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무현선생님의 글

  “꿇어.”

   영화에서 보아온 조직폭력배들의 세계는 분명히 아닌데 하루를 살다 보면 교무실 이곳 저곳에서 무릎을 꿇는 아이들을 참으로 많이도 만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저렇게 무릎도 꿇고 고개도 숙이고 앉아 있나 하고 넘겨다보면 아이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지각을 해서 꿇은 아이, 수업 태도가 나빠서 꿇은 아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과연 아이들을 꿇어앉히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교사들끼리 말을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그저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만 하다가 얼마 전 회식 자리를 빌려 몇몇 선생님들께 문제 제기를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무에게나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무릎을 꿇을 만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다.’

   ‘아이 스스로도 잘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꿇어앉으라는 교사의 지시를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정말로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무릎을 꿇을 만한 잘못은 어떤 것이며,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한 기준인가?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또 잘못을 뉘우치게 하려면 반드시 무릎을 꿇려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내 스스로의 답은 너그럽지 않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 잘못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무릎을 꿇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정말로 뉘우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또 아이들 스스로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 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오히려 아이들이 무릎을 꿇는 행위에 대해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면 무릎을 꿇게 하여 반성을 이끌어내려는 시도 역시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 역시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일까?

   잘못을 했을 때는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바로잡아주는 것과 교무실 바닥에 아이를 꿇어앉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교사의 앞에 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교사와 바닥에 무릎을 꿇은 학생의 대화는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지닐 수 없다. 한 사람은 내려다보고, 한 사람은 우러러보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마음과 마음이 오갈 수 있겠는가.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 제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로잡아주려고 한다 할지라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데서 출발하는 교육은 결국 교사 중심의 편의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조금은 귀찮을지라도, 조금은 피곤할지라도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교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간이의자를 교무실 곳곳, 구석구석에 나누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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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 2005-07-2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의 글을 읽다보면,저만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네요.느티나무님의 그런 순수한 마음이 왜 제게는 없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