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냐 은혜냐
M. R. 드 한 지음, 이용화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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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날 구원에 있어서 율법과 은혜의 역할에 대해 세 가지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견해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견해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율법 조항들은 지켜야 구원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견해 말이죠.
 
바울 당시에 있었던 율법의 역할에 간한 세 번째 오류는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외에 신학적인 용어로 갈라디아주의’(Galatianism)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이 명칭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사상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73)
 
엠 알 디한(Martin Ralph De Haan)의 율법이냐 은혜냐에 나오는 내용이죠그는 구원에 있어서 율법주의’, ‘반율법주의’, 그리고 갈라디아주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그래서 그는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3:28) 알도록 하기 위해 바울이 로마서를 썼고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의 법에 의해 행함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야고보서를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도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고 말하죠이른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값없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이죠율법을 주신 것은 그로부터 출애굽한 지 3개월째 되는 날 곧 50일이 되는 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었다고 밝힙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거울이자 잣대, ‘지침서’ 격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은 돌 판에 새긴 십계명을 비롯해절기와 성일과 희생과 제사와 음식에 관한 법과 민법과 성막의 모형도까지 함께 주셨다고 하죠디한은 그것을 도덕적인 율법의 계명’(20:1-26), ‘재판’(민법)(21:1-24) 그리고 의식’(儀式)(24-31등의 세 부류로 구분하죠그것이 출애굽기 2031장까지 나온 율법의 총체적인 내용이라고 하죠.
 
더욱이 그는 그 율법에 대해 아담 이후 2,500년 동안 율법 없이 살아왔다가 시대적인 상황에서 주신 것이고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죄의 근성을 드러내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이기 위한 본보기로 주신 것이요그로 인해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위해 주신 것이라고 밝히죠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율법을 주실 때에는 그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어서 주신 게 아니라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뜻입니다바꿔 말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율법의 행위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 깊이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고 명하나 은혜는 이것은 이루었다고 말합니다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합니다율법은 죄짓는 영혼은 죽는다고 하지만 은혜는 믿으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죄를 속량합니다율법은 복종을 요구하나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줍니다율법은 속박하지만 은혜는 자유하게 합니다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지만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116)
 
이는 율법과 은혜에 관한 대칭되는 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본래 이 책에는 19가지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간추린 것이죠물론 그 밖에 얼마든지 더 소개할 수 있다고 하는데그가 진정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것입니다이제부터라도 인간적인 행위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자기 자신에게서 그리스도로 돌이키도록 말입니다바꿔 말해 인간의 의지나 행위나 자기 자아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실은 율법주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사랑이 통치하는 곳에는 율법이 필요 없습니다전에 고용인으로 데리고 있던 여인의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다하라고 부엌 벽에 십계명을 써 붙여 놓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이 부인이 매일 아침 부엌에 붙여 놓은 율법을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200)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지그에 대한 쉬운 예화를 하나 소개한 것입니다이전의 고용주 앞에서 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한 여성이 그 고용주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사랑의 법’ 아래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죠그것이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과 구원의 은혜 아래 자유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하죠구원받은 사람에게 선한 열매가 맺혀야 하는 것도 율법 조문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오직 사랑의 은혜가 열매를 맺게 하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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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기도 -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실한 여정
김요한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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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쉬고자 하는 경우가 있죠. 기도해도 전혀 응답이 없거나,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불행한 일이 닥칠 때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에 대한 의심이 들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며 기도하던 습관조차 내려놓게 되죠.

“분명한 것은,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뭐라고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불평, 원성, 항의, 심지어 욕지거리라 할지라도 말이다.”(316쪽)

김요한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새물결플러스·2017)에 나오는 이야기죠. 고난의 수렁에 빠지거나, 죽음의 압착기가 몸을 짓누를 때, 그때도 언약백성들은 하나님께 입을 열어 기도해야 할 것을 주문한 것입니다. 이른바 박완서 선생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잃는 괴로움을 당했을 때, 김병년 목사의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각자 하나님께 따지는 것도 그런 기도의 일종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울다가 웃고, 또 욕하고 짜증내는 행위들이 실은 시편의 고백 속에도 나오는 바죠. 그런 항의와 불평의 탄식들이 그래도 하나님을 ‘나와 너’의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하는 행위지만,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나와 그것’의 비존재로 만드는 꼴이라고 하죠.

하나님은 비록 의심하고, 절망하고, 탄식하는 당신의 언약백성들의 기도에 한없이 무응답으로 일관하지는 않는 분이시죠. 이 책에 나오는 분들도 그 당시에는 아픔과 원망으로 삿대질을 하고 회의 속에 살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하나님의 임재와 또 다른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며 ‘상처받은 치유자’로 거듭났다고 밝혀주죠.

