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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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권까지 보고 쓴다.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일본의 작가들이 '전문직'을 어느 선까지 소재로 관찰하고 있는지 경탄하게 된다. 우리 웹툰에서 포털의 만화 편집자(정확한 업계 용어는 모르겠다)를 하나의 캐릭터화해서 등장시키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하나의 만화책이 작가의 손에서 시작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처럼 상세히 다룬 작품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출판 산업이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규모라는 점도 관계가 있을 터다(물론 작품에서는 버블과 버블 이후 출판산업의 변화 양상도 보여준다) 말하자면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의 만화 버전이라고 부를 만하다(좋은 의미로)

 

작품을 선택한 이유의 8할은 제목 때문이었다. 중쇄를 찍자!라. 얼마나 솔직하고, 얼마나 원초적인 제목인가. '돈을 벌자!'라든가, '작가를 키우자!'라든가. '잡지를 팔자!'라든가, 결국 이런 표현들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디테일을 살린 적절한 제목은 나라도 구한다...(?) 그 디테일을 느낀 독자들이라면, 이 만화를 싫어할 리가 없다.

 

다만 - 어차피 평가에는 취향이 반영되지만 이 부분은 더욱 완전한 개인의 취향의 영역인데 - 그림체와 관련해, 구매 당시에는 책 표지에 있는 카툰식의 그림을 예상했는데 페이지를 펼치니 옛 순정만화 느낌의 복잡한 그림체여서 다소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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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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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작가와 학자의 오래된 과제다. 정유정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는 대단하며 뇌과학과 도덕의 상관관계에 대한 학계의 연구를 성실히 공부한 노력도 보인다. '7년의 밤'이나 '28'을 통해서 이미 증명한 가독성과 장르적 이야기에 무게를 더하는 특유의 문체는 여전하다.


하지만 정유정이 죄악을 다루면서 내면에만 침잠할 때,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유리된다. 이야기는 접착력를 잃고 개별적으로 부유하며, 그나마 광장도 아닌 좁은 주택 안에서 방황한다. 뇌의 결함과 가족의 억압이 연쇄살인마를 낳있다는 등식은 아무런 멋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유정은 정말 이런 식으로 범죄가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의 시도는 훌륭했으나 결과물은 정성스럽게 만든 편의점 도시락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미 도스토예프스키가 200년 전 쯤 '죄와 벌'을 통해 성공한 도전을 신춘문예 스타일로 반복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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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권하는 사회 - 신용 불량자 문제를 통해서 본 신용의 상품화와 사회적 재난 아연 민주주의 총서 15
김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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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으로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단 한 번 갚기 버거운 빚을 진 사람이 카드 돌려막기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과정에서 얼마나 잔혹한 방식으로 합리로 치장된 착취의 희생양이 되는지 이 책은 아주 잘 보여준다. 저자가 다루는 시기를 IMF 구제금융 직후부터 2천 년대 초반으로 보면 대략 10년 전 쯤이 되는데, 강산이 한 번 바뀔 때가 됐으니, 현재를 이루는 과거를 되새기고, 피로 쓰인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매우 적절한 시점의 발간인 것 같다. 내가 워낙 과문해서인지 신용카드나 신용불량자 문제를 다룬 기사나 잡지의 특집은 많이 접했지만 이 정도의 짜임새와 데이터를 갖춘 책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10년 뒤에도, 20년 전을 돌아보는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분석이 필요한 많은 세세한 결을 지닌 책이지만 큰 줄기만 대략 이해한다고 할 때, 담긴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원인이 후반에 등장하는 책의 순서를 재구성하면, IMF 직후 경제 회복의 임무를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김대중 정부는 책임성이 부여되지 않는 허약한 한국 정당체계의 토대에서 친서민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기보다 재벌 친화적인 신용카드 남발을 통해 경기 부흥 및 세수 확대를 꾀한다. 그래서 실시된 것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 규제 개혁이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액이 늘고, 재벌의 참여가 독려되며, 이자율은 제어되지 않는다. (일부 방탕한 소비생활의 장본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자신이 업을 복리 이율의 무게조차 제대로 모른 채 구조조정과 경기침체에 몰려 `카드질'에 빠져들고, 결과는 경제활동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지금 이 순간 나의 과소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든가, `부자되세요' 라는 광고 카피를 보며 무엇인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얼마간의 명확한 대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책은 세상의 어떤 주도적인 현상을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전통적인 의미의 잘 쓰인 사회과학 서적의 미덕을 뚜렷하게 갖추고 있다. 한국 사회는 재벌이 만든 경제 위기를 이토록 휘황찬란한 소비문화로 돌파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빼앗았다. 

