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진복

애기는 우리 집에 온 지 보름째. 생각보다 잘 적응하며 자라고 있다. 예방접종을 다녀오면 몸이 힘들지만 평소에는 헌신적인 아내 덕에 무럭무럭 잘 큰다. 신생아는 밤낮의 구분이 없이 두 세 시간 간격으로 계속 '밥'을 먹어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아내가 무척 힘들어 한다. 그렇지만, 예전에 마음 졸이며 하루에 두 번씩 병원을 다녔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교정(출생예정일 기준) 30일째. 현재 몸무게는 3.5kg. 남들과 비교하면 적지만, 그래도 진복이는 씩씩하게 잘 큰다.

2. 우리 반

올해 만난 우리 반 애들, 진짜 특이하다. 특이하다고 할 때의 어감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날적이에 자주 내 흉이 올라오는데 그게 밉지가 않다. 불만이기도 하고, 놀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날적이는 또 얼마나 열심히 쓰는지, 저희들끼리 열풍이 불기도 했다. 아이들과는 두 번째 상담을 하고 있고, 특별한 학급 행사는 거의 없지만 예전보다는 꽤 거리가 좁혀진 느낌이다. 아무튼 이 녀석들이 맘에 든다.

3. 학습동아리

학습동아리는 꾸준히,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어왔다.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이 있었고, 그 어려운 중에서 동아리 모임은 계속 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힘들어 하더니 동아리에서 거의 '탈락'한 녀석들이 좀 있다. 아무래도 책읽기가 어렵고,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럴 때면 나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번 모임에 오라고 권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냥 싫은데 강요하는 거 같아서 그냥 모른 척 내버려둔다. 이번 모임과 다음 모임을 끝으로 1년 동안 참 열심히 달려온 동아리 활동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쉬움이 가득한데, 녀석들은 어쩐지 잘 모르겠다.

4. 공부방

공부방도 꾸준히 다녔다. 학생이 기다리는 곳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내가 만나는 OO이. 예전보다 진짜 괜찮아졌다. 그 녀석의 상태가 병원의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는데(실제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자기가 왜 이곳에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나랑도 잘 지낸다. 요즘은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냥 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이제 반을 좀 넘겼는데,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OO이를 만나서 얘기나누고 책 읽는 게 참 좋다. 중학교 1학년 짜리와 서른 다섯살, 내가 거의 친구다.

지난 10월에 공부방 20주년 행사가 열렸다. 우리 공부방이 드디어 스무 살을 넘겨 어른이 된 것이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20년을 되돌아보는 영상물이 상영되었는데, 참 뭉클했다. 공부방은 누가 보든 아니든 거기 그 자리에서 제가 해야할 몫을 묵묵하게 해 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공부방에 만 9년 동안 자원교사 노릇을 하고 있다. 연수만 채웠지 제대로 하는 건 별로 없다.예전에 그래도 좀 기운내서 실무적인 일을 맡아 했는데, 이제는 진짜 내가 맡은 날에 안 빠지고 올라가는 그 정도 역할만 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마음으로는 10년 동안만 해 보자고 했는데, 그래야 '공부방에서 자원교사 해 봤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아내가 내년에 고 3담임하면 공부방 할 수 있겠냐고 한다. 글쎄, 어쩌지? 그것도 고민이네.)

5. 분회 활동

학교에서의 활동은 거의 못 하고 있다. 선생님들끼리 쓰기로 한 날적이도 아직 못 챙겼고, 분회 모임도 이름만 총무지,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에 '연가'를 냈다. (알라딘의 많은 분들도 저 같은 교사가 연가를 내서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하실 것 같다. 언짢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지만, 한 마디만 하자면 그렇게 연가를 내면 마음이 무척 무겁다는 것과 무슨 이권이나 대가를 바라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시청 앞 광장의 잔디는 물기로 축축해서 오래 앉아있기는 불편했다. 나는 집회에 끝까지 있지 못 하고, 서둘러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집에 와서 애기를 돌보기 위해서...('아기 돌보기 위해서'라는 말은 장난으로 할 말이 아니다.)

