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나는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적었다. 중학교 때는 그래도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많이 쓰신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박미정선생님이셨는데, 담당 과목은 국사. 특별히 나를 많이 챙겨 주신 것 같다. 그 때부터 내 꿈은 <국사선생님>. 중학교 때는 제법 공부도 잘 해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많았다.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나를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그 선생님들은 알고 계셨을까?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 나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그 몇 명 사이에서만 성적보다는 제법 '똑똑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로 통했다. 수업에서는 아주 조용히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그러니 내 이름이 불릴 일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내 이름을 물어본 선생님도 오래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과 모의고사를 칠 때 줄곧 역사교육과를 써 낸 덕에 겨우 역사선생님만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국사선생님께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우리집에 있는 책인데, 그 유명한 '바로 보는 우리 역사, 일명 '바보사'였다.)
나는 몇 번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당연히 나는 '39번'(고등학교 3학년 때 학번이 30439였다.)이 아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이 부드러운 눈길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대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억이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나름대로 아주 재미있는 학교 생활이었지만, -그리고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아주 많았지만- 선생님들과 관련해서는 특별할 무엇이 없었다. 한 마디로 나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이셨기에 존경은 했지만 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내 학창 시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도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한다. 아마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아이들도 나처럼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정말 평범한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시절 나처럼 말이다. 이럴 경우에는 정말 부끄러운데, 이름을 잘 아는 아이와 이름을 모르는 짝지가 같이 떠들고 있을 때-물론,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이 떠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OOO! 거기는 왜 그렇게 시끄럽습니까?라며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을 지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도 굳이 변명하자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약 380명)의 80%정도는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부를 수 있다.(이것도 사실 문제다. 아이들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선생님조차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지 못할 때의 비애는 더욱 크지 않을까? 나머지 20%의 비애는 더욱 크지 않을까? 작년에 어느 반에서 이름을 다 안다고 했다가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불렀는데, 딱 한 명!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학생에게 정말 미안했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짓은 안 하려고 한다.)
이 정도까지라도 이름을 외우게 된 방법은 이렇다. 이번처럼 학교 시험기간이나 모의고사 기간에는 평소 수업에 들어가는 반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준 다음에는 보통 멍청하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을 겸해서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쳐다 본다. 그러면서 이름을 떠올려 보고, 떠오르지 않으면 출석부를 보면서 이름을 외운다. 평소에 이름을 알고 있는 경우도 제법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이번에도 시험기간이 3일이었는데, 3일내내 아이들 이름을 제법 많이 외웠다. 어느 반은 전부 다 외운 경우도 있다.
보통 이름을 부르면 "어? 샘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 이번에는 이름이 확실히 기억되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아실 것이다. 이름을 불러줄 때와 학번이나 인칭대명사-주로 '너'-로 부를 때 학생들의 반응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