그렇듯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기도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게 무엇인지, 기도할 때의 방언과 찬송의 유익함이 무엇인지, 기도와 삶의 연관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개인 기도를 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 곧 섬김의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도의 세 단계’가 있다는 것은 신선했습니다. 이른바 지하수를 퍼 올리는 단계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지표에서 10-30미터 지점의 ‘지표수’를 퍼 올리는 게 첫 번째 단계이고, 그 지표수 아래의 암반과 암반 사이에 흐르는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게 두 번째 단계, 그리고 300-500미터 이상을 파고 들어가면 암반 자체에 모여 있는 ‘천연암반수’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단계라고 하죠.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은 ‘기도 응답의 비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13절을 통해 그걸 설명해 주죠. 여행에 지친 친구가 밤늦게 먹을 것을 구하자 그 친구도 먹을 게 떨어져 이웃집에서 구해왔는데, 그걸 두고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끈질긴 기도에 응답의 비결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 기도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그 본문을 대하는 이 책의 관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이른바 중동의 문화를 통한 해석이 그것이었죠. 중동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때 그 주인이 환대하지 않으면 자기 수치로 다가오기 때문에 자기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손님의 요구에 응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도 실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환대이자 당신의 명예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죠.

놀라운 점은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예언에 관한 ‘은사지속론자’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스스로 누군가로부터 예언기도를 받은 바 있고, 자신도 그 누군가를 위해 예언기도를 해 주고 있다는 게 그것이었죠. 목회의 환멸을 느끼고 있을 때 몇 몇 분의 동일한 예언 기도를 통해 새로운 갈피를 잡는 계기를 맞이했고, 자기 스스로도 예언의 은사를 활용해 집사 친구에게 이사를 하라거나 어느 분에게는 셋째가 아들일 것이라는 예언의 말들을 해 주었죠.

이 부분만큼은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러나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기도의 본질을 깨우치게 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기도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엮어나가는 것이기에, 그 분과 친밀하면 친밀할수록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뜻을 숨기지 않은 것처럼, 바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신 것처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요한에게 알리신 것처럼, ‘나와 너’의 친밀한 관계, 그 천연암반수를 퍼 올리는 단계에 접어들면 그런 은사로 연약한 자들을 섬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뭐라고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불평, 원성, 항의, 심지어 욕지거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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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 전4권 -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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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식당 시리즈 세트 - 전3권 수학식당
김희남 지음, 김진화 그림 / 명왕성은자유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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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수학식당 1권과 2권, 그리고 3권은 나와 내 딸아이가 함께 읽고 쓴 리뷰라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내 딸과 함께 서로 주고받으면서 느낀 점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구구단'을 외우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특별히 9단을 외울 때 나도 그렇고 내 딸도 그렇고 신기한 패턴을 발견케 해 주었다. 이른바 9, 18, 27, 36.... 여기에서 십의 자리는 1씩 커진다는 걸, 가리고 일의 자리는 1씩 작아진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그것을 양손으로 할 경우엔 더욱 또렷해졌다. 오른 손은 일의 자리를, 왼손은 십의 자리로 구부려서 하면 손쉽게 분간할 수 있다.

 

내 딸아이는 이에 대해 내게 코멘트를 준다. 만약 이 방법을 일찍 알았다면 구구단을 외울 때, 잘 활용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 책의 당케처럼 미리미리 배워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도 있겠다고 한다. 그게 내 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 귀한 걸 깨달은 게 있다. 물론 내 딸아이는 익히 알고 있던 것인데, 이 번에는 나이 든 내가 알게 된 점이다. 달력을 아래 행으로 죽 그어보면 그 숫자는 7을 더한 숫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걸 내가 깨닫고서, 내 딸아이에게 물어봤더니 '그걸 이제사 알았냐'며 핀잔을 준다. 무지 창피했다.

 

그런데 내 딸은 다른 것, 나보다 훨씬 수준 높은 것, 그걸 터득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달력의 대각선 배열이 특정 수를 합한 것이 된다는 게 그것이다. 2014년도 11월 달력을 본다면, 2, 10, 18, 26의 대각선 숫자는 각각 8을 더한 합의 수가 된다는 점이다. 그 반대 사선도 마찬가지다. ,14,20,26도 각각 6을 더한 숫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식물이나 동물의 먹이를 줄 때에도 그렇게 기억하면 좋다고 한다.

 

와우, 수학식당 1,2,3권 모두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밌는 책이었다. 나와 내 딸아이가 함께 생각해 볼 것도 많아서, 아빠와 아이가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책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온다면, 그 흥미가 폭발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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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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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당선자들에 대한 학위논문이 말썽이다. 학부생들의 논문을 비롯해 또 다른 대학원생들의 논문까지 짜깁기 하거나 통째로 베꼈다는 것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오타까지 그대로 옮겨 썼다고 하니 헛웃음까지 나온다.

 

물론 그런 일은 그들만의 추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을 비롯해 목회자들도 예외이지 않다. 어떤 교수는 학생들 발제물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자기 이름으로 낸 교수도 있고, 어떤 담임목사는 목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목사에게 논문을 써서 자기 이름으로 펴내기도 한다. 그것이 A라는 형식이라면 또 다른 거래의 형식으로 논문과 책을 내기도 한다.