6.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모두아, 선생님들께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5년간 동아리에 참여해 오면서 참, 애정이 많은 모임이었는데, 애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못 나갔다. 안 그래도 모임에 나오는 사람이 적어서 모두 걱정도 많았고, 힘들어했는데 올 1년 동안 대표 일꾼이었던 내가 개인 사정으로 석 달이나 못 나갔으니 참 면목이 없다. 그래서 오늘 지회참실대회 발표가 있어서 거기에 갔었다. 모두아 선생님들이 학급운영 분과를 맡아서 강좌를 열였기 때문이다. 지순, 의주, 현주, 준호, 경희샘! 반가운 얼굴. 여전히 진지한 자세로 여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뒷풀이에는 또 못 갔다. 일곱 시까지는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갔는데, 끝나니 벌써 아홉 시. 어쩔 수 없이 집에 왔다. 아, 대회를 마치고 나오다 반가운 선생님들을 또 만났다. 순진샘, 석중샘, 영호샘, 옥진샘, 정미샘! 다들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이다. 다들 애기가 잘 있냐고 물으시고, 걱정해 주셨다. 우리 애기 선생님의 걱정과 염려 때문에 무럭무럭 잘 커요,라고 말씀드렸다.

7. 책읽기와 글쓰기

두 달 동안은 10분이상 책을 읽지 않았다. 겨우 신문만 뒤적이거나 그것도 가방에 넣은 채로 가져와서 분리수거함에 넣기가 예사였다. 그러다 한 달 전쯤부터는 조금씩 책도 사고 책도 읽는다. 최근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한티제 하늘을 읽고는 가장 마음이 뭉클했다. 좋은 책들을 꽤 많이 사 두었으니 이제 차차 읽어야겠다.

역시나 어떤 글쓰기도 안 한다. 마음이 힘들어서 도무지 생각할 힘이 안 나는데 그 생각을 더 짜내고 정리할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뷰는 물론이고, 일기도 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워밍업을 했으니 조금씩 진도가 나가겠지. 앞으로 진짜 괜찮은 글을 쓰고 싶은데, 정말 글쓰기는 힘들다.

이번에 독후감대회를 열었는데, 전교에서 14명의 학생들이 써냈다. 모두 훌륭한 글들이었다. 그 중에는 보통의 고등학생 수준을 넘어서는 글들도 보여서 기분이 좀 좋다. 무엇보다도 억지로 강요한 글쓰기가 아니라서 더욱 좋다. 열심히 읽고, 첨삭도 좀 해 줘야할까 보다. 근데, 학교에선 영 시간이 안 난다. 그게 탈이다. (학습동아리 활동 내용도 정리해야 하고, 기말고사 시험 문제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늘 준비하는 학습지. 음, 정말 고통스럽다.)

8. 정리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까지는 험한 길 달려 왔으니 이젠 더욱 더 강해졌으리라고 믿는다. 하느님이 주시는 시련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 낮은 곳으로 이끌어 주시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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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1-25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시네요..특히 아이돌보기...전 100% 동감합니다.저도 요즘 집에서 책보는 시간이 몇 분 안돼는 듯 합니다.^^
글샘님 방명록에도 잠시 달았지만...곧 부산에 계신분들 한번 만나요.느티나무님이 좀 마음 내려놓으실 즈음되서..^^

kimji 2006-11-2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게 잘 큰다, 라는 말이 큰 무게감이 실려 있군요. 그 무게감이 참 좋구요.
이진복 아가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더더욱 건강해지기를, 더더더욱 씩씩해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 사이사이 님도 건강 해치지 않게 잘 지내시구요.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부산에 계신 분들,이 문득 부러워졌습니다^^ )

느티나무 2006-11-2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이렇게 애정어린 말씀을 보내주시니 전 무엇을 해 드릴까 고민이 됩니다. 님께서 남겨 주신 격려의 말씀은 정말 감동이었고, 저에게 새로운 힘이 솟도록 해 줬거든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두고 두고 갚으려고 애쓰겠습니다. 드팀전님,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

느티나무 2006-11-2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mji님, 님께서 예전에 저에게 이런 말씀 하신 적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 사진을 올렸을 때였나, 결혼한다는 페이퍼를 썼을 때였나, 그런 글을 남기는 제가 부럽다(?)고 하셨어요. 님과 애기 소식은 종종 읽었습니다만 제가 마음이 힘들어서 자국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부럽다, 라는 마음의 표현이 정말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번에 여기까지 와서 쓰신 글에도 마찬가지구요. 그렇지만, 이제 조금씩 애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더 들구요. 저 또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도 새로 해 봅니다. 님께서 보내주신 걱정과 격려,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