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나무
- 김광규
새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자연 보호를 받고 있는
늙은 소나무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의 몸짓 보여주며
백여 년을 변함없이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송진마저 말라 버린 몸통을 보면
뿌리가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의 고달픔 짐작도 못하고 회원들은
시멘트로 밑동을 싸 바르고
주사까지 놓으면서
그냥 서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도
늙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
오래간만에 털썩 주저앉아 너도
한번 쉬고 싶을 것이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기에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너의 졸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백여 년 동안 뜨고 있던
푸른 눈을 감으며
끝내 서서 잠드는구나
가지마다 붉게 시드는
늙은 소나무
* 지난 주말 빗속을 뚫고 경북 영덕의 칠보산 자연휴양림, 울진의 불영사,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을 다녀왔다. 불영사로 들어가기 전 잠시 들렀던 행곡리 처진 소나무를 보며 떠오른 시 한 편. 마침 지난 주 수업시간에 읽었던 시인데, 행곡리 처진 소나무를 보니 바로 생각이 났다.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데, 인간만 늙지 않으려고 애쓴다.
* 행곡리 처진 소나무의 모습은 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62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