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수업은 12시에 끝났으나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올해 맡은 업무는 도서실 관리 운영인데, 새 책도 살 준비를 해야 하고, 이용자 학년 진급도 시켜야 한다. 일단 이용자 진급이 급한 일이라 서둘러서 이용자 진급을 위한 기초준비를 했다. 그러니까 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점심을 대충 먹고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2시에 학교 근처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금정산에 오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2시 정각, 역시 제 시간에 선생님들을 만나 금정산 동문까지 차를 몰고 올라갔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남문까지 걸었다. 동문에서 남문까지는 1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능선길이지만, 우리는 쉬엄쉬엄 걸으면서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에는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했다. 가벼운 산행으로 마음도 산뜻해졌다. 맨날 오전만 일하고 이렇게 오후에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 웃음이 터져나왔다.
5시 30분, 이런 저녁을 먹었다. 나는 산에 같이 올랐던 선생님들과 잠깐 헤어져 한 현선생님(참사람 되어 발행인), 지연이선생님(하늘마을공부방 운영)과 저녁에 만났다. 원래는 1달에 한 번 정기모임이 있었는데, 내가 늘 빠졌기 때문에 지난달에는 한 현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도 하셨다. 일요일 모임이지만 토요일에 '송환' 보는 것으로 모임을 대체하기로 했다. 반가운 얼굴들이라 한 현 선생님, 지연이선생님과 저녁을 먹었다.
'송환' 보기로 했던 극장에 갔더니 진작에 표는 매진... 아무래도 감독과의 대화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이 높았던 것 같다. 나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내가 제안해서 같이 보기로 한 사람이 열명은 되는데, 눈앞이 막막했다. 결국 극장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제안서를 보낸 인연으로 안면도 있고, 몇 번 통화도 나눈 터라 영화만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겨우 통로에서 볼 수 있도록 허락을 얻었다.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해서 통로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현선생님은 연세도 많으신데다가 영화 시간도 아주 길어서 걱정이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한현선생님과 지연이선생님은 김동원감독과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특히, 한현선생님은 대학 선후배로, 감독이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감독과의 대화가 좀 불편하셨는지 먼저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한현선생님과는 헤어지고 나는 끝까지 감독과의 대화에 앉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계속된 대화는 약간 초점 없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진 감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에 집중해서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면 했는데, 영화와 별 상관 없는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 독립영화의 입문 계기, 상업영화에 대한 견해...이런 이야기들의 시간들이 좀 아깝게 생각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유명인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한현선생님이 주신 책을 들고 나갔는데-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가 이것 밖에 없었다. 극장엔 빈손으로 갔었고, 한현선생님이 가시기 전에 참사람되어에서 발행한 책을 주고 읽어보라며 주셨다.- 감독이 내민 책을 보더니 놀라서 나를 다시 쳐다 보았다. (복잡한 가운데서도 그 덕에 감독과의 짧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영화관을 나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와서 금요일에 시험 본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월요일에 학교 가서 아이들과 모의고사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었다.
오늘 원래는 동기들과 운동하는 날이었으나, 태형이가 아프다고 해서 취소되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원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계속 잠이 쏟아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지 혼자 생각해 보았다. 너무 게을러서 그런가, 몸이 아픈가, 요즘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여러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잠은 계속 왔다. 4시까지 아무 것도 안 먹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토요일의 빡빡한 일정과 오늘의 할랑한 생활이 너무 대조되었다. 그러나, 오늘 푹 쉰 덕분에 내일부터는 조금 더 활기찬 일주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만 힘내서 잘 지내면, 다음주에는 여유있게 보낼 수 있다.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