다만 본문에서 수차례 인용되고, 저자의 뒷 글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이름인, 최장집 현 고려대 명예교수의 그늘에서 책 전체가 벗어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눈앞의 현실의 기반이 된 과거를 만든 정책적 근거를 다루고 그 정책을 낳은 원인까지 다루려면 - 과거를 다루더라도 - 적어도 새롭거나, 혹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할 터인데, 논의의 결론은 돌고 돌아 최장집 교수가 그토록 주구장창 십 수 년 전부터 외쳐온 정당정치의 허약함에 머문다. 그 전개는 내가 최 교수를 존경하는 만큼 흠 잡을 데는 없지만, 방금 나온 책의 일부로서는 게으르거나 지나치게 무난하다. 아울러 교양서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수치와 딱딱한 표현이 많고, 학술서적으로 보기에는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는 점, 공부가 부족한 학생의 보고서처럼 같은 이야기를 중언부언 반복한다는 점은 책을 아끼는 만큼 지적할 수밖에 없는 단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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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엄벌하다
로익 바캉 지음, 류재화 옮김 / 시사IN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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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장하는 바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정책 확대는 고용 불안정과 질 낮은 일자리의 증가를 유발하고 필연적으로 도시 빈민의 증가로 이어진다. 사회 구성원의 연결 고리가 약화하고 불안이 증대되면 국가는 외부의 새로운 적을 만들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게토의 빈민이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늘어나는 빈민에 복지가 아닌 경찰력의 강화로 대응하고 자연스럽게 수감자의 다수는 빈민으로 채워진다. 이 책의 원제는 ‘빈곤의 감옥’인데, 여기에서 ‘감옥’은 은유가 아니다. 
 

“채무국에 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국제기금 임대인이 ‘구조조정’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휘둘러 생긴 끔찍한 결과들을 보라! 긴축예산, 감세, 공공지출 삭감, 민영화, 자본의 특권 강화, 금융 및 외환 시장 개방, 고용 유연화, 사회보장비 삭감. 그러니 이제 이런 정책들의 논리적 결과물인 사회적 소외, 불안을 만들어내는 요소들에 대한 강력한 형벌 조치를 총괄할 때가 된 것이다”(91p)
 

책 사이사이에 워낙 다양한 유럽 국가의 사례가 나오면서 조금 난삽하기도 하고, 유럽을 일종의 이상향으로 사유해온 내게는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제기하고자 한 물음은 간단하면서 매우 근본적이다. 그것은 바로‘어떤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다.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며 국가에 관리당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할만한 이웃으로 여기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간을 믿으며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믿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유럽식 사회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을 공격적으로 재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가 서민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문명과 문화의 유형이 무엇이냐에 달려있을 것이다(175p)"
 

