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오늘도 아내랑 얘기를 했지만, 나는 알라딘의 서재를 통해서 좋은 책을 참 많이 알게 되었고, 그것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서재를 몰랐다면 아마도 읽을 책이 바닥이 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인데, 알면 알수록 더욱 더 읽을 게 많아지는 게 책의 세계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그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멋진 작품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들고 싶다. 나는 이 책은 지금껏 열 권 쯤 샀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말이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보낸 책은 이내 읽은 사람들의 기쁨과 깊은 감동을 담아서 나에게 메일로 되돌아왔다. 특히, 서른이 넘은 사람들에게서는 공치사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알게 해 준데 대한 고마움을 담은 편지도 받았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의 책 선물 목록 제일 앞자리는 이 소설일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홀로 밭을 가는 노인 복귀의 기이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황당한 인생을 소개하는 이 소설이 우리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회고의 말하기방식에 있는 것 같다. 복귀는 자기가 살아온 끔찍한 삶을 달관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소설의 패기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기’에 ‘패기가 없다’는 평가는 이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삶의 오롯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평가에 견준다면 기꺼이 감수해도 될 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에서 나오지 않은 삶의 희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에서 역사는 각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복귀라는 한 인물과 그 가족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복귀와 그의 가족들은 혼란스러운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복귀 가족의 삶은 멀리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약진 운동과 59년 대기근, 문화대혁명 등,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겐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는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또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다.

 

   복귀의 가족은 혼란스러운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차례차례 죽게 되는데, 대부분의 죽음이 인물의 성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귀의 가족들이 살아가야만 했던 당대의 현실 때문이었다.

   대변을 보다 죽게 되는 아버지, 국공 내전에 끌려갔다 와보니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복귀와 함께 죽을 고생만 하다가 죽게 되는 아내 가진, 헌혈을 하려다가 의사의 실수로 너무 많은 피를 뽑아버려 죽게 된 아들 유경, 이희와 결혼해 아이를 낳다가 죽은 귀머거리 딸 봉하, 공사장에서 일하다 콘크리트 틈새에 끼여 죽게 되는 편두 사위 이희, 시름시름 앓다 삶은 콩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죽은 손자 고근……. 이들이 차례로 복귀의 곁을 떠났고 복귀는 결국 소 한 마리와 노년을 보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사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한 번이라도 책을 읽고 울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죽은 아들 유경이의 무덤을 찾아가는 복귀와 가진, 아들의 무덤 앞에 엎드린 가진의 모습을 읽을 때에는 책 읽는 걸 한참이나 멈추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또 하나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마음이 아릿하게 느껴진 이유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의 삶은 최근까지 우리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많은 부분이 겹쳐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초인적인 인내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폭력을 견디며 근근이 살아온 우리 조상들-결국 나의 부모님이 아니시겠는가-의 삶이 겹쳐져서 더욱 가슴이 찡했다.


   리뷰랍시고 대충이라도 쓰고 보니, 이 책의 리뷰만큼은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씨가 감은사를 보고 말한 것처럼 쓰면 소설에 누가 되지 않는 리뷰가 될까? 리뷰의 처음부터 끝까지 - 아! 위대하도다, 살아간다는 것이여! 아! 위대하도다, 살아간다는 것이여! 아! 위대하도다…… 

 

   자, 현재 삶의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두고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이 책으로 밤을 지새우며 살아간다는 것의 위대함을 음미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 1년 전에 읽었던 책의 리뷰도 이렇게 써지는 걸 보니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고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점을 한 번 더 언급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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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8-1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위화 작가의 글솜씨는..정말 너무나 탁월하구요..

느티나무 2005-08-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였다는 말 밖에 더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요? ㅎㅎ

심상이최고야 2005-08-2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셤 공부 하다가 갑자기 이주의 마이리뷰가 궁금해서 와 보니 이렇게 기쁜 소식이 있다니!! ㅋㅋ
축하드려요^^

해콩 2005-08-2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허삼관매혈기]도 디게 좋더만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리뷰 당첨은 당연한 결과인듯.. 샘의 소개로 알라딘에서 산 책이 얼마야~~

느티나무 2005-08-27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상이 최고야님, 덕분이지요 ^^ 응원의 도움이 컸답니다.

느티나무 2005-08-27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맞아요. 허삼관 매혈기도 좋지요. 좋은 책 소개라니요? 알라딘에서 산 책, 정말 많지요? 저도 그래요. 그래도 멈춰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요?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