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를 아직 안 적어 두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분명히 이 서재의 어딘가에 적어 두었는데...지금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요.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살고 싶습니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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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1-22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제가 참 좋아하는 나무랍니다.
이 시 참 좋지요? 쓸쓸하면서도 외롭고, 높고...

느티나무 2006-01-22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참 좋아요. 언제나 제 책상에 유리 밑에 있어요. ^^ 학교를 옮겨 다닐 때마다 꼭 챙겨서 가지고 다니구요. 정말 답답한 느낌이 들었을 때, 이 시를 읽으면서 견뎠지요.
 

'아이들과 읽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엘봄, 세종서적)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

 첫 번째 화요일

  • 내가 고통을 당하고 보니, 이전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야.
  •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사랑이야 말로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

두 번째 화요일

  •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 하루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시간을 두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산다면.

세 번째 화요일

  • 신비롭게도 죽음에 당면해서 생각이 투명해지는 것.

네 번째 화요일

  •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어.
  • 죽음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 보자구. 죽으리란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수 있네. 그게 더 나아.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 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아차린다네. 그것은 시간이 창틀을 지나치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지. 내 시간이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처음으로 자연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에 마음이 끌린다네.

다섯 번째 화요일

  •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여섯 번째 화요일

  •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라,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 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들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껴라.
  •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일곱 번째 화요일

  •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네.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던 그 시절로 말일세.
  • (나이 드는 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여덟 번째 화요일

  •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 같은 것을 대신할 수 없는데....
  • (만족은)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아홉 번째 화요일

  •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법이지.
  •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열 번째 화요일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열한 번째 화요일

  • 대개 사람들은 위협당할 때 형편없어지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사람을 위협하거든.
  • 사람은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 자기만 생각하기 시작하네.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 아이 때와 죽어갈 때 외에도, 즉 그 중간 시기에도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열두 번째 화요일

  •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 화해하게.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열세 번째 화요일

  •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 -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것.
  •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 자기 상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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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분히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는 일이 시시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요즘인데, 무엇인가를 읽고 생각하고 싶다고 나서 준 여러분들은 참 고맙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이 카페는 앞으로 1년 동안 우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공간입니다.

   요즘, 여러 인터넷 공간들이 불꽃처럼 타오른 열기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열기는 사라지고 재만 남은 모습들을 봅니다. 한 때의 불꽃 같은 열정도 소중하지만, 그것보다는 은근히 오래가는 그런 사랑과 정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밭 나래, 우주인 여러분,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동안은 우리의 걸음을 멈추지 맙시다!


  • 나래 - 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 써레와 비슷하나 아래에 발 대신에 널판이나 철판을 가로 대어 자갈이나 흙 따위를 밀어내는 데 쓴다.
  • 우주인 - '우리가 주인이다'의 줄임말.

   함께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아이들과 카페를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모임은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이라 모든 것이 엉성하고 볼품이 없다. 더구나 앞으로 제대로 잘 자라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시작은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지만,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제법 끈기가 있어서 시작한 일은 (보통)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엉성하고 무모해도 완주하는 것,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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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오후는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다. (책은 미리 읽어와야 한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모임이다. 첫날의 어색함을 점차 벗어나 이야기도 조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찾아온 아이들이라 대체로 의욕과 흥미(?)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하고 싶다면 아마도 끝(?)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제법 끈기는 있는 편이다.)

 

이번에 읽고 이야기해 볼 책은 '백석시전집'이다.

나도 일주일 전부터 오늘 늦은 밤까지 백석시전집을 다시 읽었다.

이번 주 숙제로 낭독하고 싶은 시 한 편 써 오기, 시를 풀어서 산문으로 바꾼 글 한 편 써오기를 냈다.

(낭독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은 KBS에서 하는 '낭독의 발견' 이라는 프로그램을 참고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에 해야할 숙제가 만만치 않은 편이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내가 낭독할 시 한 편을 골랐다.

시를 이야기로 바꿔서 설명하고 싶은 시도 한 편 골랐다.

 

나는 백석의 시는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이 짠해진다.

녀석들도 나처럼 백석의 시에 재미를 느꼈으면 좋으련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 아이들과 '성적', '입시', '학교' 이야기 말고, 다른 할 이야기가 생겨서 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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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1-1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이상스레 [백석 시전집]에 손이 가더니.. 실은 책장 사이사이에 잔뜩 끼워둔 지난 가을 낙엽에 홀려 시는 거의 읽지 못한.. ^^; 시 읽기 정말 좋은 촐촐한 날씨예요.
 

修羅

- 백 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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