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약속이나 모임이 뜸해졌다. 언제부터였더라? 아마도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그런 거 같다. 한 때는 부모님께서 제발 주말에는 집에 좀 있어라,라는 푸념까지 들었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점점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그래도 늘 정해진 모임은 일단, 선생님들과의 공부 모임인 모두아름다운아이들. 다음엔 공부방 교사모임. 그 다음엔 아이들과 지난 1년간 꾸린 독서토론동아리. 이 모임들은 내가 아주 사랑하는 모임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밖에 부정기적인 모임들.

   학교엔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있는데, 나는 노동조합(수구언론 찌라시들이 말하는 '빨갱이 전교조')의 공식모임에만 참여할 뿐 어느 형태의 모임에도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는 걸 부담스러워 하게 된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거의 가지 않는다. (좋긴 하지만, 놀고 오면 그냥 속이 허하다.)  특히, 학부모들이 만나자는 모임은 저번 페이퍼에서도 말했지만 질색이다. (교사가 학생의 문제를 학부모와 의논해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꼭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보면 되지 밖에서 만나야 할 이유는 뭔가?-교사의 홈그라운드라 부담스러우신가?)

   내일도 약간 부담스러운 모임이 생겼다. 고등학교 총동창회 집행부 모임! (학연으로 얽매이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임이다.) 내가 저기에 가는 사연은 이렇다.

   나는 2년전부터 모교에 근무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촌스럽고 약간 낡은 학교가 참 좋다. 그러나 모교에 근무하는 단점은 은근히 사람들이 기대한다는 것!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모교에 왔으니 뭔가 힘들고 귀찮고 어려운 일은 먼저 나서주겠지, 하는 떠맡기에 대한 기대말이다. 나? 그러나,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선배로 이 학교에 온 게 아니라, 교사로 이 학교에 부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와 동창회 업무는 피해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일 자체도 무척 싫었으나, 학교로 찾아오는 선배들을 보면서 아무 조건 없이 후배들을 위해 자기 몸으로, 돈으로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걸 느낀 게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다.

   그런 동창회가 올해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내일 모임을 한다며 연락이 왔다. 나보다도 한참 선배들이라 내가 낄 자리도 아닌데, 동창회 사업으로 지급하는 재학생 장학금 문제를 좀 의논하고 싶다고 오라고 했다. 어떤 기준이 가장 좋은지 현장에서 근무하는 후배의 의견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굳이 내가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도 우리집에서는 한참 먼 범내골이라는데... 그래도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게 내일이다. 저녁 7시. 약속은 했으니 무조건 간다. 모르겠다. 나도 선배들처럼 몸으로라도 때워야겠다.

   * 이 글 보고 오해할 분들도 계신 것 같아 사족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알리딘 부산 모임에 초대를 받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그냥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등산 가셨던 어머니께서 눈길에 미끄러져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학교 근처의 병원에 계신데, 지난 월요일에 수술을 받으셨다. 눈물까지는 아니고, 아쉬움을 머금고 다음 모임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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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2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가 젊은날의 깨달음에서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 엎어라.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 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고 하는 말을 참 반갑게 들었습니다. 정말 의미없는 모임들 많죠. 저도 내일 모임 하나(보충수업 마무리 모임이래나 뭐래나, 그것도 남의 학교에서) 도망쳐서 피아노 배우러 갈 겁니다.^^ 다음 모임엔 함 봅시다. 복이가 협조해 주셔얄텐데... 어머님의 쾌유를... 복이와 사모님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기원합니다.^^

드팀전 2007-01-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임 별로 안좋아하지요.특히 회사 회식은 기를 쓰고 도망다녔습니다.대개 맨 구석자리에 있다가 술들 취하고 1차정리할 때쯤 슬쩍 사라졌습니다.그런데...그게 언젠가는 다 뽀록이 납니다.언젠가는 회사 부장이 1차를 할 때 제가 카드를 주더군요.니가 계산하고 2차까지 정리해라..이러면서.ㅜㅜ 이거 딱 걸린거다 싶었지요.하지만 제가 누굽니까...전 그래도 도망을 가야했습니다.그래서 부장이 거의 헤롱헤롱 비몽사몽하는 틈을 타서 술 잘 먹고 끝까지 가는 후배에게 카드를 넘겨주고 도망갔습니다.다음 날...그 후배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받았지요.그리고 부장에게 카드를 돌려주러갔습니다.아직도 술냄새가 풀풀나는 부장이 '어..그래.어제 몇 차까지 갔나?" 대충 그러길래.."예..2차까지 대충 계산하고 나머지 그냥 알아서들 3차가고 그랬습니다." 카드로는 2차까지만 계산했습니다." 부장..여전히 헤롱거리며 '그래..수고했다.그래도 어제는 안 도망가고 할 일을 좀 했구만." ...."넵" ( ㅋㅋㅋ )....
그 후에도 전 회사 회식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회사에서도 몇 몇 마음맞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즐기지만..그것도 신데렐라이다 보니..^^

느티나무 2007-01-2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피아노 배우시는 군요. 멋있습니다. 저도 내일 보충수업 마지막 날이지요. 얼른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데...
드팀전님은 역시 머리가 좋으신 듯! 그나마 학교는 저 정도 분위기(카드 맡기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한결 낫네요. 얼마 전에 보니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날의 상위권에 회식하는 날이 있더군요. ^^ ;; 웃었습니다.
아, 오늘 모임, 나름대로 의미 있었는데, 집에 오니 10시더군요. 왜 그리도 시간이 아까운지...(집에 있어도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날은 시간이 무지 아깝다고 느껴집니다.)

글샘 2007-01-2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교가 집에서 아주 가깝고, 공립고등학교인데요, 별로 안 가고 싶습니다. 부담스럽거든요. 요 전에 이동할 때 교감샘이 전화까지 몇 번 와서 쓰라고 했는데, 저는 11군데 모두 모교는 못 쓰겠더라구요. 남의 학교가 편하죠. ^^
한국의 회식 문화는 <검은 돈>과 <연줄>이 얽혀 빚어낸 기형적인 非문화적 양태라고 생각합니다. 회식이라면 같이 식사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은 풀고 해야하는데, 1차에서 취하고, 2차에선 미치고, 3차에선 개가 되는 일을 문화라고 하기엔 쩍팔리죠.^^

느티나무 2007-01-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교에 근무하게 된 건 완전 우연이었어요. 아내랑 같은 학교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제가 옮긴 거죠. 그럴 때 특별전보가 되어서 선택지를 안 주던데요 ^^ (발령 받고 좀 부담은 됐었지요.) 회식...아직도 그런가요? 학교마다 분위기는 많이 다른데, 학교의 공식 회식 자리는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닌데요...(제가 워낙 안 가서 잘 모르지만...그래도 학년 모임엔 가끔 갑니다.) 다른 곳이야 더욱 문외한이니 잘 모르구요. 진짜로 저러면 '문화'가 울고 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