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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을 맞이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아 뵈었던 아이들 모습입니다. 두 분이 손주 녀석들을 너무나 잘 대해주셨는데, 장인 장모님 두분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권성권
지난 설 명절을 맞이하여 전주에 있는 장인어른 댁과 광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찾아 뵀다.

주일 오후라 한산할 것 같았지만 서울에서 전주까지 6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서하남 IC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탔다가 다시금 광주로 빠져 중부고속도로를 탔는데 그 길이 막혀버렸던 것이다.

힘들게 찾아 왔는지 장인어른은 우리들을 보자마자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장모님도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도 셋 씩이나 데리고 갔으니 너무나 기분 좋게 여겨주셨다. 장모님도 벌써부터 예쁜 때때옷도 사다 놓으셨는지 그것을 방에서 들고 나오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은 온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세배를 올렸다. 물론 돌이 지나지 않은 막내 녀석은 빠졌다. 나와 아내 그리고 첫째 딸과 둘째 녀석이 모두 세배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오냐. 민주랑 민웅이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여기 세배 돈."
"예. 고맙습니다."

흰 봉투에 든 세배 돈을 우리 집 식구들에게 모두 각각 주셨다. 딸아이도 좋아하고 둘째 녀석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벌써부터 돈맛을 알면 안 될 것을 아셨던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5천원 짜리를 담아 하나씩 주셨던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 울 엄마 단독사진입니다. 지난 수술 때보다도 얼굴이 훨씬 좋아 보이는 모습입니다. 올 추석 때에는 고향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권성권
새해 인사를 끝으로 나와 아내는 첫째 딸아이를 데리고 광주로 향했다. 이미 차량들이 다 빠져나갔는지 그 길은 그야말로 아우토반이었다. 곧장 화순에 있는 전대병원에 들러 6층 병실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 삥아리 오네. 민주도 오냐?"
"엄마. 잘 있었어. 얼굴이 좋아보이네."
"조금 낫긴 허다만…."
"형수는?"
"응, 밖에 나갔는가 보제…."
"저기 형수 오네. 형수 고생이 많죠."

그곳에서 우리 식구들은 형수와 함께 엄마가 식사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병실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형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형수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된 듯 했다.

사실 어머니는 수술이 잘 되어 얼굴이 활짝 핀 듯 하지만 아직까지 대소변은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그 까닭에 똥오줌을 받아내는 몫은 형수가 해 내고 있다. 아마도 극진한 사랑이지 않나 싶다.

엄마와 형수 사이에는 서로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울 엄마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땅덩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형수의 사랑 이외에는 그것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 울 엄마가 식사하는 모습이고, 옆에서 형수가 간호하고 돌봐주고 있습니다. 형수가 참 고생이 많습니다. 아마도 사랑이 아니면 정말로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런 분이 있다면 형수처럼 시부모의 병수발을 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일은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권성권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고 곧장 오후 무렵에 위로 올라왔는데, 문뜩 딸아이가 여러 어르신들에게 했던 말 "난 할머니가 두 명이나 있어요"가 떠올랐다. 그것은 전주로 내려오는 명절 그 아침에 아내가 얘들에게 했던 말인데, 그것을 딸아이가 아침부터 자랑삼아서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해 댔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내 가슴에 콕 박혔던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이미 친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간 지 오래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명절 때에 내려가면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으니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인데, 앞으로도 세 분 모두 오래도록 사셨으면 하는 그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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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옮기는 것이라 했다. 아무리 많은 곳을 여행했다 할지라도 자기 우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여행은 장소보다도 자기 생각의 지평을 여는 것이 훨씬 소중한 일이다.

신영복 교수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에서는 여행과 관련하여 또다른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여행에서 가장 먼 길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란 것이다. 그만큼 머리에서 깨달은 것을 가슴으로 잇는 게  쉽지 않고, 설령 가슴이 뜨거워졌을지라도 발끝에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그 까닭에 줄곧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면 희망의 연대이다. 이른바 우뚝 솟아 오른 한 그루의 나무보다는 오히려 그 나무를 지탱하는 흙가슴처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라나 우거진 아름다운 숲들을 내다보게 하고 있다.

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태양은 언제나 산에서 뜨고 산에서 진다. 바다에서 일평생 생활한 사람도 태양은 언제나 바다에서 뜨고 바다에서 진다. 넓은 평원에서 한 세월을 보낸 사람도 태양은 언제나 평원에서 뜨고 평원에서 진다. 가끔씩 이권 때문에 포용하지 못한 채 핏대를 세우며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그런 주장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물은 다르다. 물은 산에서든지 바다에서든지 평원에서든지 매 한 가지다.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물이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막힌 돌담을 부딪히지 않고 에돌아 간다. 분지가 있으면 가득 채운 후 부드럽게 지나간다. 그만큼 물은 생명의 삶이요, 관용의 삶이다. 그렇기에 썩지 않는 참 물이라면 그만큼 생명력은 긴 법이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주역 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171쪽)

이른바 물처럼 참됨을 갈구하면 모름지기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는 곳에는 열림이 있고, 열려 있으면 무엇보다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땅에서 폼 내고 주름잡은 것들이 몇 년 못되어 사라진 예들은 참 많다. 모든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다가도 하루아침에 쇠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념도 체제도, 그에 따른 운동도 다 그러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꿋꿋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만큼 참됨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그것을 신영복 교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 이야기했다.

