년 110호에 발표한 소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분량이 겨우 1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소설(어쩌면 '경단편'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이다. 화자 '나'는 출장 중인 세일즈맨의 차를 얻어 타게 되는데, 그는 '나'에게 혈관 내막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의 약을 먹였다. 그때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어떤 올즈모빌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기도 전에 내 앞에 멈춰 설 것을 알았고,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20쪽) 감각적인 문장과는 달리 소설의 내용은 약에 취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진 것을 묘사한 것이었다. 만약 이 소설을 선정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해제가 없었다면,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15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를 뽑은 데이비드 민스의 해제였다. '문학 실험실'이라는 타이틀답게, 읽고 또 읽어도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107쪽) 레이먼드 카버 역시 이렇게 썼다. "뭔가 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말로 할 수는 없었다."(106쪽)

작가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독자들이 알아채 주기를 바랐겠지. (아닌가?)

15편의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실물 교육 Object Lessons 』이라는 이 책의 원제가 이해된다. 이렇게 쓴 소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만 읽거나 이미 유명해진 고전만 읽던 나에게 다양한 소설의 세계를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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