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오른쪽으로 굽이졌다가 산자락 사이를 굽이치며 흐른다.
왕피천은 최근 환경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안에서는 어로나 야영, 취사 등의 행위가 일체 금지됐다. 이것은 왕피천의 자연생태적인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의 하류는 은어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꺽지와 버들치, 쉬리 등 민물고기도 다양하다. 이처럼 먹이사슬이 풍부하자 수달과 산양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이곳을 무대로 살아간다. 왕피천의 상류는 청정지역의 보증수표인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반딧불이 애벌레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함부로 채취할 수 없다. 반딧불이 먹이를 위해 환경감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다.
우무마을 벗어나면 인적 끊긴 천혜의 외딴 곳 펼쳐져
왕피천에서도 가장 외진 곳을 꼽으라면 영양 수하리에서 울진 왕피리 사이를 들 수 있다. 이곳은 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길이 전혀 없다. 수하리 끝마을 오무에서 왕피리의 첫 마을 한천까지 6.5km는 오직 강물만이 흘러가는 무인지경이다. 오무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태고의 자연만이 반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과 벗하며 걷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무마을에 닿으면 ‘도로끝’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왼편의 언덕에 왕피천 탐방안내소가 있다. 우선 탐방안내소에 들려 실물과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지도를 보면서 왕피천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또 왕피천의 생태적 가치와 이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동식물도 알아본다. 특히, 한천마을까지 오가는 길의 상태나 강물의 수위에 대해서도 타진한다. 왕피천 트레킹에서 강물의 수위는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왜냐하면 한천마을까지는 수도 없이 강물을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한천마을까지는 강이 길이고, 동행이다
오두마을에서 강을 건넌다. 강 건너에는 외벽을 근사한 꽃그림으로 장식한 귀틀집이 있다. 이곳을 지나서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은 좋다. 그러나 200m쯤 가면 다시 강을 건너게 되고,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는 길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당황스럽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정답은 강이다. 강만 따라가면 된다. 강을 따라가는 방법은 각자의 몫이다. 강물을 텀벙거리며 걸어도 되고, 강기슭에 토끼길을 만들며 가도 된다. 분명한 것은 길의 존재 여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걷는 길이 길일 뿐이다. 그것이 왕피천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험하거나 못 갈 길은 아니다. 바위와 암반이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강물의 수량만 만치 않다면 요리조리 피해갈 곳이 있다.
우무마을에서 시작하는 왕피천의 이름은 장수보천이다. 이 물줄기가 산자락을 크게 한바퀴 돌아나가면서 인적이 끊긴다. 혼자 출발했다면 끝까지 혼자일 확률이 99%다. 산이 장막을 친 깊은 강물 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해보라. 호젓하기도 하지만 적적하기도 하다. 길동무를 해줄 대상은 강물 밖에 없다. 반면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걷다 지치면 강물에 몸을 던져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도 있다.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틀고
왕피천은 한천마을에 닿을 때까지 특색 있는 구간이 별로 없다. 강물이 지나는 계곡의 표정이 거의 비슷하다. 잔돌이 깔린 개울처럼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깊은 소를 이룬다. 가끔 급류를 이루며 물살이 거센 곳도 있지만 폭포라 부를 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니 어느 곳도 이름이 없다. 딱히 부를 만한 지명도 없고, 길이 분명치 않으니 딱히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저 물을 따라 걸어가라는 수밖에 일러줄 것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낙조에 붉게 물든 왕피천.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오무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다. 강물의 굽이치는 각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초반은 강물이 곧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을 지날 때면 점점 곡류가 심해진다. 강은 고작 200m를 가지 못해서 다시 휘어진다. 강물은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튼다. 첩첩산중이다. 그렇게 산이 쉼 없이 막아서 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는 꺽지, 피라미, 버들치가 활보한다. 인적을 느껴도 별로 무서워하는 모양이 아니다. 왕피천은 예나지금이나 물고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걷기도 지칠 때쯤, 강을 막아선 산등성이에 인간의 흔적이 나타난다. 산비탈을 따라 밭을 만든 모습이 역력하다. 한천마을에 닿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가면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에 닿는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이쯤에서 돌아서야 오무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왕피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을 이루며 동해로, 동해로 향해 간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오무마을(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30분
문의 : 영양군청 문화관광과(054-680-6062)
오무~한천 구간은 돌아오는 교통편이 없다. 다시 계곡을 따라 원점 회귀해야 한다. 산악회의 안내산행을 따라 가면 왕피천의 주요구간을 편도로 주파할 수 있다. 간식과 도시락, 물은 필수다. 긴 바지와 긴소매 옷을 입는다. 아쿠아 슈즈보다 물에 젖을 각오를 하고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게 발이 편하다. 스틱이 있으면 강물을 건널 때 유용하다. 강물의 수위와 날씨는 반드시 체크한다. 중급 이상의 트레킹 경력자에게 추천한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819/글∙사진 김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