"무성한 잎사귀 죄다 떨구고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는 비극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한 개는 '희망'입니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229쪽)

그렇듯 참됨의 씨앗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짓밟을지라도 그 생명의 숨결은  끝내 솟아오르는 법이다. 세월의 여파 속에서 그리고 희망찬 열매도 내 놓는 법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이룰 일은 아니다. 긴긴 세월 속에서 자기 이파리들을 떨어뜨리는 스스로의 죽음을 되풀이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아흔이 넘은 노인이 산 속의 돌을 캐내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그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사실 이 땅에서 참된 숲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너도나도 빼어난 한 그루 나무처럼 우뚝 서길 바라는 까닭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더군다나 혈연과 학연과 지연, 그리고 제도와 관습 등이 숲 속의 덫과 톱이 되어 그 정신과 삶을 마구 헤치고 있지 않던가?

그럴지라도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참 물처럼, 그리고 참 씨앗처럼 궁극이 되는 참됨을 지향하고 변하고 열리고 포용하고 관용하면 그 생명력 자체가 길고 긴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뜻깊은 냉철한 생각을 머리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발끝까지 이어가는 참된 흙가슴으로서 연이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 때에만 이 세상을 희망의 숲으로 일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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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 이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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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는 선진국대열에 온통 힘을 쏟고 있다. 세계 자본을 많이 끌어들이고 있고,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가 됐든 그 누가 됐던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이 주도하는 FTA 협상에 순순히 나서는 것도 그 흐름이다.


그러나 선진화대열에 발 벗고 나서는 동안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과연 나아졌는가? 돈줄이 있고, 배운 사람들이야 아는 곳에 발 빠르게 들어가고 투자하면 된다. 그에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기에 그만큼 뒤처지고 있다. 농어촌에서 사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그저 세월과 함께 쇠꼴만 빠질 뿐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선진국을 이루는 길인가? 그저 잘 먹고 잘 쓰고 잘 사는 것만이 선진국인가? 겉으로는 자유로워도 속이 부정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마저도 선진국인가? 가난하더라도 모두가 잘 사는 길은 없을까? 못 먹고 못 입어도 서로를 위하며 서로가 믿어주는 그런 사회는 바랄 수 없는 것인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의 〈가난한 휴머니즘〉(2007·이후)은 비록 가난하지만 참된 인간애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는 프랑스와 맞선 전쟁에서 독립을 이뤄냈다. 하지만 악덕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세습으로 그곳의 사람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에 대해 반기를 들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아리스티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신부로서, 그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참된 자유와 인권을 위한 애써왔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가 주도하는 내란에 휘말려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나라 바깥에서 지금도 아이티 공화국이 살 길이 무엇인지, 가난하지만 참된 신뢰가 존속하고, 그만큼 인간애가 회복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총 아홉 통의 편지가 담겨 있다. 물론 아이티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쓴 글이지만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에 휘둘린 채 굽신거리며 사는 나라들, 비록 가난하지만 참된 인간애를 회복하려는 세계 모든 나라와 사람들을 위한 편지기도 하다.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는 이끌 것이라 봅니다.”(93쪽)


사실 아이티가 가난하게 된 것은 오래 세월 식민통치를 해 왔던 프랑스가 주범이요, 현재는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미국주도의 외세자본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프랑스는 그곳의 열대우림을 마구잡이로 벌채하여 유럽에 값비싸게 팔아 넘겼고, 그로 인해 농민들의 소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주도한 정책도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자본과 식량을 원조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모든 힘줄을 끊어 놓았다. 시골 가구의 80%이상이 돼지를 기르며 학자금을 썼는데 그 숨통마저 끊어버렸고, 농업분야의 대출금도 전체의 2%만 쓸 수 있게 했다. 그들이 압력을 가한 식량수입정책으로 아이티의 농업생산성마저도 극심하게 떨어졌고, 학교라는 곳도 오직 돈줄이 있는 자식들이라야 들어가게 해 놓았다.


