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 박 형 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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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2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4-09-1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라는, 안도현 시인이 엮은 시집에서 처음 봤습니다. 시인은 전라북도 변산 끄트머리 모항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 산다는 군요. 그 '모항'이라는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하게 잘 퍼갑니다.

느티나무 2004-09-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변산 모항에서 농사지으시는 분이시죠. 저는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얼핏 보고, 군대 휴가 나왔다가 사들고 들어간 시집이 '바구니속 감자 싹은...'이었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랑 중에 저런 사랑도 있겠구나 싶었는데요... 얼마 전에 보니, 참고서에도 문제로 나오더군요. 세상 참 많이 변했지요 ^^
 

- 단막극 [행복한 나무]의 시놉시스

* 세상의 모든 '배경 같은 존재'에도 그 나름의 가치와 소중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따뜻한 드라마

   여기,  '배혜경'이라는 한 학생이 있다. 공부를 그리 잘 하는 것도, 외모가 뛰어난 것도, 재치나 개인기가 특출난 것도 아닌, 그렇다고 크게 엇나가거나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닌, 그저 교실의 '배경' 같은 아이.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혜경에겐 없다. 구성원 모두에게 그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학교, 그리고 교실에서 혜경은 그저 무기력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다.

   이런 혜경이, 연극을 만난다.

   내심 마음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선뜻 나서지 못했던 혜경은, 한 친구에 의해 우연히 연극반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는 것, 오디션에서부터 시작된 혜경의 연극반 활동, 고되고 외로운 스텝부에서 무대에 서기까지의 온갖 갈등과 노력. 결국 마지막, 혜경이 무대에 선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어느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확인하게 된다.


행복한 나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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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9-1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주인장 배혜경님?

느티나무 2004-09-1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니요. 극 중 주인공 이름이 배혜경입니다. 배우들이 의도적으로 빨리 발음해서 '배~경'이라고 부르더군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배경 같은 존재라서 그런가 봅니다.

해콩 2004-09-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 그렇게 깊은 뜻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저는 그저 몇년 전 스쳐갔던 어떤 아이, 학교 다닐때 비슷한 이름의 반 아이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만... 다른 사람의 '배경'같은 존재라... 문득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로를 드러내주는 배경! ^^

느티나무 2004-09-1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에겐 그렇게 들렸어요. 배경 같은 존재인 아이들이 많지요.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짧은 반전은 즐거우셨나요? 내원사 잘 있던가요? 제가 찍었던 기왓장도 비를 맞아 젖고 있겠지요?

해콩 2004-09-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예민한 감수성.. 안준철 샘도 그러시던데 가끔 보면 샘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반전은 무지 즐거웠지요. 제가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빼구요. (말 많은 뒤에는 늘 후회해요.) 내원사 계곡은 아직(!) 잘 있는 것 확인했는데요, 절집에는 못 들어갔어요. 현옥샘이 쓴(^^) 행운의 그 기왓장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좀 헤매서 시간이 좀 늦어버렸거든요. 내원사 계곡은 갈 때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계곡이예요. 오늘은 비 온 뒤라.. 더! 가을이 깊어지면 모임 샘들이랑 소풍 가기로 우리끼리 결정했어요. ^^ 찬성하시죠? 이번에는 제가 낙서한 기왓장을 제공해드릴께요.

느티나무 2004-09-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민한 척해도 얼마나 무딘 사람인데요 ^^;; 내원사 다녀오셨다니 지난 겨울에 다녀온 내원사 사진이 기억나서 찾아보았습니다. 제 서재에서 보셨을 수도 있는데, 제가 내원사에 갔던 그날도 비가 내렸답니다. 그래서 역시 그 시인의 시가 붙여져 있네요. 주소는 여기입니다. (이번에 뽑힌 사진의 출처도 따지고 보면 이곳이네요..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din.co.kr/foryou/mypaper/11102
 

   학교 다닐 때 나는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적었다. 중학교 때는 그래도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많이 쓰신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박미정선생님이셨는데, 담당 과목은 국사. 특별히 나를 많이 챙겨 주신 것 같다. 그 때부터 내 꿈은 <국사선생님>. 중학교 때는 제법 공부도 잘 해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많았다.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나를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그 선생님들은 알고 계셨을까?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 나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그 몇 명 사이에서만 성적보다는 제법 '똑똑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로 통했다. 수업에서는 아주 조용히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그러니 내 이름이 불릴 일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내 이름을 물어본 선생님도 오래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과 모의고사를 칠 때 줄곧 역사교육과를 써 낸 덕에 겨우 역사선생님만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국사선생님께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우리집에 있는 책인데, 그 유명한 '바로 보는 우리 역사, 일명 '바보사'였다.)

