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문학과지성사, 1996
아우라지로 가는 길 1
"시우야, 넌 무슨 생각을 하니?"
미미가 두 다리를 싸안는다. 세운 무릎에 턱을 고이고 있다.
"무슨 생각? 아버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며?"
"돌아가셨어. 말은 해. 볼 수는 없어"
아버지는 나무관에 담겨졌다.마을 사람들이 관 뚜껑에 못질을 했다. 그 관을 뒷동산에 묻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객으로 왔다. "정선군내 진짜 선생님들은 다 모였군" 하고 누군가 말했다. 여량중학교 졸업생, 재학생들도 많이 왔다. "싸리골 생기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어"하고 한서방이 말했다. 윤이장이 아버지 관 위에 첫 삽질로 흙을 부었다. 여량중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선생님!"하며 소리쳐 울었다. 학생 몇이 구덩이 속에 뛰어들었다. 관을 싸안고 통곡을 했다. 정선군 해직 교사 복직 대책위원장이 학생들을 구덩이에서 나오게 했다. 여러 사람들이 삽질로 구덩이를 메웠다. 흙을 다져 밟았다. 젊은 선생님들이 한목소리로 '전교조 투쟁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캄캄한 어둠을 깨고 지옥 같은 폭력을 깨고
참교육 민주주의의 전교조 깃발 높이 올렸다.
아 아 전교조여 우리의 참사랑이여
이 땅에 참교육 쟁취하는 날까지 아 투쟁하리라...
학생들과 젊은 선생들은 무덤을 둥그렇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만약 눈을 뜬다면, 관을 열지 못할 터였다.
-134쪽
아우라지로 가는 길 2
아버지 무덤에는 뗏장이 푸르다. 깎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자랐다. 할머니는 이제 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묘로 오른다. 할머니의 한쪽 고무신이 벗겨진다.할머니는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다. 나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들고 뒤따른다. 후박나무를 잡고 할머니가 무릎걸음을 멈춘다. 짱구가 검은 돌 앞에 선다. 그가 돌에 씌어진 글자를 읽는다.
참사람 참스승 마인표선생님,
우리는 스승님을 마음에 묻습니다.
"시우 아버지가 훌륭한 교사였나봐" 짱구형이 예리에게 말한다.
"그런 것 같아. 제자들이 묘비까지 세워줬으니." 예리가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