그런데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에서 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읊조리고 있다. 무엇이 그가 바라보는 희망이란 말인가? 무엇이 그 아이티 공화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적 자본이 아닌 신뢰적 자본에서 찾고 있다. 인간의 머리끝에 돈줄을 매달고 살면 절망하게 되고 자살이 넘쳐나겠지만, 비록 가난하더라도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제 3의 길을 만들어간다면 오히려 참된 인간애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신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도 무턱대고 선진화대열에 끼려고 안달할 게 아니라, 더디 가더라도 국내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주도하는 종속경제에 질질 끌려 다니기보다는 조금은 힘들더라도 진정으로 서로가 신뢰하는 세상, 살맛나는 살가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와는 다른 제 3의 길을 터나가야 하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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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부분이 불꽃이 일어났던 부위입니다. 저 부분에 불꽃이 타올랐을 때 아이가 놀래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도 무지 놀랬으니 막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 권성권
"으-앙, 으-앙"
"왜 그래? 민혁아?"
"여보, 저기 저기, 불꽃이야."
"어디요, 어디?"
"저 스팀 청소기 선 말이야."
"으-앙, 으-앙."

안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가 막내 아이가 소리를 쳤다. 놀라서 지르는 울음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전선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 전선은 스팀 걸레 청소기에 딸려 있는 긴 선이었는데, 그곳에 불이 붙었으니 아이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스팀 걸레로 방을 청소하기 시작한 지는 1년 반이나 되었다. 그것을 사고 난 후에는 방을 닦고 청소하는데 너무나도 편리했다. 그저 전열이 달궈지고 스팀이 올라오면 곧장 방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엎드려서 걸레로 방을 문지르는 것보다 서서 밀고 나가니 그보다 더 편한 방청소도 없었다.

▲ 지금은 불꽃이 수그러들고 모든 게 꺼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누여놓은 상태입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무척 평온해 보이지 않나요?
ⓒ 권성권
그런데 그 청소기의 선을 감는 게 문제였다. 감는 부분은 위대에서부터 아래대까지 두 군데 밖에 없었다. 그것을 청소할 때마다 감고 또 감았으니 그게 탈이 났던 것이다. 늘 되풀이하여 감던 그 부분에서 드디어 합선이 돼 탔던 것이다. 그 지점에서 불꽃으로 타오를 줄이야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불꽃이 순식간에 타오르자 나와 아내는 모든 것을 중단했다. 오로지 아이를 끌어안고 마음을 안정시키기에 급급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가 놀라면 더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불꽃은 얼마 타지 않아 곧바로 멈추었다. 그 까닭에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다시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하루가 지나서였다. 아내는 그 회사에 이런 저런 문의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제품을 만든 회사에서는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알려왔다. 솔직히 나와 아내는 전선만 새 것으로 교체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내왔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엊그제는 택배 회사를 통해 그곳의 신제품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 신제품으로 교체해 준 스팀 청소기입니다. 이전에 쓰던 것과 다른 점은 버튼 하나로 연결된 전선이 안쪽으로 감겨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아래로 감을 일도 그리고 불이 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신제품으로 교체해 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앞으로 프로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권성권
돌이켜 보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다. 셋째 녀석이 잡고 있던 부위에 불꽃이 타오르지 않고 그 옆 부분이 타올라서 다행스러웠고, 그 불꽃이 모든 전선으로 타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스러웠고, 녀석의 마음도 곧바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어서 더욱 다행스러웠다.

더군다나 생각지도 않게 그 회사의 신제품까지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물론 그 회사가 신제품으로 교체해 준 것은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 회사가 지닌 장인정신, 이른바 프로정신은 내 맘에 깊이 새겨질 듯싶다.

그렇듯 우리 아이의 울음소리 하나가 한 회사의 프로정신까지 불러일으키고 또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일은 나의 삶에도 두고두고 깊은 영향력을 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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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 임의진 참수필집
임의진 지음, 이동진 그림 / 이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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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강진의 흙집에서 들려오는 '참 종소리'


"대봉 형님 으름장에 김이 폴폴 나는 돼지머리 누른 고기를 일동 확보해 놓고서야 만 원짜리 지폐를, 칼만 안 들었다 뿐인 노상 강도에게 아까워하며 바쳤다. 기복신앙이 어쩌고 하면서 욕을 퍼붓고 다니는 나인데 교회도 다니지 않는 인호네가 하도 떼를 쓰며 졸라대는 통에 그 날 무사고 기원제의 개회 기도까지 해 주었지 않았던가."

이 글은 남녘 마을 강진에 사는 임의진 목사의 두 번째 참 수필집인 《종소리》(이레·2001)에 실려 있는 '고구마에 동치미'라는 꼭지 중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 임의진은 시인이요, 동화작가요, 민중운동가요, 화가에다, 최근엔 〈산〉이라는 일철스님 헌정음반까지 낸 목사다.

