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여기에서의 '질'은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의미하는데, 이 책은 이러한 시대인식에서부터 출발한 민주주의자로서의 저자가, 그러한 저하의 이유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담은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이 놓여있는 공간은 각자가 견지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민주주의자로서의 저자가 파악하는 오늘 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즉 이데올로기적 양극화와 권위주의적 산업화, 그리고 87년 민주화 운동의 보수적 종결을 경험하며 성립된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기존의 냉전 반공주의의 헤게모니와 보수독점의 정치구조에 그저 얹혀 있는 외피에 불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 계층의 갈등이 정상적인 형태로 정당에 의해 대리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민중의 발언권이 축소되고 삶의 수준이 저하되는 것은 그것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또한 이러한 토대 위에서, 민주화 이후 연속적으로 집권한 비주류 정부는, 자신들을 지지한 세력과의 연계 고리를 유지하기보다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추구함으로써, 집권 후기 역설적으로 권위주의 정부보다도 더 관료에 포획된 무력한 정부가 되었고, 그들이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세계화로 인해 재벌의 경제적 집중은 심화되는 가운데 노동은 더욱 철저히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시민사회는 그 규모는 성장하였지만, 그것과 동시에 내부의 보수적 헤게모니가 강화됨으로써, 오히려 한국 사회의 민주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에게 있어서 바람직한 문제의 해결방식은, 대중의 갈등을 대리하지 못하는 보수독점의 협애한 정당체제로 표상되는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변화시켜, 사회에 상존하는 갈등이 정치체제 내에서 해소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저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비롯하여 책 말미에 몇 가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깊이의 측면에서나, 대안이 전체 내용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측면에서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있지 못하다. (초판에서 그러했듯)사실상 ‘기원과 (한때 그가 기대했던 현재 노무현 정부의)위기’까지가 저자가 이번 개정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결론과 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쓰이고 있는 중이다. ‘기원과 위기’ 이후 이제 할 말은 해야겠다는 저자가 참여하는 몇몇의 세미나에서 그가 발표한 글들이 아마도 그것의 내용이 될 터이다. 작년 10월 21일에 있었던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 역사와 좌표’ 심포지엄과 올해 1월 12일에 있었던 '민주주의, 여전히 희망의 언어인가? : 한국사회 위기 진단과 희망 찾기' 포럼에서 발표된 각각의 그의 글은 이번 개정판이 담아내지 못한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을 담고 있다.


우선 저자는 과거 한국 사회 민주화의 커다란 이념적 기반이었던 NLPD론을 다시 되살릴 것을 주문한다. 이것은 지금껏 그가 보여 온 지난 민주화세력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감안하면 얼마간 뜻밖인데, 사실상 저자는 과거로부터의 연장선상에서 NLPD론의 회복을 주장하기보다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국사회가 추구해야할 두 가지 현실적인(동시에 어느 정도 당위적인) 가치로서 통합적인 NLPD론을 재정립 하려는 듯 하다. 분열되어 PD적 문제의식이 약화된 NL의 현실 상황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는 “현실적 사회 변혁의 방안으로 적합한 것이 ‘민주주의’인가 ‘운동’인가?” 라는 얼마간 도발적인 이분법적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으로 후자를 비판(혹은 걱정?)하면서 민주주의를 더욱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면모는 그의 최대의 장점임과 동시에 주류 정당정치의 공간을 중심적으로 사유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서의 그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지나오는 동안, 그의 이상(혹은 학자로서의 기대감)과 그가 지지하는 현실은 끊임없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려 왔다.


하지만, ‘한계’를 지적하기에 그의 논의는 그것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저자의 말처럼 ‘민주화로의 전환의 과정에서 운동의 역사적 기초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한국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냉전 반공주의와 보수적 산업화를 주도했던 권위주의가 해체된 민주화이후의 시기에 소멸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의 희망적인 대안이 노모씨나, 황모씨가 될 수 없으며, 또한 민중들의 피로 유지되는 연극이라면, 적어도 규칙도 원칙도 없는 저열한 개그는 아닐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김규항의 사사로운 언어를 빌려서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XX, 학자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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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1-1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최장집 선생이 말하는 바가, 대략 정리가 안 되었는데 '위험하면서도 의미있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님의 리뷰를 보고 아우트라인이 잡히네요. 일전에 <민중의 세계사>를 소개해주실 때부터 늘 먼저 책을 읽으시는구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happyant 2006-01-1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먼저는 무슨...^^ 그저 읽어봐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후마니타스 2007-06-1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입니다.
도서에 관한 리뷰를 출판사 홈페이지로 담아갑니다.
미리 허락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언짢으시다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세요.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umanitasbook.co.kr
입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