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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조금은 슬펐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지금은 희미한 기억이 되고 말았지만, 나도 한 때는 참 좋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왜 좋은 사람을 알게 되면,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져서 막 자랑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나는 꼭 그 때가 그랬다. 그를 만났을 때. 헌신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참모습을 몰라볼 때는 속상했고, 근거 없이 험담을 늘어놓을 때는 나라도 나서서 공박해 주고 싶은 욕망을 지그시 눌러야했다.
세월이 꽤 흘러, 이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말아, 그와는 꽤 오래 전에 마음을 정리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말하는 것(심각한 표현으로는 ‘환멸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할 때 내 머리와는 별개로 내 마음이 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싫어졌지만,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도 듣기 싫은 이 애증. 이런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그가 바로, 노무현이다.
고종석의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에 실린 글의 배열은 원래 기고했던 매체에 발표된 시기의 역순이라고 했다. 이 칼럼들의 대부분은 현재 ‘노무현’에 대한 실망과 환멸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의 가벼움, 지지자들을 배반하는 일관된 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말이나 글은 시중에 이미 차고 넘침으로 내가 달리 덧보탤 말은 없겠다. 나 역시도 그러니까.
무척 놀랐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건강한 시민 의식이 갖춘 사람이라면-그러니까 이 정도 책을 읽겠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을 말하고 있으니까. 당연하면서도 읽을 때 놀랐던 사실! ‘타고나기를 우파’인 그의 생각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칭 ‘우파’라는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보수’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보수’한다고 떠드는 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린 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보수’라고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가도 진짜 이런 ‘우파’를 만나고 나니 더더욱 그들이 ‘보수 우파’가 아님이 드러나고 만다. 아무래도 이념상 ‘중도 좌파’인(좌파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은 가만히 놓아두고, ‘열린우리당’을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부르는(그냥 싫고 짜증나서 부른다고 한다.) ‘극우주의자’들의 말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보다 제법 왼쪽으로 치우쳤다.(행동이나 이념은 극우파, 말은 자칭 ‘우파’니까 그들의 말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 ‘좌편향’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고 놀랐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한국의 글쟁이,에 나온 거 같아서 검색했더니, 역시나 만만찮은 독자를 거느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이자, 언어학자라는 소개가 나왔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문화전달자,라고 했다던가? 나도 앞으로는 고종석의 책을 구해서 읽게 될 것 같다. 늦게 만났지만, 차분하게 그의 지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 퍽 유쾌하지는 않아도 내 생각을 다잡고 자신을 돌아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잘 모르겠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그의 글에는 대체로 ‘한국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한 글’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나는 우리말 지킴이 축에는 전혀 들지도 않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과목이 과목인지라 특히 주의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내 감각이 많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사실 정확한 한국어로 쓴 글이 어떤 글이지 아는 것도 쉽지가 않다. 다만 내 나름대로 소박하게 그의 글을 읽는 느낌을 말해 본다면, 문장을 다 읽은 후에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게 좋았다. 또 마음속으로 책을 읽을 때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없다는 점도 편안했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쓴다는 글에 대한 찬사로는 어쩌면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일까? 턱없이 소박한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제대로 된 독자를 만나지 못한 그의 책이 정당한 평가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아둔한 독자를 만난 그의 책을 탓하랴? 원래 타고나기를 이렇게 생겨먹은 나 자신을 탓하랴?
* 뱀발 - 글샘님의 감식안을 늘 존중하지만, 고종석에 대해서 만큼은 선생님의 안이 틀렸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