   나는 몇 번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당연히 나는 '39번'(고등학교 3학년 때 학번이 30439였다.)이 아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이 부드러운 눈길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대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억이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나름대로 아주 재미있는 학교 생활이었지만, -그리고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아주 많았지만- 선생님들과 관련해서는 특별할 무엇이 없었다. 한 마디로 나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이셨기에 존경은 했지만 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내 학창 시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도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한다. 아마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아이들도 나처럼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정말 평범한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시절 나처럼 말이다. 이럴 경우에는 정말 부끄러운데, 이름을 잘 아는 아이와 이름을 모르는 짝지가 같이 떠들고 있을 때-물론,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이 떠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OOO! 거기는 왜 그렇게 시끄럽습니까?라며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을 지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도 굳이 변명하자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약 380명)의 80%정도는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부를 수 있다.(이것도 사실 문제다. 아이들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선생님조차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지 못할 때의 비애는 더욱 크지 않을까? 나머지 20%의 비애는 더욱 크지 않을까? 작년에 어느 반에서 이름을 다 안다고 했다가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불렀는데, 딱 한 명!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학생에게 정말 미안했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짓은 안 하려고 한다.)

   이 정도까지라도 이름을 외우게 된 방법은 이렇다. 이번처럼 학교 시험기간이나 모의고사 기간에는 평소 수업에 들어가는 반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준 다음에는 보통 멍청하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을 겸해서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쳐다 본다. 그러면서 이름을 떠올려 보고, 떠오르지 않으면 출석부를 보면서 이름을 외운다. 평소에 이름을 알고 있는 경우도 제법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이번에도 시험기간이 3일이었는데, 3일내내 아이들 이름을 제법 많이 외웠다. 어느 반은 전부 다 외운 경우도 있다.

   보통 이름을 부르면 "어? 샘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 이번에는 이름이 확실히 기억되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아실 것이다. 이름을 불러줄 때와 학번이나 인칭대명사-주로 '너'-로 부를 때 학생들의 반응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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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그 많은 학생들의 반이나 이름을 기억하시는 거 보면 놀라곤 했었는데 그것도 다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죠? 역시 선생님은 기억력이 좋으셔야 해요! 열심히 외우세요~~ ^^
 

꽃들 8

- 문부식
 
나는 이제 꽃을 던지려 한다
항쟁이 끝나고
이제는 거친 바람만 불어가는 쓸쓸한
빈 거리에
쥐어줄 손도 없는 유인물 몇 장씩
이리저리 쓸려가는 고독한 공장에
나는 이제 돌이 아닌 꽃을
던지려 한다
항쟁이 끝나고
이제는 식어 버린 그대들의 가슴에
힘없이 처져 버린 그대들의 어깨 위에
너무 쉽게 희망하고
너무 빨리 절망하는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 미련은 남아
아직도 상기된 그대들의 얼굴 위에
나는 이제 조롱이 아닌
꽃을 던지고 싶다
나는 이제 꽃을 던지려 한다
항쟁이 끝나고 항쟁을 뺏겨버린
그대들의 도시에
그대들의 공장에 그대들의 농촌에
그대들의 빈 식탁 위에
술잔 위에
나는 이제 눈물이 아닌
꽃을 던지려 한다
나는 이제 꽃을 던지려 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을 향해
싸워도 싸워도 걷히지 않는
어둠을 향해
무너지지 않는 담벼락을 향해
역사의 썰물과 밀물을 향해
그 속에 깊어진 그대들의 가슴을 향해
지면서 이겨온 그대들 모두를 향해
조국아 너를 향해
나는 이제 절규가 아닌 통곡이 아닌
나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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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9-0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글이 무서운 거 아닐까? 그가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는 것. 나를 던지고 싶다고 했던 시인의 지금 속내가 궁금하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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