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음 모임을 준비하며 쓰는 이 쪽지가 사실은 좀 낯설다. 지난 번 모임이 왜 이렇게 아득하게 느껴지지? 겨우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지난주는 올해 동아리 모임 중에 아마 최고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이제는 진짜 ‘동아리’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장면도 내 인생을 되돌아 볼 때 기억나는 한 순간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이번 모임을 위한 준비가 좀 복잡했다. 며칠 전에 날아든 낭보 때문일 텐데…. 우리 동아리 활동의 연간 계획은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데, 뜻밖에 교육청에서 1학기의 우리 동아리 활동이 ‘우수’하다며 80만원을 추가로 지원해 준다는 공문을 받았다. 순간 욕심이 생긴 거지. 마침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책을 읽고 있던 터라 이왕주 교수님을 초청해서 강연을 들으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부산에 계신 분이니까 연간 계획을 세울 때도 초청하고 싶었으나 문제는 ‘돈’!)  ‘철학…’ 책이 재미있어서 제법 많이 읽었다는 예서를 통해 초청 메일을 보냈더니, 사정이 있어서 못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초청 강연은 무산되었고 우리끼리 재미난 모임을 꾸릴 수밖에 없는 거지.

  우선 이번 모임의 사회는 선경이가 맡기로 했단다. 지난번에 이미 예약했었거든. 사회자와 의논하면서 9교시 생활 나누기 시간에 얘기할 여러 가지 주제가 많이 나왔다. 수능을 1년 앞둔 나는…, 내가 요즘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나의 보물 1호가 있다면, 죽음을 앞두고 쓰는 나의 유서…… 등인데 이것 중에서 자유롭게 하나를 골라 생각을 정리해 오면 어떨까? 이 중에서 앞의 질문지를 읽었을 때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 써 보기.

   본격적인 책읽기 과제는 영화평 쓰기야. 일단 영화를 같이 봐야 하는데, 그게 좀 쉽지가 않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매번 석식시간을 한 시간씩 빼서 보는 방법이 있는데, 물론 저녁밥이 문제겠지? 또 저녁 먹고 바로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도 있으니 어려울 것 같다. 아니면 3일 동안 9교시를 빼는 방법(영화 상영 시간이 3시간임)도 있지만, 너무 자습을 많이 빠지는 거 같아서 좀 그렇고! 월요일 하루를 빼서(9교시부터 자율학습 끝까지) 보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걸리고. 토요일 모였을 때 근처에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어쩌지?

   지금 다른 공간을 섭외 중인데, 우리 학교랑 구포도서관 정도 밖에 안 떠올라.(초읍의 문화회관이나 도서관은 우리가 원하는 그런 공간이 없다네.) 이거 큰일 났네. 그렇다고 각자 영화를 볼 수도 없고.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이 쪽지 받자마자 연락해 주면 좋겠어. 아니면 그냥 모임 대신에 영화만 한 편 보고 말까? 정 안 되면 우리가 모일 때 같이 영화 보고 각자 내용을 정리해 오는 걸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야.(이제 모임도 서너 번 정도 남았는데 아깝잖아. 사실, 이 쪽지가 늦어지게 된 것도 이 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생각만 길어지고 해결은 안 나고…해서 지금에서야 쓰는 건데, 결국 결론은 안 난 채로 이 쪽지를 마감해야겠다.)

   정리하면 생활나누기에 발표할 활동지는 밑줄을 읽어보면 좋겠고, 영화 보고 비평하는 건 나와 사회자의 생각으론 부족하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줘.(선물 줄게.)

   어느새 가을의 터널이 끝나려나 보다. 하기야 워낙 짧은 계절의 터널인데다가 너희들은 이 터널에 눈길을 주며, 마음을 주며 살기가 쉽지 않은 거 누구보다도 잘 안다. 우리 동아리 활동이 더 넓고 깊은 생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너희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같이 들었다.

   다음 모임이 ‘빼빼로데이’라고 딴 데 가면ㅠㅠ


토요일에도, 다음주 화요일에도 계속 만나는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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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1-1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네시는군요.
여기에 나온 영화들이 요즘 애들에겐 약간 지난영화여서..(물론 좋은 영화들이지만)..물론 다른 영화를 보시겠지요? 독서모임에 청강 한 번 해보고 싶어지네요.ㅋㅋ

느티나무 2008-11-13 08:36   좋아요 0 | URL
영화는 도그빌(2003)을 봤어요. 모임하기 전 금욜에 학교에서 자습을 빼고 영화를 봤습니다. 오~ 영화를 볼 때의 진지한 표정들! 화요일에 책 이야기랑 영화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요, 수준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토론에서 보이는 자세는 아주 진지해서 보는 내내 제가 행복했답니다.(교실에서는 '프로이트'라고 하면 아는 학생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들은 집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있어서 읽어보려고 두 어번 시도했다는 정도니까요.) 이번에 읽는 책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개마고원)인데요. 드팀전님! 우리 아이들에게 1시간 정도 강연해 주시면 어떨까요? ㅎ

드팀전 2008-11-14 18:08   좋아요 0 | URL
^^ 지루한 영화를 보셨군요 ㅋㅋ
강의는 무슨..가당치도 않습니다.
대신 진지한 모습들이 어떤 건지 한번 구경은 해보고 싶군요. 불러주신다면 말이지요.
제가 언젠가 영화 <11번째 시간>에 대한 페이퍼를 올린적이 있는데 필요하시다면 대여해드리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