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의 눈과 선자령의 바람, 오대천의 얼음 낚시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안도현 ‘길’)

   2007년 마지막 날. 길은 얼어 있었다. 오대산에서 상원사로 가는 흙길 8km. 300여 명의 그들은 길 위에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삼보일배. 어쭙잖게 흉내를 내다 이내 포기했다. 언 땅의 잔인한 기운에 맞서기에 나는 유약했다. 장갑을 뚫고 살을 뚫고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견뎌야 할 만한 그 무엇이 내게는 없었다.

   엎드리고 또 엎드려 가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잘못을 참회하는 것이죠. 본래 참회라는 것이 잘못을 반성하는 것조차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인데 내일은 또 다른 죄를 짓겠죠.” 아직 밤색 행자 옷을 벗지 못한 초보 스님의 목소리에는 작은 흥분이 감돈다. 이마에 달라붙은 흙에 엉킨 빨간 피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맺힌다. 도대체 무엇이 저토록 절실한 것인가.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길은 그 절실함이 담겨 있는 길이다. 육신의 고통을 참아내게 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날 것인가. 겨울이다. 추운 것이 당연하다. 움츠려야 한다.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숨어야 하는 것이 겨울의 익숙함이다. 그 익숙함을 벗어던지면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 길에서 돌아와 또 길을 찾는 이들은 그 새로움의 오르가슴을 안다. 그 오르가슴을 찾으러 가자. 겨울의 익숙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가장 추운 곳으로. 

즐기기로 작정한 자, 대관령 오솔길로      

   길은 네트워크다. 이곳과 저곳을 잇는 역할을 다하면 잊혀진다. 왕래가 빈번해지면 길은 생김새부터 바뀌고 역할도 달라진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이 그렇다. 오솔길로 남아 있는 대관령 옛길과 이제는 국도로 전락한 아흔아홉 굽이 옛 고속도로, 그리고 새로 뚫린 4차선 고속도로가 나란히 고개를 넘는다. 오솔길은 즐기기로 작정한 산사람들이나 찾는다. 옛 고속도로는 고속도로 통행료라도 아끼려는 화물자동차나 기왕이면 즐기며 가자는 관광버스나 넘는다. 혹은 둘만이 있을 공간을 찾는 연인들의 길이 되었다. 지난해 겨울 보름달이 뜨는 날 옛 영동고속도로에서 만난 아름다움은 처연함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달빛의 애무에 넋을 놓아버린 백두대간 그림자는 강릉의 네온사인에 희롱당하고 있었다. 그 뒤로 한 걸음 물러선 바다는 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블루를 밝히는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은 하늘의 별을 모두 모은 듯 밝았다. 처음 알았다. 아름다움이 강하면 슬프다는 것을. 고개를 오르는 시리던 눈은 이내 차를 세우게 했다.

   카오디오가 들려주는 러시아 붉은 군대 합창단의 <볼가강의 뱃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샘물이다. 귀족들의 유람선을 끌기 위해 힘을 모으는 볼가강 어부들의 후렴은 느리게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소리를 키우며 희망의 손을 잡는다. 절망은 끝이 아니다. 희망이 끝이다. 그들의 노래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밥벌이가 비루하다는 한 작가의 말은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의 운명을 다함으로써 얼어붙은, 그래서 조용함을 얻은 대관령 옛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에서 가물거리는 강릉의 불빛을 바라보라. 그 불빛 아래 저마다 이유를 갖고 이 밤을 노동으로 보내는 이들을 생각하자. 비루한 삶은 작가의 글 속에서나, 군가에서처럼 “보람찬 하루를 끝마치고서” 술독에 빠진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붉은 군대 합창단의 <애니 로리>가 흐른다. 진실한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가. 부처는 모든 변화가 진실이라고 했다는데…. 문득 그대가 그립다. 

‘명주군왕릉’ 위로 울고 지나가는 바람

   선자령으로 간다. 바람의 땅이다. 일찌감치 대관령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고개 선자령은 대관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가량 걸어야 한다. 이제 겨우 아이 키만큼 자란 나무들이 바람막이 울타리에 기대어 키를 키우는 곳을 지나 이러저러한 국가 시설물이 모여 있는 능선을 지나면 바람은 제 영역을 침범하는 적을 만난 양 분노를 터뜨린다. 서쪽으로는 완만하지만 동쪽 바다로는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다. 바람은 태평양 어디쯤에서 시작해 벼랑을 오르며 극악해진다. 절벽에 매달린 키 작은 관목들은 바람을 막아내지 못한다. 다만 견딜 뿐이다. 견딤으로 나무들의 생명은 이어진다.

   바람이 극악한 이유를 전설은 말한다. 벼랑 아래 바다로 가는 길목 골짜기에 한 사내가 누워 있다. 신라의 왕을 꿈꾸던 사내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누워 있다. 언제부터인지 알 길이 없지만 ‘명주군왕릉’이란 팻말이 세워졌다. ‘능’이라는 칭호는 왕의 무덤에만 붙인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왕에게 능이란 칭호는 호사다. 살아서는 왕이 꿈이었고 죽어서 왕이 되었다. 명주군왕이란 팻말을 세운 이는 왕을 그리워했을까, 두려워했을까? 그 사내가 왕을 꿈꾸던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설은 그가 불어난 물 때문에 북천을 넘어 경주로 가지 못해 왕이 되지 못했다고 전한다. 선자령의 바람은 죽은 왕을 위해 능을 지키는 군사들의 한이라 전한다. 그 사내가 왕이 되었다면 달라졌을 또 하나의 세상, 그 세상의 천년 뒤를 나는 산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세상을 꿈꾼다. 이념을 지키는 것이 가난을 상징하고 가난이 부끄러움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삶이 비루하다고 썼는지 모를 일이다.

