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1998
어제 우리 학교에서 시낭송 축제를 했다. 전라북도 모악산 자락에 혼자 사시다 몇 년 전에 지리산 근처의 하동 악양으로 이사한 박남준 시인도 먼길을 달려오시고, 학생들이 준비한 시 낭송, 시 노래, 시 연극, 유씨씨 등을 곁들여서 소박하지만 가을밤에 어울리는 축제였다. 우리 동아리 학생들도 어줍잖게 참가를 하게 되어서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공연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2학년 학생들이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수선화에게'를 부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눈물이 살짝 날 것만 같았다.
동아리 지도 선생님께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시를 낭송하시고,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반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노래를 불렀던 OO이가 미리 써 온 짧은 시 감상문을 읽었다. - 읽은 내용 중에 약하고 여린 존재거나, 강하고 굳센 존재거나 모든 존재는 외롭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 속을 쑥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전부터 눈가가 살짝 빨개지기는 했지만!
우리 동아리의 공연도 무사히 끝났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안치환의 '수선화에게'를 들었다. 페이퍼에 담아두려고 검색했으나 유튜브에는 가수 양희은이 부른 영상이 하나 있는데, 퍼오기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 이 노래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행복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