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올해 3학년 4반 부담임이다. 명색 부담임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담임이 모든 일을 다 하니까. 그런데도 지난 스승의 날 반장 녀석은 슬그머니 무엇을 두고 집에 가 버렸다. 부담임이라고 챙긴 것이다. 그 이후로 늘 찜찜했다.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는 불구의 상황! 그래서 3-4반 아이들 이름도 열심히 외우고,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함께 공을 차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돌렸지만 친해진 느낌은 덜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준비한 학기말 게임- 수박먹기대회

   아이들에게 수박먹기대회를 하자고 했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500원씩 내라고 했더니, 그 정도는 하면서 반장이 돈을 걷어왔다. 그 돈과 내 돈을 보태서 수박은 5통을 주문했다. 날짜는 방학식하기 하루 전, 시간은 6교시 다른 선생님 시간을 대신 빌렸다.(당근, 좋아하셨다 ^^;) 조금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지구과학실을 특별히 빌렸다. 수박은 학교에 도착하는 대로 식당에 맡겨서 반달모양으로 썰어 두었고, 교실 바닥에 깔 신문지까지 구해두었으니 이것으로 준비는 끝이었다.

   드디어 수박먹기 대회시간. 아이들은 쉬는 시간부터 지구과학실로 왔다. 책걸상을 뒤로 밀로, 신문지를 교실바닥에 깔았다. 모둠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급조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수업종이 울리자 우리도 수박먹기 대회에 들어갔다.

   첫 번째는 몸풀기 게임으로 "야채게임"을 했다. 설명하는 동안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는데, 막상 게임을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할만 했던지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야채 게임은 모둠 대항 게임이라서 급조된 모둠일수록 효과가 좋다. 왁자하게 떠들다가 조용히 집중했다가 내가 하는 설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어졌다.

   이제 본 게임. 아이들에게 수박먹기 대회의 요령을 설명한다. 각 모둠(한 모둠은 6-7명 정도)은 1번부터 순서를 정한다.-당연히 1번부터 6,7번 정도까지 나온다. 이 순서를 짜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야구에서 타순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 그러면 각 모둠의 1번 학생들은 모두 모여서 각자의 위치에 편하게 않으면 내가 전에 한 "야채 게임"을 성적을 반영해서 수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작은 수박을 골라야 하는데, 그래도 수박은 많이 먹고 싶고...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귀여운 녀석들!) 모두 수박을 쥐었으면 동시에 미친 듯이 빨리 먹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다. 입에서 국물이 흐르고, 씨가 튀고, 수박이 입에서 들락날락거리기도 한다. 보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승부는 누가 빨리, 다, 먹느냐다. 1등과 2등은 차등 점수를 주고, 꼴찌 모둠은 기본 점수를 감한다. 그러면 꼴찌를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다.

   그렇게 각 모둠의 1번 학생이 끝나면 점수판을 기록하고 2번 주자가 다시 나와서 똑같이 반복한다. 시작 전은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남은 아이들에게 응원의 함성, 박수를 유도하면 분위기는 더욱 좋다. 게다가 응원상도 주면 더 열심히 한다. 모두 수박을 먹으면서 공평하게 게임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아이들의 호응은 무척 좋은 것다. 수박이 남으면 왕중왕전이라고 해서 각 모둠의 대표자만 모아서 한 번 더 하면 모둠간의 사람수를 조절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수박 껍질을 모아서 담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1시간이 딱 맞다. (모두 달려들어서 뒷정리 잘 하는 것도 무척 맘에 들었다.) 다시 책걸상을 제자리에 두고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야채게임을 한 번 더  했다. 나는 상품으로 다시 방학하는 날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약속했었다. 이후에 나는 이 아이들과 은밀한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른 반 아이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까... 요즘도 수업을 들어가면 부담임반이라 그런지, 그 게임의 영향 덕분인지... 다르다는 느낌이다.

   사실, 교사가 아이들과 조직적으로 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결코, 내가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과 함께 놀아본 기억이 없다. 애들이 놀자고 하면 그냥 자습해라, 하시고 약간 떠드는 걸 눈감아 주시는 정도 ^^; ) 1시간을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보다는 5시간 수업을 선택할 선생님들도 계시니... 그렇지만, 아이들과 잘 노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학생들과 별다른 거리감 없이(양쪽에서 모두) 무엇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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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2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둠이라는 표현... 일상 생활에서 쉽게 고쳐써지지 않는 것인데... 참 자연스럽게 쓰시네요.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부럽습니다. 누가? 아이들이 ^^

느티나무 2004-07-2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둠'이라는 말.. 저는 참 좋아합니다. OO'조'라는 말에서는 군국주의의 냄새가 나요. 하기야 학교의 또다른 모습이 작은 '군대' 아닐까요? (좀 심했나?)

조선인 2004-07-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래도 님같은 분이 있기에 더 이상 군대가 아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