   전설대로 바람이 그의 병사들이라면 그들은 전사가 아니라 예술가들이지 않았을까? 눈이 내린 겨울 선자령은 그 어떤 조각가도 이룰 수 없는 아름다운 눈 조각들이 넘쳐난다. 1m 넘게 쌓인 눈을 쓸어 길을 내고 제아무리 못생긴 나뭇가지일지라도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한다. 얼어붙은 대지를 붙잡은 메마른 풀의 뿌리는 얼지 않았다. 살아 있음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은 고통조차 살아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왕이 된 사내와 죽어서도 바람이 되어 벼랑에 제 몸을 부딪혀야 하는 병사들의 전설은 슬프다. 잊혀지기 때문이다.

   이 겨을 선자령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국적인 목장의 풍경과 아름다운 설경 때문만은 아니다. 홀로 설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고 바람의 울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휘청거려야 하는 낯섦이 누군가의 어깨가, 가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선자령은 많이 변했다. 소나무 숲에서 목장으로, 다시 풍력발전지대로…. 그래서 선자령에 이르는 길은 이국적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앞에 서보라. 마치 단두대의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에 잘리는 바람이 운다. 그러니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기를…. 문득문득 돈키호테가 되고 싶어진다.

송어와 씨름하는 원초적인 즐거움도

   완만한 서쪽과 가파른 동쪽 사이에 난 가르마 같은 길 선자령에서 모든 것은 교차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 비겁과 용기의 경계, 기억과 망각의 경계, 역사와 신화의 경계,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의 경계…. 선자령은 모든 것이 경계가 되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곳이다.

   축제는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다. 과연 그런가…. 모두가 움츠러들고 따뜻한 온돌을 찾는 겨울.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다는 대관령 주변은 겨울에 기대어 산다. 그들에겐 겨울이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스키장과 황태 덕장, 그리고 겨울 설경이 밑천인 그곳에서 먹고살기 위해 준비하는 축제인 대관령 눈꽃축제가 올해로 16년째다. 오대산에 기대어 사는 진부도 한강의 시원인 오대천에서 평창 송어축제를 처음 연다. 도시의 놀이공원이 주는 세련됨과 박제화된 즐거움이 아닌, 때로는 불편할지도 모를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축제는 삶이 걸어온 전쟁과 싸우는 수단이다. 그들이 사는 땅은 추워야 살 수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진짜 겨울’ 오대천에서 송어랑 씨름 한판 벌여보고 ‘눈의 고향 대관령’에서 눈사람에게 수작도 붙여보자. 내 떠남이 그들에게는 응원이고 나에게는 배움이다. 

대관령 일대에서 알차게 놀기

2박3일도 당일치기도 괜찮은 오대산-대관령-동해 코스

   오대산과 대관령, 동해를 잇는 길은 겨울여행의 고전이다. 대관령 일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기 때문에 그곳 아니면 느끼고 즐길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다. 스키를 겸한 2박3일, 혹은 겨울의 풍경을 만끽하는 1박2일, 혹은 오대산 중심의 당일치기 여행 모두가 적합하다.

   2박3일의 경우 ‘진부 톨게이트 평창송어축제 → 오대산(1박) → 스키장, 눈꽃축제 → 대관령 구길 → 강릉(2박) → 일출 → 양떼목장, 선자령’ 코스를 추천한다. 1박2일 경우 ‘동해 → 대관령 구도로 → 선자령 → 대관령 눈꽃축제, 용평스키장 → 오대산(1박) → 오대산 전나무 숲길 → 평창송어축제’ 순으로 여행 스케줄을 잡으면 즐거운 겨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겨울바다 여행을 겸한다면 ‘강릉행 야간열차 → 일출 → 강릉 해수사우나 → 횡계(강릉시외버스터미널) → 선자령(횡계택시) → 진부(횡계에서 이용) → 송어축제 → 오대산’ 순으로 일정을 잡을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외지인 유입이 많았던 터라 음식도 전라도 음식 뺨칠 정도로 훌륭하다. 산채요리는 비교적 비싼 편인데 자연산만을 가려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부면 시내의 부일식당, 오대산국립공원 입구의 식당가 등이 유명하다. 진부는 특히 돼지고기가 훌륭하다. 시내 어느 집에 들어가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대관령 한우를 기본으로 한 쇠고기 요리는 비싼 만큼 제값을 한다. 진부 톨게이트 바로 옆의 대산식당은 한옥이 주는 자연미와 함께 고급 쇠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대한민국 진짜 겨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축제행사를 할 정도로 추운 곳인 만큼 옷차림을 단단히 해야 한다. 선자령은 해발 1400m가 넘는 곳이지만 대관령에서부터 오르기 때문에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바람막이 옷과 아이젠은 꼭 준비 한다. 1천원짜리 우비도 바람막이 대용품으로 쓸 만하다. 비료 부대를 준비하면 하산길이 즐겁다.

   평창송어축제는 송어잡이 체험과 썰매, 썰매기차, 스노래프팅 등의 놀이도 즐길 수 있다. 대관령눈꽃축제는 체험과 놀이 이외에 눈조각 작품들이 볼거리다. 두 곳 모두 여행길 인근이니 한번 들러볼 만하다. 오대산은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걸어야 전나무 숲길을 지날 수 있다. 특히 월정사에서 500m가량 더 올라간 부도밭 인근의 전나무 설경이 아름답다. 산사의 하룻밤을 기대한다면 월정사나 상원사 중대 사자암에서 신세를 질 수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 중간쯤에 오대산장이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이른 아침 새들의 합창과 깜작 놀랄 만한 겨울 아침 풍경이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강릉 경포대 인근의 24시 해수사우나를 이용하는 것도 경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2008.12.18 제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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