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4-26일 

경북 울진 일대

9월 24일 : 덕구온천 - 죽변항 - 통고산자연휴양림 

9월 25일 :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 불영사(계곡) - 민물고기체험관  - 망양정

9월 26일 : 통고산자연휴양림 - 행곡리 처진소나무 - 울진 엑스포공원 - 성류굴 

 

 사진으로 보는 여행의 발자취 

   동해안 작은 항구(울진군 죽변항)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드라마 세트장 - "폭풍 속으로"라는 드라마라는데,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은 '우와'할 지 모르겠지만, 못 본 나나로서는 그냥 무감각하다. 오른쪽 건물이랑 그 옆에 있는 교회도 드라마 세트라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 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이미 해가 다 넘어가던, 약간 어둑어둑한 때라 그럴 수도 있겠다만... 

 

   드라마 세트장 바로 옆은 절벽. 우선 보기엔 운치가 있지만, 과연 저런 곳이 사람 살 곳이 되려나? 내가 아직 20대였으면,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만...이제는 좀 다르다. 좋은 말로는 철이 들었다,는 뜻이겠고, 나쁜 의미로는 꿈이 없는 것이겠지. 

 

   세트장 옆으로 해안산책로가 나 있는데 조릿대(산죽)가 길옆을 완전히 덮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 한 200-300미터 정도 되는 짧은 길이었으나 이 길 덕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운 듯 했다. 조릿대 사이로 본 하얀 등대. 이미 등대는 불을 밝히고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찾아 간 곳은 울진의 자랑,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장관이었다. "만약"을 들먹이는 게 좀 미안한 일이지만, 만약 하루의 여유가 더 있었다면, 불영사 계곡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에서부터 소광리 소나무숲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왔을 것이다.  

   사진은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의 상징과는 같은 존재인 '할아버지 소나무'. 1982년 측정 당시의 추정 나이가 500살.(지금은 530살쯤?) 사진으로는 보통 소나무처럼 보이는데 직접 가서 보면 아주 늠름하다. 다른 곳에도 오래된 소나무가 많지만 이렇게 곧게 자란 소나무를 본 기억은 없다. 늙어도 숲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멋지게 하고 있는 소나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은 저런 늘씬한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젓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멀리서 보면 가는 듯 보여도 평균 100년 이상 자란 나무들이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가벼운 산책 수준! 기본 탐방로(미인송)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오는 데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숲에서 뿜어내는 맑은 향기(피톤치드)가 가득하다.

  

   소광리 숲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소나무. 그래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미인송'이다. 높이는 30미터 이상, 수령도 350년 정도이다. 탐방로 거의 끝에 있다. 우리 가족도 여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소나무가 정말 대나무 뺨 칠 정도로 곧다. 부럽다.

 

   탐방로 끝에서 내려가는 길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미인송이 우뚝 솟아 있고, 길은 알맞게 평탕하였다. 이 정도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괜찮을 듯. 여기에 눈까지 온다면 정말 멋진 모습이 펼쳐지겠지만, 아쉽게도 10월 말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그러니, 눈 내린 숲 속의 풍경은 상상만 해야 할 듯~!

 

   소광리에서 나와 들른 곳은 불영사 계곡의 화룡점정인, 불영사. 이곳은 불영사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놓인 다리에서 본 계곡의 모습이다. 이곳에도 소나무는 모두 금강송이다. 게다가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도 모두 푸르다. 물에서도 숲에서도 맑은 기운이 넘친다.

 

   불영사. 佛影寺. 불영사 범종루 앞 연못에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연꽃은 이미 졌다. 그러나 연못에 비치는 범종각의 그림자는 마치 부처님의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맑다.  

 

   불영사 대웅전.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있다. 시끄럽던 목소리도 1km에 이르는 숲길을 천천히 걸어오다 보면 어느새 잦아들기 마련이고, 들뜬 마음도 드디어 불영사 대웅전 앞에 서면 차분해진다. 대웅전 맞은 편 건물에 퍼지고 앉은 자리가 마침 그늘이 졌다. 오래도록 대웅전, 텅 빈 앞마당만 바라보다.

 

   스님 한 분이 사진기를 들고 나와 잘 익은 석류를 찍는다. 사람들은 그런 스님의 모습이 흥미로운지 흘깃거린다.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나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요, 라는 걸 얼굴이 써 붙이고 다니는 것만 같은 아저씨 한 분이 스님과 사진기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멀찍이서 단풍나무 아래에서 스님이 사진 찍는 모습을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둘의 이야기가 좀체 끝나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 돌탑을 보면 사람들의 욕망의 덩어리,라고 느껴져서 거북했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했으면 저리도 빌어야 하는 게 많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자기 욕망 덩어리를 아무 데나 저렇게 배설해 놓아도 되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으니(?) 저 돌들이 욕망의 덩어리가 아니라 눈물 덩어리라는 걸 알겠더라. 돌 하나하나에 그 만큼의 눈물이 담겨 있는... 눈물탑!

