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두 세 시간을 잤더니  잠이 안 온다. 안해는 내일 아침 일찍 친구랑 여행 간다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건성건성으로 책을 뒤적이다가-이 책은 건성으로 넘기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책인데- 늦게야 컴퓨터를 켰다.

   결혼하고 나니 생각보다 집안 일이 많다. 부모님댁에 얹혀 살 때는 거의 하숙생 수준으로 살았는데-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 했다- 오늘로 결혼한지 석 달!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맡은 집안 일이 아주 많아졌다는 것이다.(물론 서로 해야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집에서 내가 하는 일은 대충 이렇다. 설거지, 방과 거실 청소,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 배출, 세탁된 빨래 널기 등이다. 뭐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전반적으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다 집에 오면 한시간 이상은 집안 일을 꼭 해야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책 읽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다.

   사실은 설거지는 안해가 해왔으나, 한 보름 전부터 요리와 설거지를 함께 하는 게 힘들다며 설거지를 나에게 떠넘겼다. 나는 하루를 생각해 보고, 앞으로 만나게 될 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부엌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안 그렇겠지만, 대학에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설거지하는 어머니와 신문 보는 아버지의 그림이 나온다며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나?)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

   아직은 설거지가 지겹지 않다. 식탁과 싱크대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나면 기분이 좋다. 청소하는 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고 여러 사람을 기쁘게하는 일이다. [작년 1년 동안 도서실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도, 도서부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 책을 제자리에 꽂고, 도서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폼나는 일은 아니지만 도서실을 이용하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항상 청소하고 정리된 모습으로 1년을 지내자고 말했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놀면서 쉬면서 청소를 하니 별로 힘든 줄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독서 시간이 부족한 게 가장 안타깝다.

   내일은 벼르고 별러서 베란다의 화단에다 고추 모종과 상추씨를 심으려고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화단의 조경용 돌조각을 걷어내니 흙이 얇게 덮혀 있고 그 밑에는 석회가루 같은 햐안 흙(?)이 깔려 있는데 그 속에서는 고추가 자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화단의 흙을 전부 걷어내고 새로 흙을 깔아야 하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에고야, 너무 늦었다. 내일 문제는 내일 해결하고, 지금은 자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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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4-1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집안일 목록이 우리집 남편이랑 비슷하군요. 그래도 아이 없을 때는 집안일 아무것도 아네요. 좀 더러워도 서로 피곤할 때는 참고 쉬면 되잖아요. 나중에 아이 생기면 아마.... 우리집은 둘다 책보는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야 된답니다. 그것도 못할 때가 더 많지만...

느티나무 2005-04-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어제 베란다 화단에 고추를 심었거든요. 그런데 아래층에 사시는 분도 저랑 똑같이 화단을 가꾸셨다고 하시더군요. 아이 생기면 더 바쁠 것이라는 말씀은 여러 곳에서 들었는데,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