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에도 조금씩 다가오는 봄처럼 분주하던 학기 초의 일더미 속에서도 조금씩 안정된 일상은 다가온다. 학기 초부터, 아니 작년에 썼던 교단일기 공책이 내 손에 들어와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었던 그 때부터 올해도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쪽지를 건냈는데 무려 여덟 분이 연락을 해 줘서 조금 놀랐다. (또 작년처럼 옆에 계신 짝지 선생님을 끌어들이는 선생님도 계실 테고…… 함께 쓰는 분이 열 분이 넘으면 공책을 두 권 돌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일기장이 선생님들의 마음을 잇는 끈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올해는 이 공책 쓰기에 더욱 재미를 붙여야겠다.
작년 3월엔 모처럼 담임이 아니었지만, 담임만큼 마음이 쓰이는 -내 기질이나 성격에는 정말, 안 어울리는-전교조 ‘분회장’이었던지라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어떻게, 어떻게 1년이 지나가서, 올해는 그 분회장이라는 짐도 벗어서 한결 마음이 가볍다. [OO샘 미안!] 그렇지만 올해 수업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다. 3학년 9시간, 2학년 8시간. 3학년은 입시 준비라는 허울에 한쪽 눈 딱 감고 문제 풀이만 하고 있는지라 아무 문제가 없지만-사실, 이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서 좀 있다가 설명하려고 한다- 2학년 수업이 문제다.
작년에 1,2학년을 대상으로 수업했던 ‘독서’수업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올해는 ‘안 해야지’했는데, 어쩌다보니 나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2학년 ‘논리학’ 수업 22시간 중에서 14시간은 이OO 선생님께 맡기고, 나는 8시간을 맡았다. 작년에도 이 일기장에 줄기차게 썼지만, 이 ‘논리학(독서)’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 교재가 없다는 것과 시험을 안 친다는 것.(^^;; 장점이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다.) 선생님이랑 서로 번갈아가면서 학습지를 만드는데 내가 학습지를 만들 차례가 되면 한 사나흘은 머릿속에서 계속 조각글들이 둥둥 떠다닌다.(이번 주가 그렇다.)
올해 들어 좀 당황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3학년 보충수업 수강신청이 끝나고 강좌이동 기간에 내 반에 들어와 있던 학생들이 무더기로 다른 반으로 옮겨간다며 쪽지(변경신청서)를 들고 찾아왔다.(아마 순위제 신청이라서 내 강좌는 후순위에 대충 넣은 것이리라.) 음……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기분이 참 묘했다. 씁쓸한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니까 다시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국 몇 명이든 나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는 내 생각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구구절절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를 되돌아 볼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일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무거운 이야기만 잔뜩 썼네. 올해는 선생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설렌다. 작년에는 일기 쓰는 샘들이랑 밥 한 번 먹자고, 먹자고 해 놓고 결국 못 먹었는데 올해는 먹을 수 있을까?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아서 몸무게를 좀 줄이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구민운동장을 걷는다. 이제 시작했지만, 역시 목표는 거창하다. 운동으로 줄어 들 올해 말의 몸무게를 10년 동안 유지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몸을 위해서는 이렇게 신경을 쏟지만 정작 정신을 위한 운동에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이래 살아서 되려나?
꽃들이 앞을 다투어 필 꽃철이다.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기어이 꽃은 핀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철이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