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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한참을 - 며칠간을 - 고민했습니다. 어떠한 언어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습관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요. 그리하여 간신히, 매우 사적인 언어들이나, 나름대로 공적인 단어들, 혹은 억지로 학술적인 어휘들로 이루어진 몇 문장을 만들어 보았지만,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몇 페이지(!) 분량의 파편적인 문장들 뿐, 생각들은 잘 엮이지 않았고, 설혹 엮였다 하더라도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면 위악적으로 보이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정상이되, 단지 저의 비평적 지식과 체계적인 사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분명, 김모교수의 멋들어진 비평 하나가, 떡하니, 소화 안 되는 설날 떡처럼 담겨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쓸쓸했고, 슬펐으며,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나 자신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세상이라 생각했고, 그 감정이 소중하며, 그것을 느끼게 해준 이 작품이 무척이나 고맙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나'이며, 내가 '장모씨'이며, 장모씨가 '그'이기 때문이었고, 또한 세상은 여전히 '즐거운 그의 방'처럼 어둡고, 외롭고, 모두를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문득, 혼란스러운 작품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혼란스러운 인간이 보았으니, 무엇인가 정리된 감상이 생산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거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그'와 짧은 동거를 하였지만, 저는 그들과 앞으로 오랜 동거를 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만약, 제가 이 작품의 존재를 며칠 뒤에 잊어버리더라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 모두를, 그냥 안전하고 완전하게, 타자를 망각한 채로, 살아가도록 놔두지를 않으니까 말입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는 아주 개인적인 심층의 이야기부터, 매우 거친 사회의 표면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가능성의 흔적들까지, 세상을 온전히 담고 있는, 그리고 그 그림들의 여백에 작가의 진심이 담겨져 있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쉽지 않은 일을, 가능케 하는 작품이라고, 그러하다고, 적어도 좁은 제 방 안의 어떠한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