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거품의 역사 - 돈이 지배한 광기와 욕망의 드라마
안재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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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와 은행은 국가가 보장하는 대국민 사기다!
   우리는 왜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이토록 맹신할까요? 우리는 왜 돈을 은행에 맡길 때보다 빌릴 때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할까요?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국가 재정이 거덜 나 고민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악마의 꾀'를 불어넣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황제에게 '종이 한 장은 1천 크로네'에 해당한다는 포고령을 내리라고 말합니다. 황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사기극"이라며 거절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자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악마의 유혹'이었을 뿐입니다. 막대한 양의 지폐가 발행되자마자 거덜났던 국가 재정도 회복되고 경기도 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지폐의 가치가 떨어져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맹신하는 지폐에는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가치 통화로서의 기능만 있을 뿐 지폐 자체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쪼개거나 부수거나 녹여도, 혹은 국가가 망해도 가치는 그대로인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지폐는 훼손되거나 국가가 망하면 그냥 쓰레기 조각이 되어버립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이 종이 쪼가리를 맹신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나라가 망하고 나면 10원짜리 구리값보다 못한 지폐를 '돈'이라 칭하며 믿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돈이라고 여기면서 생활하는 1만원 짜리나 5만 원짜리 지폐, 이를 '돈'이라 칭하는 것 자체가 사기란 지적이다. 14쪽

   어쩌면 과거의 인류가 지폐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현대인들이 지폐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에 의해 "이 종이쪽지는 돈이다"고 세뇌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6쪽

   지폐는 '가짜 돈'이며, 이를 '진짜 돈'이라고 우기는 신용통화 시스템은 그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지폐는 돈에 꼭 필요한 상품 통화로서의 기능이 결여돼 있기에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인류가 이 방향으로 온 것은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금과 은의 양은 한정돼 있으며,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특정 국가에 너무 쏠려있다. 193쪽

  
정부는 시민들을 속여 그들의 손에 실질 가치가 액면가보다 훨씬 떨어지는 지폐를 쥐어 준 뒤 대신 액면가만큼의 금은을 약탈해 갔다. 무기가 아닌, 법과 지혜를 악용해 벌이는 세련된 약탈이었다. 196쪽


은행은 왜 우리가 '예금'한 돈으로 이자놀이를 할까?

   "우리 서로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자. 단, 네가 부담해야 하는 금리는 나보다 조금 높게 하자" (101쪽)

   만약에 지인이 이런 식으로 제안을 했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사기꾼' 혹은 '도둑놈'이라고 화를 냈을 것입니다. 은행은 '예금'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돈을 적은 이자를 주고 빌려가서 쓰고는, 우리에게 빌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때는 더 큰 이자를 받고 빌려줍니다. 즉, 자기 돈도 아닌 돈을 가지고 이자놀이를 해서 돈을 버는 셈입니다. 이런 금리 차를 '예대마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은행의 핵심 수익원입니다. 정부는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라고 해서 은행이 고객의 예금 중 일부만 금고에 넣어둔 채 나머지는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 돌리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해 주기까지 합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예금'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은행 금고에 넣어둔 돈이 얼마되지 않음을 눈치챈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인출하려고 하면 '뱅크런'이 발생합니다. 보통 지급 준비율은 7% 정도이기 때문에 그 많은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하면 은행에는 지급할 돈이 당연히 없게 마련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고귀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
   우리 인간들은 '돈'이라고 지칭하는 수단이 없으면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전쟁들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고, 혁명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결국 돈입니다. 비록 제목은 『풍요와 거품의 역사』지만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자유, 평등, 박애 등 고귀한 말은 단지 겉포장으로 붙인 수사였을 뿐이다. 실제 원인은 '돈'이었다. 정확히는 '증세 논란'이, "세금을 늘려야 하나?"와 "늘린다면, 누가 부담해야 하나?"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 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다. 180쪽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돈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시민들이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프랑스대혁명 또한 주된 원인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크게 성직자로 구성된 제1계급, 귀족으로 구성된 제2계급, 시민으로 구성된 제3계급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중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특권을 누렸고, 가난한 시민들은 세금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3계급인 시민들 중에서도 부유한 시민들인 부르주아들이 세금을 감당해 내고 있었는데, 당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던 프랑스가 증세에 나선 것입니다.
   화가 난 부르주아들은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직자나 귀족들도 내지 않는 세금을 더 내기 싫어서 가난한 시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 어느 왕보다 검소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가 심해서 나라가 어렵다는 헛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고 했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도 부르주아들이 꾸며낸 것이라고 합니다.
   역대 왕들은 '지폐'를 발행해 사기를 칠 지언정, '증세'는 가급적이면 피하고자 했습니다. '증세'는 이처럼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이 16세는 그토록 많은 왕들이 피하고자 했던 '증세' 정책을 선택한 죄로 왕의 자리에서 내쳐지고, 목까지 내쳐졌던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권력 획득을 위해 선동한 상퀼로트보다 오히려 루이 16세를 비롯한 상류층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188쪽

   프랑스대혁명 당시 앞에 서서 시민들을 이끌었던 부르주아들 또한 가난한 시민 계급보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상류층에게 더 큰 동질감을 느꼈고, 자신들도 그런 특권을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사실 인간은 평등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나보다 잘나고 부유한 자와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나보다 못나고 가난한 자와의 평등을 원하는 인간이 있던가? 모든 인간은 평등이 아닌 격차를, 그것도 내가 위에 올라서는 격차를 원한다. 남보다 더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 열망이야말로 인간에게 제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249쪽

   이 세상의 부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기에 충분하지만, 부자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47쪽

   자본에는 국격이 없고, 자본가들에게는 애국심도, 고결함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 88쪽


금융 정책에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당신에게!
   『풍요와 거품의 역사』는 지폐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은행, 주식을 거쳐 비트코인까지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들면, 예대마진이나 뱅크런,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 서브 프라임, 비트코인까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경제나 금융 용어들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연원을 알고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또한,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증세와 복지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나라가 파탄에 이르지 않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본성에는 자본주의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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