그토록 팔방미인 재주를 지닌 그는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도닦는 도사로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목사라고 해서 교회 안에만 갇혀 지내지도 않고 종교인으로서 금기시할 수 있는 세상사에 대해서도 마음껏 끼어 들고 휘젓고 다니며 옳은 소리만을 곧잘 해 댄다. 그래서 싫지 않는 살 가운 목사이다.

지금 그는 조그마한 종이 세워져 있는 남녘교회에서 고향 동네 사람들과 벗삼아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살아가고 있고 강진 들녘에 작은 텃밭을 일구며 세상사 느릿느릿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엔 교회 앞에 세워져 있는 종의 추가 삭아 부러지는 바람에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던가 보다. 그래서 곧장 철공소 진택씨가 종 추를 구하여 가지고 와서, 종탑에 올라가 새로 갈아 끼우게 돼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예전 서울 살이 할 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들었던 그 종소리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서울 살 때, 고궁의 낙엽이 밟히던 광화문 언저리의 성공회 성당 나무의자에 앉아서 들었던 종소리, 약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가 명동의 성모상 앞에서 비둘기랑 들었던 종소리, 한참 방랑벽에 휘둘려 전국 명산고찰의 숲진 뜨락을 산보하고 다니던 시절 들었던 절 집의 중후한 종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종소리들이다."(p.37, '종지기' 중에서)

농촌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만들었다던 어느 해의 달력에는 그런 달 이름들도 적어 넣고 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재미나고 신나는 달 이름들이 아닌가 싶다.

"1월은 새벽별달(엄마는 새벽밥을 차립니다. 아빠는 새벽별을 보고 일하러 나가십니다)
2월은 고드름달(동네 친구들이랑 처마 밑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고드름을 땄습니다)
3월은 꽃뜨락달(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강아지들이 꽃밭에 나와 재롱을 피웁니다)
4월은 안개숲달(안개가 자욱한 숲에서 큰오빠하고 새언니가 뽀뽀를 했습니다 나는 봤지롱)
5월은 나들이달(이모가 낼모레 동물원 구경을 시켜준다고 그랬습니다. 야호 야호.)
...
12월은 함박눈달(아침 내내 형이랑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p.104, '달이름' 중에서)

그 뿐만이 아니다. 그가 인도하는 예배도 특별한 듯 싶다. 우리 가락 우리 것을 존중하고 높이 세우려는 그런 참다운 의식이 뚜렷해 보였다.

"작년 칠석에는 우리 교회 입당송인 〈직녀에게〉작곡가 박문옥 님을 노래 손님으로, 지금은 북으로 올라가 살고 계시는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특별 손님으로, 관옥 이현주 목사님을 말씀 손님으로 모셨다. 올해 칠석에는 〈이등병의 편지〉 작곡가 김현성 님을 노래 손님으로, 무주에서 농사를 배우며 글을 쓰고 있는 한상봉 이시도르님을 말씀 손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소리로, 멋들어진 춤으로 남도의 벗들은 우리 국악의 멋을 한껏 뽐낼 것이다. 동네 분들도 교회에서 내는 동동주 맛을 보려고 찾아오실 것이다."(p.146, '상사화' 중에서)

아호가 '어깨춤'인 임의진 목사. 그는 자신이 기거하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또 글을 쓰고 있는 집 이름을 '선무당(仙舞堂)'이라고 이름한다. 그런 이름을 붙인 까닭은 아마도 그의 아호에 걸맞게 신선처럼 어깨춤을 추며 살고 싶은 생각에, '착한 무당'(善巫堂)(?)으로 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이름 짓지 않았나 싶다.

"내 흙방 이름을 선무당이라 했던가. 가끔 욕도 할 줄 아는 땡목사요 돌팔이 목사인 나는 사람 잡는 선무당이 아니겠는가. 선무당에 걸맞게 사는 집 당호조차 선무당이니 기가 막힌 이름 궁합이렷다."(p.210, '선무당' 중에서)

남녘 땅 강진의 선무당이란 흙집에 사는 임의진 목사.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해 지길 바라면서 그런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종교를 뛰어넘어 그 상냥한 밀어에
가슴마다 허물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확성기로 고막 터지게 틀어놓은 찬송가 차임벨도 아니고
예배시간을 알리는 교인들만의 종소리도 아니고
일손 놓고 그만 집에 돌아가 밥지어 드시라고 알리는
자상한 종소리,
공사판으로 바쁜 걸음인 일당벌이 인생들을 담고 두 손을 모은
새벽 종소리,
노느라 정신 없던 막내의 흙 묻은 손바닥을 털게 하는
엄마 목소리인 종소리,
논두렁을 걸어오던 주름살 깊은 농부는 좋은 세상을 기도하고
공장을 나온 누나는 고향집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뜨겁고
사랑하는 사이들은 잡고 있던 손을 더욱 세게 쥐겠지
그대 귀에 시방 이 종소리가 들려오는가."(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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