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처럼 아내랑 영화를 봤다. 얼마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이창동 감독의 '밀양' -영화 속에서는 '비밀의 햇빛' 이라고 했었지. '비밀의 햇빛'이라...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신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느냐고 묻는 약사에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안 믿는다고 말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때였나, 아니면 그 다음 약국에 들렀을 때였나)그리고 약국 창가로 걸어가 햇빛을 가리키며, 만지며, 여기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때의 그 햇빛이다. 비밀스러운 햇빛. 사실, 어디에나 있으면서, 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게(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게) 햇빛이 아닐까?
신애는 결국 그 햇빛을 찾은 것인가? [말하려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 그 햇빛에 절망한 것인가?
송강호 연기는 뛰어나지만, 한국 최고의 남자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면 부족하다고 외국의 어느 평론가가 말했다는 걸 봤다. 보기 전엔 나도 그런가, 했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말의 의미를 전달할 때는 더욱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평론가는 송강호가 연기한 김사장이, 진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송강호의 그 말투, 아무렇지도 않게 툭, 툭 내뱉는 그 말투!(전도연은 송강호의 연기를 '허허실실 연기'라고 했다는 걸 역시 읽었다.) 경상도 억양 특유의 리듬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묘미를 완벽하게(?)-사실, 송강호의 고향이 경남 김해니까- 살렸다.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우리는 송강호가 말하는 장면만 보이면 웃음이 나왔다. (내가 우리 엄마와 통화할 때 저러지 싶었다.)
아직도 완전히 감추지 못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영화의 배역에 잘 어울리지 못한 적('쉬리' 볼 때 진짜 이상했다.)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송강호가 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은 최고였다. 배역이 감정의 폭이 넓지 않아서 주목을 덜 받았을 뿐이지만!
이창동 감독은 원래 소설을 참 잘 썼다, 깔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