 

   불영사에서 꽤 오래 있었고 걸어나오는 길도 제법 긴데다가 이 녀석이 당최 걸으려고 하지 않아서 계속 업고 다녔더니 다리가 천근만근!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제대로 다 보고 가자 싶어서, 경상북도 민물고기체험관에 들렀다. 사진은 남아있지 않지만 알차게 잘 꾸며 놓았다. 규모로 보면, 해운대의 아쿠아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니 그런 기대는 접으시고... 진복이는 어린이용 미로 같은 탐험놀이에 푹 빠지고, 나는 닥터피쉬가 손가락을 무는 것이 신기해서 즐거웠다. 

   그리고 서둘러 찾아간 곳이 이곳 망양정이다. 관동팔경의 제일관문루라고 해서 관동팔경을 대표하는 곳이다. 울진답게 어디를 가나 울창한 소나무숲. 우리는 이미 소광리에 다녀온지라... 바닷가 주차장에서 망양정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 야트막한 언덕에 깔끔한 정자 한 채가 소나무숲 뒤로 보인다. 망양정의 일망무제를 기대했으나, 오랜 세월에 정자 앞 나무도 자라서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길 위로 올라 와 있다. 

 

 

   망양정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 노한 고래 뉘라서 놀래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히 구는지고. 은산(銀山)을 꺾어내어 육합(六合)에 나리는 듯, 오월장천(五月長天)에 백설은 무삼일고. 져근덧 밤이 들어 풍랑이 정하거늘 부상지척(扶桑咫尺)에 명월을 기다리니 서광천장(瑞光千丈)이 뵈는 듯 숨는고야. 주렴을 고쳐걸고 옥계를 다시쓸며 계명성(啓明星) 돋도록 고초 앉아 바라보니 백련화 한 가지를 뉘라서 보내신고. 이 좋은 세계 남대되 다 뵈고져···  

-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오늘은 망양정의 일망무제가 아니라, 반원을 그리며 대열을 이루고 있는 구름이 더욱 내 눈길을 잡아 끈다. 

 

   다음날 아침까지 넉넉하게 자고, 느긋하게 밥까지 챙겨 먹고, 통고산 산책로를 걸었다. 통고산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는 3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살짝 욕심이 났지만 진복이가 있으니 마음을 접고, 1.4km 정도의 산책로를 걷는다.  

   낮은 오르막길은 계곡을 따라 점점 깊어지고, 산책길이지만 제법 골이 깊은 지라 이끼와 버섯이 곳곳에 가득하다. 돌아오는 길은 아래쪽으로 계곡을 내려다 보며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인데 아직 다녀간 사람이 없었는지 사람의 자취가 없다. 오직 새소리만 간간히 들려올 뿐! 고요하다.

 

   불영사 계곡을 네 번째 지나면서 중간에 들른 사랑바위. 계곡 중간에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데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 이 사랑바위에 대한 전설을 구구절절하게 적어놓았는데, 심드렁하다. 전설에 의하면 저 둘은 오누이란다.  

 

   울진군 행곡리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409호). 마을이 생겼을 때 심은 나무가 저렇게 자랐단다. 이제는 이 마을의 수문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싶다. 나이는 300살 정도? 소나무의 가지가 밑으로 축축 처져있어 특이한 모양이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나무를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줄기가 굵다.[참고로, 소나무가 지키는 이 마을은 "사랑한다 말해줘"라는 드라마 촬영지라고 한다.]

 

   나무의 비틀린 둥치. 거북이 등껍데기 같은 수피가 평생을 고달픈 삶을 살아온 노인의 깊은 주름살 같아서 마음을 여미게 한다. 이 나무가 지금껏 울진에서 보아온 금강송처럼 쭉쭉 뻗은 모습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나무 아래서 살아온 이들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 보았다.

 

   울진엑스포 공원 안에 있는 조형물. 넉넉한 공원 곳곳에 이런 조형물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쓸데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만, 그냥 그날은 우리 농산물을 홍보하고 있는 캐릭터가 귀여웠다.(공간이 널찍해서 이런 게 있어도 촘촘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진복이는 신기했는지 연신 쳐다 보았다. 

 

   울진엑스포 공원 입구의 소나무숲 산책로. 아름다운 길이다. 이런 소나무 숲길이 공원 가장자리로 제법 길게 이어진다.  한마디로 공원은 무척 아름답다. 시골 동네의 그렇고 그런, 쌈지공원 정도를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꽤 큰 규모의 공원이다. 자연미는 덜 하지만 공원에는 보고 즐길 거리가 무척 많다. 자전거도 탈 수 있고, 농촌체험장, 작은 동물원, 아쿠아리움, 곤충박물관, 식물치료관, 전통놀이장... 그 밖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놀 거리가 있어 온종일을 이곳에서 보내도 충분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요일인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만약에 부산에 이 정도 공원이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입구에서부터 주차전쟁에 저 산책로는 미어터질 것이 분명한데, 저기는 저 숲속의 의자에 앉아서 한가롭게 책을 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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