 

그건 시장지상주의와 맞닿아 있는 한 흐름일 뿐이다.  일반 업체에서는 다른 흐름을 주도한다. 은행과 통신사들이 VIP고객을 위해 편리한 장을 마련해 놓는 게 그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하지만 특별우대고객에겐 새치기를 허용하는 특별한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물론 그게 대해 딴지를 걸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정이 다른 사안도 있다. 국내는 잘 모르겠지만 외국의 경우 학생이 자격 미달이어도 부모가 막대한 기부금을 내면 대학입학을 허락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그 또한 돈 있는 집에서 하는 일이니 누가 말릴 수 있겠냐고 항변한다면 할 말이 없다. 뿐만 아니라 1년에 1500달러에서 2만 5천 달러에 달하는 연회비를 내면 '전담 진료' 서비스를 받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그것 역시 문제가 안 되는 걸까?

 

자라나는 10대들에게 해당되는 일도 있다. 학교수업시간에 지각하면 벌금 500원을 내게 하는 학교, 그래서 두 번 지각하면 1,000원을 내도록 하는 제도 말이다. 그런 걸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학교는 현재까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 읽은 바로는, 그걸 시행하고 있는 어느 학급은 있는 것 같다. 지각을 없애려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일이겠지만 점차 벌금으로 지각을 합리화하는 결과는 가져온다는 생각을, 과연 그 선생님은 못해 봤을까?

 

시장지상주의 시대가 낳고 있는 병폐들이 바로 그런 유형들이다. 도저히 안 해야 되는 것, 정말로 안 되는 것,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 그것들을 돈과 재화를 이용해 손에 넣고 결과를 얻는 행위, 그 모든 행위들이 시장과 도덕을 분리시키고 있다. 그게 오늘날의 세계화 추세다. 과연 옳은 일일까?

 

최근에 나온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그에 대한 윤리적 태제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속출하고 있는 공정성과 부패에 관한 공적인 논의가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신자본주의시대 속에서 모든 원하는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신음하고 파괴되는 공공의 질서와 윤리에 대한 생각과 자세를 환기시키는 것 말이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행위에 가격을 부과하니 규범이 바뀌었다. 제 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것이 교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여겨졌지만, 이제 부모들은 이를 시장논리로 이해해서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해도 아이를 좀 더 오랫동안 맡길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교사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는 것이다."(130쪽)

 

이 책 제 3장에 나오는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 내는가'에 관한 일례다. 퇴근 하는 부모가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올 경우 어린이 집에서 벌금을 내게 했다는데, 점차 그 행위가 오용되는 사례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인센티브가 점차 시장논리로 대체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예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지각했을 경우 벌금 500원을 내게 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아마도 그건 더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학력이 부진한 미국의 댈러스 소재 학교들에 관한 것이다. 그곳 소재 학교들은 학생들이 책 한권을 읽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돈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것이 학생들 성적을 끌어 올릴 수 있고, 그걸 선생님들 승급과 연결시킨다는 정책이다. 과연 돈을 줘서 책을 한 권 더 읽힌다면, 아이들 성적이 곧바로 향상될까?

 

이 책 5장에 나오는 '명명권'에 관한 논쟁도 섬뜩하다. 이른바 운동선수의 사인볼과 유니폼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과 운동장의 입장권에 이르는 모든 스포츠의 상품화라 할 수 있다. 그 중 헐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된 '머니볼(moneyball)'은 더욱 충격적이다. 전혀 게임이 되지 않는 팀과 유명 팀을 경기에 붙여 대등한 전략을 펼치도록 하고, 그것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케 했다는 점이다.

 

"머니볼 전략은 최소한 장기적으로는 약자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자 팀들은 통계학자를 고용해서 그들이 추천하는 야구 선수들에게 가난한 팀보다 높은 연봉을 제기했다. 프로야구계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후한 연봉을 지불하는 팀 중 하나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머니볼 전략의 추종자였던 소유주이자 단장의 지휘 아래 2004년과 2007년 월드시리지 챔피언이 되었다. 루이스의 책이 출간되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메이저리그 팀의 승률을 결정하는 데 있어 돈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245쪽)

 

그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스포츠계가 떠오를 것이다. 이른바 승부조작사건 말이다.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를 돈을 매수하고 그걸로 승률을 조작하고, 축구에서도 선수를 돈으로 매수하여 패스의 성공률을 조작토록 했다는 것, 과연 말이나 될 일인가? 그 역시 시장지상주의와 맞닿아 있는 병폐이지 않을까?

 

마이클 샌델이 이전에 썼던 〈정의란 무엇인가?〉는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옳음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이번에 나온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그 연장선상에 나온 산물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공정성과 부패에 대한 진정한 정의의 관점을 찾고자 하는 것 말이다. 주지하고 있듯이,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좋음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공공의 옳음에 있다는 걸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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