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쯤 전이었던가, '라 비 앙 로즈'를 매우 감명깊게 보고 나오면서 그 기분에 귀를 뚫었다. 뚫을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안 아팠는데 이게 귀뚫이귀고리에서 링귀고리로 바꾸고 나서 뭔가 잘못되기 시작됐다. 아니, 사실 링귀고리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감다가 잡아당긴 나의 문제였겠지만, 아무튼 불행의 시작은 그때 즈음이었다. 그때부터 귀가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최근에는 며칠째 약을 써도 안 듣도록 부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부은 부위가 귀 뚫은 곳 주위에서 귀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에 살이 찌나,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애당초 몸에 살이 빠지고 있는데 귀에는 살이 찌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다.

  그래서 오늘 밤, 방금, 결단을 내렸다. 귀고리를 빼기로!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귀 주위에 덕지덕지 굳어있는 진물을 씻어내고, 귀고리를 뺐다. 빼는 과정의 이야기는 너무 처절하고 가여워서 도저히 적어줄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적기로 한다. 단 간략하게. 처음에 계속 빼려고 시도를 했는데 안 빠졌다. 손톱이 길어서 고리를 잡은 부분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부어서 접합부분이 귀에 파묻힌 탓도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해준 알록달록한 매니큐어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손톱을 깎았다. 그리고 수 차례 시도 끝에 오른쪽 귀고리를 빼는 데 성공, 그 다음으로 왼쪽 귀고리도 가까스로 빼 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놓으면 그렇게 처절하고 가엽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겁많은 내가 내지르는 욕설 및 귀고리를 향한 회유, 의미를 알 수 없는 구호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실로 안쓰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음을 조금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귀고리를 뺀 나는 이제 아마도 평생 귀는 못 뚫지 싶다. 귀고리를 하면 1.5배 예뻐보인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리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약물 복용까지 하면서도 지키고 싶었건만. 게다가 귀고리 쇼핑이 너무 하고 싶었건만! 하필이면 요즘 금값이 올라서 내가 원하는 쇼핑을 해 보지도 못했는데, 꿈에 근접해보지도 못한 채 귀고리를 뺐다. 하긴 쇼핑을 했었다면 더 아까웠겠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왜 나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어서 싸구려 귀고리를 막 사대지 못했단 말인가. 그거라도 해봤으면 한이라도 적을 것을... 그나저나 귀고리가 빠지니 귀가 정말 허전해 보인다. 1.5배의 효과가 이렇게 컸나- 내일 약속 있는데 조금 슬프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서 앞머리라도 자르러 가야겠다.
 

추신. 이제부터 나는 귀 뚫은 여자들을 보면 거수경례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로 했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이분들의 노고를 따라잡으려면 나는 15cm 하이힐에 도전하는 것말고는 다른 수가 없겠다. 그러면 귀도 뚫고 15cm 하이힐도 신은 여자는? 이건 이미 인간을 초월한 듯 싶다... (근데 15cm 하이힐이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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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01-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독해주면 가라앉을텐데.
저도 처음에 귀뚫었을 때는 귀에 염증생겨서 소독하고 그랬더니 다시 괜찮아졌어요.
한 번 고생하셔서 귀걸이는 꼴보기도 싫으시겠지만 ㅎㅎ

10센치까지는 본 것 같은데 15센치는 아직 못 봤어요 ㅎ

明卵 2008-01-29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안 심할 땐 괜찮아졌는데-
이번엔 건 너무 오래가면서 귀 전체가 다 부어가지고요ㅜ_ㅜ
무서워서 빼버렸네요.
15cm 없으면 더 좋아요. 그럼 제가 그들의 노고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 되겠죠 뭐.

울보 2008-01-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명란님 귀뚫고 그래도 한달이상은 그냥 뚫은 귀걸이로 안이쁘더라도 견디셔야 하는데
저는 석달을 가만 두라고 해서 정말 말 잘듣고 석달 그 귀걸이로 버티어서 지금은 몇달을 안하다가 해도 막히지 않고 그냥 그런데,,

明卵 2008-01-29 10:06   좋아요 0 | URL
끄헉... 왜 제가 뚫은 곳의 직원은 5일 동안 하고 있으라고 했을까요... OTL
그리고 제 동생이 귀뚫이귀걸이가 귀에 박히는 바람에 쨌거든요-
무서워서 얼른 그걸 빼고 링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ㅠ_ㅠ
귀뚫이귀고리도 예뻤는데... 흑.

그럼 용기를 내서 이 상처가 다 아물면 다시 뚫어볼까요ㅎㅅㅎ?
저도 이번엔 석달 그대로 두고-
역시 1.5배를 포기할 수가 없다구요. 하하하

털짱 2008-02-1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진짜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신선한 대학 새내기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겠군요.

지나고나니 좋았다지만, 스무살은 왜 그리 힘들고 고단한 순간들로 점철되었는지....

명란님의 대학생활에 열정과 낭만이 충만되길 기원합니다. 화이팅! ^0^

털짱 2008-05-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를 뚫지 않은 일인으로서 명란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그냥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