저자가 격렬하게 비판하는 지점들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조금 헷갈렸다. 워낙 다양한 요소들이 엮여 있고, 그 요소들마다 상대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가 쉽지 않았다. 예컨대 최근 한국 사회에는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인구 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이공으로 말미암은 자아도취 등을 이유로 최근 한풀 꺾이지 않았나.(물론 노동계층은 여전히 힘겹고, 유럽 수준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단지 그들이 강고한 조직화를 이루기에 세력이 작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시내 중심가에만 수 천 명이 있는 노숙자들에 비추어 봤을 때, ‘배제’가 분명한 문제이기는 해도, 그들에게 형법상의 처벌이 최근 특히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물론 배제가 더 심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처럼 책의 내용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직접 대응할지는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분명한 경향성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서 반복되는 흉악 범죄의 증가와 함께 증대되는 경찰력은 일반적으로 중범죄보다 경범죄의 관리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골목골목마다 늘어나는 폐쇄회로TV는 복지시스템의 약화와 궤를 같이한다. 현행법상 무전취식 등의 경범죄를 저지른(당연히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을) 빈민이 대형 비리를 저지른 인텔리 혹은 유지들보다 구속될 확률은 훨씬 더 높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비유를 과감히 들자면) 장안동의 집창촌은 걸핏하면 언론의 십자포화와 경찰의 일제단속의 대상이 되지만 강남의 안마방과 룸사롱은 국가권력에게도 일종의 성역이다. 점차 공권력이 향하는 지점이 복지가 아닌 통제임은 분명하다.
 

더불어 지금 당장 고민해볼만한 몇 가지 화두를 책을 통해 얻은 것도 큰 소득이다. 수감자를 대상으로 ‘최저소득보조비’를 지원하는 것은 사회악에 대한 어이없는 재정낭비인가 아니면 재범률을 낮추는 궁극적인 방안인가. 부쩍 정치권에서 주장되기 시작한 워크페어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바람직한 대안인가 아니면 웰페어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퇴보인가. 특히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어린이 대상의 성범죄가 비정상적 괴물들의 병리적 행위의 결과가 아닌 대부분의 성범죄가 가정 내부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감추는 정부와 미디어의 술책일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은, 오랫동안 머리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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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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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책이다. 어려운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쉽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강의에 기반을 둬서인지 대체로 술술 넘어가면서도, 전개에 필요한 내용은 큰 누락이 없이 제대로 전달한다. 한국과는 정치사회적 지형이 상이한 미국의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개별성에 매몰되지 않고 근본적인 가치판단의 층위를 적절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열풍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좋은 책이지만, 압도적으로 훌륭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례와 학술적 해석이 때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덜컹거린다. 질문을 던지는 선택지는 재밌으나 이에 대한 대답은 각 판단의 정당성을 살짝 짚어주는 수준에서 정리될 뿐 역사나 철학적 차원의 심도 있는 대답이 도출되지 않는다. 질문이 진중하고 대답이 가벼우면 ‘훌륭한 문제제기’라고 부르고, 그와 반대면 ‘뜻밖의 성찰’이 될 수 있겠다. 또 두개가 모두 진중하면 우리는 역작이라 칭하는데, 이 책은 질문과 대답이 모두 가벼운 편이다. 그래서 현란하되 진중하지 못한 인기 강좌를 듣고 난 것처럼, 자극은 받았으나 체계적으로 남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여기에 분명 주관적일 비판을 한줄 더 붙이자면, 이 책은 결정적으로 내가 특히 기대했던 ‘분배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책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손에 잡힌 배경이다. 열풍이 끝나가는 마당에 이를 자세히 풀어내는 것은 때늦은 반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아주 간단히 정리해보면, 사람들이 정의의 부재를 분명 체감하고 있다는 것. 그 부재의 전후에는 한쪽 날개가 꺾인 채 양 극단이 목소리를 높여온 한국사회의 특수성이 자리한다는 것. 그럼에도 그 상실감을 채워줄만한 변변한 저작 한권이 그동안 없었다는 것. 우리는 아직 권위와 능력, 그리고 대중에 대한 존경을 고루 갖춘 학자 또는 학자의 작업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결국 다가오는 것은, 아쉬움이다.   

이틀 전,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필자가 모여서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책을 냈다. 단순히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닌 한계를 메우면서도 한국사회에 적합성을 지닌 대응물이었으면 좋겠는데 첫 단락 표제에 ‘공정사회’가 들어가는 것을 보니 시의성에만 매몰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필자들을 대체로 좋아해서 분명 읽어볼만한 책일 것 같고, 읽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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